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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거인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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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얹힌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민재의 뺨을 스쳤다. 그는 어딘지 익숙한 긴장감에 숨을 내뱉으며, 작은 소리마저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축구화가 잔디를 짓밟는 소리, 공이 날아오르며 내는 파열음,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지는 활기찬 현장. 여기서 그는 변함없이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민재 코치님! 오늘 훈련은 뭐 할 거예요?" 수민이 그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민재의 시선은 수민에게 당도했을 때에야 비로소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오늘은 운동 능력을 좀 더 높이는 훈련을 해볼까 싶어. 힘들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클 거야."

아이들은 그의 말씀에 지친 듯 끙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에 찬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민재는 그들의 미소를 보며, 여전히 어딘가 엉켜있는 내부의 감정들을 잠시 잊어보려 했다.

그러나 강렬한 햇살이 서서히 그의 피부를 덮치고, 갑작스러운 방문자가 운동장의 경계를 넘어오면서 모든 것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그 높은 그림자가 아이들 위에 드리워지자, 민재는 즉각 몸을 돌려 그들을 보호하려는 듯한 본능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봐, 안녕하신가?" 거칠지만 친근한 목소리가 공기 속으로 퍼졌다. 민재는 그 목소리가 크리스 벨러의 것임을 즉각 알아챘다. 오래된 기억과 함께 그의 마음 속에 불현듯 떠오른 이름이자, 한때 자신의 경주에 함께한 파트너였다. 크리스가 이곳을 직접 찾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크리스? 여기서 만나네." 민재는 순간적으로 과거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의 가슴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고, 온 몸의 긴장으로 인해 손끝이 차가워졌다.

크리스는 그늘진 곳에서 걸어 나와 익숙한 유니폼을 입은 민재를 향해 다가왔다. 그 얼굴에는 여유있는 미소가 번졌지만, 눈동자에는 심상치 않은 결정이 담긴 채였다. 그가 입을 열자 귀를 기울이던 소년소녀들이 숨을 죽였다.

"난 네가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어." 크리스가 말하며 민재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는 분명했으나, 그에 담긴 은밀한 의미는 조금도 숨겨지지 않았다.

민재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너무도 궁금해졌다. 그는 정면으로 서서, 크리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깊은 어둠 속의 진정한 그리움, 그는 그 속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애썼다. 그들이 한때 품었던 불꽃,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리움이 작게 몸부림쳤다.

"정현이 그러더라고, 네가 찾아간 건 너와의 유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민재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작은 떨림이 있었다.

충직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크리스는 입가에 선 희미한 미소를 터트렸다.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응답했잖아."

민재에게 던져진 그 말은 그만큼이나 무거웠다. 한때는 도달할 수 없는 꿈처럼 여겨졌던 것이 그와 손을 맞잡고 다시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그 꿈을 다시 현실로 돌려놓을 방법이 있어, 민재. 함께하자고 하려고 왔어. 넌 이 팀을 끌어올릴 수 있을 거야."

크리스의 제안은 민재의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아니, 동시에 그의 가슴속에서 잊혀진 열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민재는 자신을 따르며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 찬 아이들을 뒤로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여긴 아이들이 있어." 그는 한마디로 자신의 가치를 정의했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빈틈없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의 제안은 이내 민재에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그들과 함께 한다면, 새로운 도전과 갈등은 어떤 모습으로 그를 맞이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민재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는 크리스의 말을 머리 속에서 천천히 곱씹었고, 아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민재는 생각에 잠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의문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윤아가 민재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코치님, 저런 분이 친구라니 대단해요!" 윤아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민재는 시선과 뜻이 엇나가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언젠가부터 정말 친구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재의 말을 경청했다. 그 속에서 진심을 읽어낼 만큼 그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코치님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든, 우리는 여기서 응원할 거예요."

그날 저녁, 민재는 꿈결같은 기분으로 아이들과 함께 연습을 무사히 마쳤다. 히든 사이드에선 크리스가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고, 민재는 그들의 국경선에 서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민재는 자기 자리에 서서 아이들과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가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이미 수없이 다뤄온 '선택'이었다. 미래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꿈꾸며 맞설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다루어야 할 것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막 운동장에 발을 들여놓은 어린 스스로였다. 민재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 그것의 끝은 어떻게 될지 그는 이미 얘기할 수 없었다. 비록 크리스의 제안이 민재의 내면에 새롭게 빛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장면이 벌어졌다. 운동장의 끝자락에서 민재를 향해 낯선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벽이 시작되자마자 민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 인물은 과거로부터 날아온 이정표 하나와 같았다.

크리스조차 의아한 표정을 짓고 한발 물러섰다. 민재의 가슴 속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던 작은 종소리는 마침내 그는 그 소리의 방향을 깨닫게 했다. 새로운 비밀이 드러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크리스의 마지막 속삭임이 축제의 예감처럼 민재의 귓가를 때렸다. 그들의 미래는 아직도 수많은 갈림길 속에 숨겨져 있다. 민재의 가슴이 차갑게 얼었다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때, 민재는 선수들처럼 각오를 다지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이 거대한 경기의 다음 부턴, 그들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재는 자신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를 과연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다가올 선택의 무게가 멀리서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더 큰 무대 위로 출발하려 했다.

그의 앞에는 아직 달릴 길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 경기는 이제 시작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