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1화. 마법사의 시작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저녁에 뭐 할 거야, 민우야? 영화 보자."

태연한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던 혜진이 민우의 팔을 잡았다. 깍지를 낀 그녀의 손에 민우는 잠시 경직되었다가, 결국 미소를 따라주었다. 긴장한 그의 이마에 소금기 있는 땀방울 하나가 흘렀다.

"오늘은 좀 피곤해서... 나중에 보자."

민우는 혜진의 손을 천천히 풀며 말했다. 혜진은 잠시 상처를 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돌아섰다. 그녀는 민우의 말에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혜진이 그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우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는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최근의 이상한 꿈과 깨어났을 때 손에 남은 수상한 자국들에 대해서는.

민우는 더 이상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그의 일상은 점점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영화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누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길 원했을까? 그것도 치열한 대결의 주인공이...

어느 날 밤, 꿈 속에서 자신이 마법을 부리는 장면을 본 순간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꿈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가 실제로 꿈에서 던진 불꽃은 아침에 현실로 이어졌고, 작은 화상 자국을 남겼다. 아직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친구들은 물론 가족조차도. 그래서 그가 평소에 하지 않았던 게임, 아니 실험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날 밤, 민우는 어둡고 텅 빈 교내 도서관에 숨어들었다. 발소리가 찰칵거렸다. 삭막한 형광등이 깜박이며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확인해봐야겠어... 정말 이게 마법인지 아니면 내 착각인지."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두 주먹을 꽉 쥔 그의 손가락이 하얗게 변했다. 민우는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숨소리가 거친 공기를 갈랐다.

오랫동안 읽혀지지 않은 낡은 책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책꽂이 사이를 지나가며, 그는 장서들 속에서 이상한 에너지를 느꼈다. 울러운 채금속처럼 무겁고 묵직한 끌림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한 권의 책으로 그를 이끌었다.

"이건... 뭐지?"

민우는 갈색 가죽으로 묶인 오래된 책을 꺼내들었다. 표지에는 알 수 없는 문양과 함께 '비전의 비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책의 형태와 감각, 그의 손에 전해지는 묵직함이 그저 단순한 도서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겁도 없이 그는 책을 펼쳤다.

역시나, 낡고 버려진 듯한 책의 속지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와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시야가 어지러워지는 듯 했지만, 어느새 친숙한 느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어릴 적 잊혀진 동화를 다시 읽는 기분.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삐걱거리는 문이 열린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어떤 실마리가 그의 손안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도서관의 문이 갑자기 열리며 한 인물이 들어섰다. 키가 크고 어딘가 위압적이면서도 고운 실루엣이었다. 긴 코트가 바람에 날리며, 그는 민우를 노려보았다.

"넌 그 책을 들 수 없는 자야."

낯선 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운 칼날 같은 시린 톤이었다.

민우는 놀라서 책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 남자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눈빛에서는 진짜 마법사가 이끄는 듯한 확신이 반짝였다.

"그 책을 내려놔. 그것은 위험한 물건이야."

"누구세요?" 민우는 의견을 주저하며 물었다. 그 말에도 두 눈은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작지만 용기 있는 항변이었다.

"난... 그것까지는 말 못 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넌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선 안 돼."

그 순간, 민우의 마음 속에서 뭔가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걸음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알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야 할 길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시간은 남아 있겠죠?" 민우는 대답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허리를 피지 않았다.

남자는 완전한 침묵 속에 교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유령처럼 그 자리를 떠났다. 도서관의 문이 다시 쾅 닫히며,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민우와 낡은 책뿐이었다.

민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책을 끌어안았다. 그는 아직도 멍한 마음이었지만, 무엇인가 분명히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이 도전이 단순히 하루치의 악몽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인생에서 진짜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야기는 도저히 혼자 끝낼 수 없다는 심정이 들었다.

그가 가진 마법의 불꽃이 정말 그들 사이의 다리를 연결할 수 있을까? 더 큰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민우는 다시 한번 교내의 어두운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음 속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그들이 숨기고 있는 또 다른 세계... 그의 눈앞에 펼쳐진 미지의 길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질문이 더욱 많아졌고, 답변은 아직 낯설었다. 그리고 그 답변을 찾는 과정은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도서관의 문이 닫히고 난 후, 민우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미지의 남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경고한 위험은 정말 무엇일까?

삶이 점점 더 영화 같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이야기가 끝날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결말을 불러오든 간에, 민우는 기꺼이 그 길을 가기로 했다. 마법사의 운명이 그를 어디로 이끌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그는 그 신비로움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