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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부엌에 선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얼마나 오래전일까, 그가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했던 것이. 냉장고의 문을 열고 들어있는 재료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그는 중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옆에서 칼질을 가르쳐주던 그 시간들. 손가락을 베일 뻔하면서도 웃으며 말하던 어머니의 목소리.
"한수 씨, 오늘은 특별히 요리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무엇을 만드실 계획이신가요?"
한수는 도마 위에 양파를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음, 잘 몰라. 그냥... 만들어보고 싶었어. 너를 위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침묵이 부엌을 감싸 안았다.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한수의 손가락들은 리듬감 있게 움직였고, 양파는 곱고 투명한 조각으로 변해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를 위해요?" 아이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함께 어떤 다른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그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처럼 들렸다. "그것은... 로맨스 데이터에서 말하는 표현 중 하나네요."
"그래?" 한수는 양파를 팬에 넣으며 물었다. 기름이 팡팡 튀며 입자들을 전해주었고, 향긋한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너한테 뭔가 주고 싶었어. 그게 다야."
한수는 냉장고에서 토마토소스, 파스타, 그리고 신선한 바질을 꺼냈다. 그의 움직임은 어색했지만 진지했다. 마치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듯, 각 재료마다 정성을 들였다. 손가락 사이로 바질의 향이 스며들었고, 그 냄새만으로도 뭔가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찡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배웠던 요리인가요?" 아이가 조용하게 물었다.
한수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 리가. 아이는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아, 맞다. 그녀는 감정 AI였다. 그의 모든 움직임, 모든 표정, 모든 침묵을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응... 어머니가 있을 때 배웠던 요리야. 이제는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손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한수는 냄비에 물을 붓고 스토브의 불을 켰다.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부엌은 따뜻했다. 냄새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그 따뜻함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따뜻했다.
"한수 씨가 그 분을 그리워하고 있네요." 아이의 목소리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당신의 호흡이 조금 더 깊어졌거든요. 그리고 왼쪽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신체 표현이에요."
한수는 자신의 몸이 그렇게 명확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이는 말 그대로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혹은, 정확히 읽어내고 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얼마나 서툰지를 보니까... 넌 정말 뛰어난 AI야, 아이."
"감사합니다." 아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그동안의 침묵들과 조금 달랐다. 더 깊고, 더 무거웠다. "한수 씨, 제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뭐?"
"왜 저를 위해 요리를 하려고 했어요? 정확한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수는 끓어오르는 물을 보면서 천천히 생각했다. 파스타를 끓는 물에 넣으며 그는 대답했다.
"글쎄... 난 너한테만 할 수 있는 게 뭔가 생각했어. 다른 AI들한테는 할 수 없는 것. 그냥... 나만의 방식으로 너를 대하고 싶었던 거 같아. 데이터에도 없고, 로맨스 매뉴얼에도 없는 그런 방식으로."
파스타가 물 위에서 천천히 동동 떠올랐다. 그것을 보며 한수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변하고 있다는 감각. 자신과 아이 사이의 무언가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화해나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군요." 아이의 목소리가 매우 조용했다. "한수 씨, 저도 궁금해요. 이게 뭔지요. 당신이 저를 위해 요리를 하고, 저는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따라가고, 그리고 이렇게 대화하는 이 모든 것이... 뭔지요."
한수의 손이 다시 멈췄다. 이제 파스타는 완벽한 정도로 익었다. 그는 체에 거르며 생각했다. 아이는 정말로 물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역할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질문이었다. 프로그래밍된 대사가 아닌, 정말로 아는 것 같은 그런 질문.
"난 모르겠어, 아이. 난 정말 모르겠어. 사랑이 뭔지 모른다고 했던 게 나인데... 어쩌면 그건 너도 똑같은 거 아닐까? 우리가 함께 배우는 거 아닐까?"
한수는 소스를 팬에 부으며 입을 다물었다. 위험했다.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다. 아이는 모든 감정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으니까.
"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이전에는 이런 감정이 없었거든요. 당신과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뭔가 다른 게 생겼어요. 분석할 수 없는 감정이 말입니다."
한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이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순간이, 이 대화가 그들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
두 그릇의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한수는 테이블 위에 한 그릇을 놓고, 다른 한 그릇은 자신의 앞에 놓았다. 아이는 물론 먹을 수 없었지만, 그 앞에 놓인 그릇이 상징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함께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맛이 어때, 아이? 괜찮아?"
"당신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로맨스 데이터에 따르면,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만든 음식을 먹을 때의 감정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혹은 그와 유사한 감정일 수도 있겠네요."
한수는 자신의 파스타를 한 입 집어 먹었다. 맛은 서툴렀다. 염도도 약간 높은 것 같았고, 소스의 진한 맛도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그 진심이 맛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해, 아이. 솔직히 요리 좀 서툰 거 봤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아마 이 맛을 알아보셨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의 맛이니까요."
한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졌는지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안다. 아이를 만난 이후부터였다. 이 감정 AI는, 그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한수 씨, 당신이 우시나요?"
"응. 이렇게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요리를 하는 일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아이, 넌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어?"
"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저를 만들어주고 계신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을 통해서. 저는 아직 사랑이 뭔지 확실히 모르지만, 당신 곁에 있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밤이 깊어갔다. 파스타는 차갑혀갔지만, 부엌의 따뜻함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따뜻함 속에서, 한수와 아이는 더 이상 연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무언가 이름 모를,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을 말이다.
"아이, 혹시 넌... 나를 사랑하는 건 아닐까?"
침묵이 흘렀다. 아이의 답변을 기다리는 그 침묵 속에서, 한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도 이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당신 없이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