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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수증기가 지하 주방의 천장에 맴돌았다. 칼날은 고요히 빛을 받으며 무딜 틈 없이 사라의 손을 따라 재료들을 섬세하게 잘라냈다. 날카로운 냄새가 코를 찌르며 그녀의 집중을 깼다. 유진은 문지방에 기대어 사라를 주시했다. 사라인지 유진인지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라의 손놀림은 단단하고 부드럽게 오가며, 미묘한 리듬을 형성했다. 이 리듬은 요리 그 자체였고, 그녀의 숨결까지도 요리로 빚었다. 유진은 문득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한층 더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너 자신과 만나고 있어?" 유진이 물으며 시선을 사라에게서 떼지 않았다.
사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칼질을 멈추었다. 그녀의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감각은 마치 살아있는 듯 보였다. 그 감각은 요리사의 흔적이었다.
"그렇기도 해. 지금은 요리를 통해 그걸 하고 있어." 사라가 대답했다. 눈을 마주치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무언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이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 유진이 말했다. "네가 기억을 불러오는 방식을 말해줘."
"기억이라...," 사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음식은 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내 삶에 있었어. 그래서인지 그 모든 게 다시금 기억을 되새기게 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멋진 조각들처럼 작고 반짝이는 채소들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시선은 굳어졌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흐르던 찰나, 문 꽉 닫히는 소리가 울리며 그들의 대화를 짧게 끊었다. 시선이 한 방향으로 쏠렸다. 마틴이 등장해 그들과 함께 있었다.
"유진, 사라. 다들 여기 있었구나." 마틴은 약간 숨을 헐떡이며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서 묘한 긴박함이 느껴졌다.
유진은 마틴의 얼굴에서 무언가 곤란함을 읽어내며 물었다. "뭐가 문제야?"
마틴은 깊은 숨을 내쉬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뭔가 큰 문제가 생겼어. 아직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바로 그걸 알아내야 해."
그의 얼굴은 심각했고, 말끝은 무게감이 가득했다. 유진과 사라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고, 그 순간 그들 사이의 공기가 바뀌었다.
"가기 전에 우리 요리는 다 마무리됐어?" 유진이 급히 물었다.
사라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곧 준비할 수 있어. 다만 맛이 어찌될지...그건 알 수 없어."
마틴이 나아간 방향으로 그들은 변수 없는 발걸음으로 뒤따랐다. 주방을 나서면서 유진은 주위를 감싸던 모든 집념과 그 바깥의 냉랭함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틴이 인도한 방으로 들어선 그들은 바로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대니가 방 한가운데 뻗어 있었고, 그의 손에는 무언가를 잘못 짚은 흔적이 드러났다. 방의 공기는 혼합된 향과 함께 무언가 쉽게 해석할 수 없는 불길함이 가득 찼다.
"대니!" 유진이 그의 곁으로 바삐 다가갔다. 사라는 그를 살펴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려 애썼다.
"이게 무슨 일이야?" 사라는 숨을 멈추며 묻고, 동시에 대니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했다.
대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지만, 창백한 얼굴은 여전히 무거워 보였다.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듯한 그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렁였다.
"뭔가 이상한 향을 맡았어..." 대니는 힘겹게 말을 뱉었다. "간장같은 향에 무언가 섞여 있었어. 엄청나게 강하게 와 닿은..."
대니가 말을 멈추자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찌릿하게 변했다. 유진은 방의 바깥에서부터 조용히 흐르던 그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여전히 그들의 의식 속 미래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우리에게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 같아." 사라는 당혹스러운 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어." 마틴이 턱을 문질러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더 알아봐야 할 것들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들은 서로 간에 짧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다짐했다. 이 모든 것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었다.
뭔가가 느껴졌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잊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끝에서 다른 끝으로, 결국 진실을 찾아가야만 했다.
그때, 유진의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바로 그 향이었다. 그 향이 어떤 결정을 강요할지 모른다는 강박적인 감각. 그러나 그 속에서도 유진은 그 향이 마지막 조각을 맞추어주리라고 믿었다.
그 향을 따라, 차례로 그들은 방을 나왔다. 진한 추억에 속한 향기가 변하기 전에, 그들은 그저 그저 그것을 계속 밀어붙였다.
이제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진실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답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그들을 낯선 곳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들이 갈 곳은 아직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유진은 알고 있었다. 기억을 부르는 향이 그들을 어디로든 데려다줄 것이라는 사실을.
눈앞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려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들은 숨죽이며 그 순간을 맞이했다.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끝으로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