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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벼랑 끝에서 울리는 반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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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캇, 절망과 불안이 뒤섞인 어둠이 지우의 발밑을 차례로 지나갔다. 그녀는 잠시 몸을 멈추고, 고요히 파도를 관찰했다. 그 어느 때보다 두텁던 안개가 숲 속을 휘감고 있었고, 그녀의 맥박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매듭을 풀어야 했다. 정지된 눈으로 주변을 가르며 그녀의 숨결이 차갑게 응급히 나왔다.

그때, 미연이 뒤쪽에서 날카롭게 외쳤다.

"지우! 태준이 준비한 이 밤, 우리 절대 남겨두지 말자!"

그녀의 목소리는 치열히 바람을 갈랐다. 지우는 방향을 고정하고 손가락 사이로 미친듯이 미로를 따라가며 숨을 골랐다. 그녀의 생각은 이제는 포기할 수도 없는 전장에서 표류했다.

바람에 실린 낙엽 소리가 그들의 귀에 부딪혔다. 순간, 수현이 갑작스럽게 전방에 손을 들었다.

"멈춰, 뒤에 무언가 있어."

족족 걸음을 멈추자, 사각거리며 다가오던 소리의 기척이 마침내 선명해졌다.

"이런 밤에도 입을 다문 채, 한 층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수현의 말은 가시 돋친 언성으로 변했고, 주위의 나무들은 숨 막히듯 서로 얽히고 얽혔다. 그때였다. 지우의 눈에 갑작스레 나타난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

"바로 그거야," 도현이 살짝 휘어지듯 다가서며 말했다. "태준이 준비한 것처럼만 끝나지만은 않을거야."

그의 말을 들은 지우의 눈에는 그간의 촛불이 타듯 꺼지기가 무섭게 다시 불타올랐다.

하늘에서는 계속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땅은 마치 무슨 비밀을 숨기듯 움찔했다. 그런 순간에도 그들의 다툼과 안개의 조각조각은 서로 갈라지고 모여들고 있었다.

지우는 그 오랜 길을 따라 무겁게 걷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미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려는 찰나, 그녀는 다시금 결단을 굳혔다.

"우리가 담고 있었던 감정의 낱낱한 조각들도 이 어둠 속에서 조화롭게 흩어지진 않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웅얼거렸고, 도현이 또렷하게 응답했다. "그렇지,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굳음의 의미인 걸."

그때였다. 사방에서 얼어붙는 듯한 차가움이 이들 발치에서 피어올랐다. 무엇인가 그들의 다리를 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 뒤편에서 장대한 빛이 몰려와, 숲 전체가 무언가 불길한 기운에 휩싸여가고 있었다. 수현과 미연도 잠시 한걸음 자리를 옮기며 그 장면을 응시했다.

"끝없이 남아있는 그 실체를 찾고, 그 끝에서 불안정을 모색해야만 해."

도현이 긴 목소리로 외쳤고, 지우는 그가 말하는 시간을 좀 더 다잡았다.

핀과 직선 사이에 어둡게 압도적인 그림자는 스스로 다가오는 것을 뒤쫓으며, 바람 전체가 얼굴을 적실 만큼 불안정하게 휩쓸었다.

그리고 불현듯 벗어난 그녀의 입술은 마치 신의 계시와도 같은 속삭임을 던졌다.

"우린 선택을 해야만 해."

지우가 잔뜩 움켜져 있던 현실의 실체에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녀의 결단은 부서지려는 면직물처럼 이들을 감싼 채, 떠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수현은 어둠 속에서 마주친 그녀의 꺼칠한 표정을 응시하며, 그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의 지우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세상이 멈춘 듯 교직되는 빛이 그의 눈 앞에서 피어 올랐다.

눈이 부실 만큼 뜨거운 빛의 장이 하늘 위로 솟구치고, 그 안에서 낯선 흔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찰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든 그 형체는 낯익은 공간 속에서 범람하는 연기의 기운으로 그들의 주위를 감쌌다.

무엇이 그들의 앞뒤를 가로지르며, 이미 닿아진 손끝에서 고요히 흩날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이, 그 순간이야," 도현이 속삭이며 외쳤다.

무엇이 다가오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지우는 또다른 결단의 순간을 마주해 잡았다. 그리고, 그 이끌림에 덧붙여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그 찰나에 그들 사이에 퍼졌던 긴장감이 고요하게 터져 나오는 동안,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고 다시 시작하게 되리라는 깨달음이 피어올랐다.

눈 속에 정산되지 않은 희망이 휘날렸다.

세상에 걸린 이 거리에서, 그들의 발자국은 새로운 발판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빛과 어둠이 길어지면서, 많은 것이 다시 세상의 길을 따라 시작되었다.

마침내, 벼랑 끝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들의 심장을 울렸다.

그 순간, 새로운 국면은 비로소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