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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사라진 기억의 실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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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댔다. 마치 앞을 막고 서 있었다는 듯, 소희는 전지도 아닌 채 운명처럼 그곳을 마주했다. 한순간 다시금 몸서리가 쳤다. 주변의 공기는 불길하게 웅성거렸고, 스스로 깊은 숨을 내뱉는 그녀의 입김이 공중에서 뭉게구름처럼 퍼졌다.

갑자기, 그녀의 눈앞에 환한 빛이 켜졌다. 처음엔 깜짝 놀라 눈을 가렸지만, 다가오는 밝기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그녀는 그 빛의 근원을 찾기 위해 천천히 눈을 떴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만난 고풍스러운 가로등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기억에서도 살짝씩 퍼지는 불빛처럼.

"이곳에 뭔가가 있어." 민재가 그녀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끝은 가로등 아래로 뻗어 있었다. 그 순간, 소희는 그의 눈빛을 따라 문양이 복잡하게 얽힌 기묘한 모양이 바닥에 그려진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신비로운 퍼즐이자 슬픈 비밀 같았다.

소희의 손이 기어코 그 기묘한 모양 위에 얹혔다. 그러나 일부러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 기억의 흩날린 조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세차게 휘몰아쳤다. 두근거리던 심장은 마치 깨지기 일보 직전의 유리잔처럼 아슬아슬했다.

"응?" 그녀는 황급히 손을 떼면서 물었다, "이런 것 전에 봤던 적이 한 적 있던가...?"

민재는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살피더니, 다시 손끝을 그녀 쪽으로 향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네가 지금 뭐를 기억하려고 하고 있다는 거야."

그의 말에 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금 집중하며, 자신의 감각 속으로 물들어 가는 이야기를 포갰다.

아직 이곳에 숨어 있는 더 많은 비밀들을 탐색하고 있던 그 때, 빈센트의 손이 어깨 위로 조용히 다가왔다. "여기서 뭔가가 있다는 건 분명해.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건지는..."

소희는 늘 그렇듯 한숨을 내쉬며, 그들의 말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캐내기 위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순식간에 바닥에서 흩어지는 생경스러운 기운을 감지했다. 마치 그녀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져 분리된 것처럼.

"잠깐만, 저기 좀 봐!" 연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복도 끝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게감 있는 침묵이 그들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이 시선을 돌린 곳엔, 누군가가 걸쳐 입고 있던 어두운 외투의 그림자가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는 빛과 어둠이 마치 아찔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꼬였다 풀리는 심상이었다.

"그림자...?" 민재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건... 우리가 맞닥뜨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야." 소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귀는 그와 동시에 진동을 구별하며 무언가가 그들 곁을 지나가는 듯한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그림자를 따라 걸어간 그들 앞에, 검은 옷을 입은 형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그것이 어느 낯선 존재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형체는 그들 앞에 멈춰 섰다.

"내가 왔다. 드디어." 낮고 깊은 울림이 어둠 속에서 퍼져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공기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소희는 감각을 차리고 그를 바라봤다. 알 수 없는 요동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의 존재가 그토록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렸던 걸까?" 민재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림자는 미묘하게 흔들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기억은 그것을 증명하지. 이제 넌, 끝없는 수수께끼의 노래를 따라야만 하니까."

말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소희는 의문에 들었다. 그녀의 내면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고 할 수도 없고, 마치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맞닿은 순간, 그림자는 천천히 소희를 베일처럼 감쌌다. 그의 눈 안에서 빛나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래와의 대면을 불안정하게 떠올리며, 물속의 소녀처럼 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그 말이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녀가 무엇을 바라보게 될지 모르면서.

"너는 그 길을 따라가야 해." 그의 목소리가 다시 저음으로 가득 채웠다. 오직 최고조에 이른 평온 속에서. 그와 동시에, 그림자의 형체는 천천히 흩어졌다. 그와 같은 순간, 소희는 비록 하찮을지라도 이어지는 숨소리를 붙들고 있었다.

혼란 속에서 그녀의 마음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서서히 어둠과 빛, 그 경계 사이로 사라져 갔을 때, 끝내 진실은 그녀에게 닿지 못한 채로 세차게 요동쳤다.

먼저는 물음표로 채워진 해답이었고 그 후에 올 또 다른 시작을 알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그들 앞에 누군가가 놓아둔 실타래 같은 흔적이었다.

과연 이 상황의 착오가 가져올 의미 있는 변화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 그리고 진심이 감춰진 그 순간, 진혼곡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한 현기증 속에서, 끝없이 진실에 다가가고 있는 것만 같은 그들의 존재는 이제 막 새롭게 나타난 비밀의 증표로 말미암아, 또 다른 시작을 알릴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새삼 아득하게 그들 앞에 부여되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