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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근처 공원의 밤은 고요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어두운 밤을 더 깊게 만들었다. 리안의 손은 차갑고 단단했지만, 그 손을 잡은 순간 내 가슴은 뜨겁게 뛰었다. 새로운 동맹. 이 말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그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믿어도 되는 걸까? 이 선택이 나를 더 깊은 어둠으로 이끌진 않을까? 머릿속에서 울린 그림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네 선택이 무엇을 불러올지 지켜보겠다.’ 그 말은 경고처럼 느껴졌다.
리안은 손을 놓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감정에 가까웠지만, 눈빛에는 미세한 변화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한, 그러나 동시에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해? 네가 말한 대로, 내 힘을 통제하는 걸 도와줄 거지?"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꼈다.
"그래. 하지만 네 힘의 근원을 알아야 해. 네가 깨운 그 존재… 고대 마법의 봉인된 영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 그게 사실이라면, 단순한 훈련으로는 통제하기 힘들 거야.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건 그 존재와 네 계약의 본질을 파악하는 거다."
"계약의 본질이라니… 그게 뭔데?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그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와 연결되었다고만 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계약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야. 네 영혼과 그 존재가 얽혀 있는 거라면, 네 힘이 커질수록 그 존재의 영향도 강해질 가능성이 있어. 우리가 숲에서 다시 그 존재를 만나야 할지도 몰라."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시 숲으로 돌아가다니. 이미 유리아와 리안에게 들킬 뻔한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게다가 숲은 출입 금지 구역이다. 또다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리안의 말 속에 담긴 확신이 나를 흔들었다. 그가 정말 나를 도와줄 수 있다면,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언제 숲으로 갈 거야? 오늘 밤은 이미 너무 늦었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안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대답했다.
"내일 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다시 만나자. 하지만 이번엔 더 조심해야 해. 유리아나 다른 학생들이 눈치채면 곤란해."
"알겠어… 근데, 리안. 너는 왜 나를 돕는 거야? 나 같은 낙제생한테… 무슨 이유가 있는 거지?"
내 질문에 리안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이 숲과 관련된 비밀을 쫓고 있어. 네가 깨운 존재가 내가 찾는 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 그게 다야."
그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지만, 어딘가 숨기는 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더 캐묻고 싶었지만, 그의 차가운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공원을 나와 기숙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공기는 차갑게 피부를 스쳤고, 멀리 보이는 기숙사의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나는 리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말하는 숲의 비밀은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기숙사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빛은 여전히 밝았고, 머릿속은 온통 리안과의 대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 단호한 말투, 그리고 나를 돕겠다는 약속. 그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림자의 경고가 계속 마음을 흔들었다. ‘네 선택이 무엇을 불러올지 지켜보겠다.’ 그 목소리는 마치 나를 비웃는 듯했다. 나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몸을 웅크렸다. 내일 밤, 숲에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리안과 함께라면 정말 내 힘을 통제할 수 있을까? 불안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나는 결국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강의실로 향했다. 밤새 뒤척인 탓에 머리가 무거웠고,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해린이 옆자리로 가 앉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린아, 너 또 잠 못 잤지?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여?"
"아… 응,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괜찮아."
나는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해린이는 한숨을 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 요즘 계속 이상해. 나한테 말 못 할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나 도와줄 수 있어."
그 말에 가슴이 찡해졌다. 해린이의 순수한 걱정은 나를 따뜻하게 했지만,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녀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었지만, 리안과의 약속이 머릿속을 스쳤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나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해린아. 정말 괜찮아. 그냥 잠을 좀 더 자야겠어."
해린이는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었다. 나는 책을 펼치며 시선을 피했다. 수업 시간 내내, 나는 집중할 수 없었다. 라우엘 선생님의 강의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필기하는 손은 자꾸 멈춰 섰다. 멀리서 유리아가 친구들과 웃으며 나를 힐끔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유리아도, 리안도, 모두 나를 의심하고 있는 듯했다.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리안을 찾아 복도를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섰을 때, 멀리 구석 자리에서 그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쟁반을 들고 그의 맞은편에 앉자, 리안은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최하린. 무슨 일이야?"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냥… 오늘 밤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정말 숲으로 가는 게 맞는 걸까? 너무 위험하지 않아?"
리안은 포크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위험한 건 맞아. 하지만 네 힘이 통제되지 않는 상태로 두는 게 더 위험해. 네가 깨운 존재가 뭔지, 그 계약이 뭔지 알아야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겁먹지 마. 나도 함께할 거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나를 조금 안심시켰지만, 여전히 불안은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작게 대답했다.
"알겠어… 그럼 밤에 만나자."
리안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말 그를 믿어도 되는 걸까? 그의 비밀은 무엇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한 번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모두가 잠든 시간을 기다렸고, 낡은 로브를 걸친 채 리안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기숙사 뒤편 작은 공원에서 리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달빛 아래 그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물었다.
"준비됐어? 정말 숲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래. 준비는 네가 더 철저히 해야겠지. 네 힘이 폭주하면 나까지 위험해질 테니까."
리안은 짧게 대답하며 숲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뒤를 따르며 심호흡을 했다. 철문을 밀고 숲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익숙한 불안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길을 비춰주었지만, 숲의 어둠은 여전히 음산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말없이 공터로 향했다. 발걸음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고요한 밤을 채웠다.
공터에 도착했을 때, 검은 그림자는 이미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도 그 형체는 흐릿했고, 여전히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리안은 그림자를 보자마자 한 걸음 물러서며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의 팔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이게… 내가 말했던 존재야. 나를 해치진 않아."
리안은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그림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인간, 또 다른 이를 데려왔구나. 네 비밀을 공유한 대가가 무엇이 될지 알겠는가?"
그 목소리에 나는 몸을 떨었다. 리안은 내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뭐야, 최하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림자가… 내 머릿속에서 말하고 있어. 네가 여기 온 걸 알고 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안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는 그림자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너, 최하린과 무슨 계약을 맺은 거지? 그녀의 힘을 왜 조종하는 거야? 네 정체를 밝혀라."
그림자는 리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공터 한가운데 보랏빛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 빛은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림자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서 울렸다.
"인간, 오늘 밤 네 시험이 시작된다. 네 동맹이 함께라면, 네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 보겠다."
"시험? 무슨 시험을 말하는 거야?"
나는 다급히 물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공터를 환하게 밝히며 우리를 감쌌다. 나는 숨을 삼키며 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팡이를 꽉 쥐며 나를 향해 말했다.
"최하린, 집중해. 네 힘을 통제해야 해. 내가 곁에 있을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자, 온몸을 감싸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끝에서 전율이 일었다. 내 안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는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이번엔 그 불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휘감는 대신, 점점 더 강렬하게 폭발 직전으로 치달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리안! 이거… 너무 강해! 나 통제 못 할 것 같아!"
리안은 재빨리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차가운 손이 내 뜨거운 손을 감싸자, 이상하게도 불꽃이 조금 진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착해, 하린. 네 힘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느끼는 대로 내버려 둬. 내가 너를 지킬게."
그 말에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불꽃은 여전히 강렬했지만, 리안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이 나를 안정시켰다. 나는 천천히 그 불꽃을 손끝으로 모으려 집중했다. 그 순간, 갑자기 숲 속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리안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뒤로 밀며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 하린, 마법진 밖으로 나와."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마법진 밖으로 나왔다. 빛이 꺼지며 공터는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나뭇가지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유리아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나는 리안의 뒤에 숨어 숨을 죽였다. 이 밤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체 누가 우리를 계속 따라오는 걸까? 그리고 그림자가 말한 시험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불안과 호기심이 뒤섞인 채, 나는 어둠 속에서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이 숲의 진실과 내 안에 잠든 힘의 정체가 드러날 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