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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손가락이 유리창을 긁는 것처럼 섬뜩했다. 민지와 나는 책상에 펼쳐진 낡은 일기장을 사이에 두고 숨을 죽였다. 일기장 페이지 구석에 찍힌 작은 핏자국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검붉게 번들거렸다.
"이게... 도준의 피야?"
민지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녀는 일기장을 만지려다 말고 손을 움츠렸다. 손끝이 차가운 금속처럼 얼어붙은 듯했다.
"아니. 윤지호의 거야."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에는 희미하게 '지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바로 도준이 실종된 날짜와 일치했다.
"그럼... 윤지호가 도준을?"
민지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일기장의 글씨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찾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조각을 맞추는 순간, 그림 전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교실 문이 끼이익 하고 열렸다.
"찾았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우리 둘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우리 반 담임인 김민수 선생님이었다. 그의 손에는 똑같은 낡은 일기장이 하나 더 들려 있었다.
"선생님... 그거 어디서..."
민수가 천천히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발걸음 소리에 맞춰 천장에서 먼지가 흩날렸다. 그는 우리 책상에 자신의 일기장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희가 찾던 거, 맞지?"
두 권의 일기장이 나란히 놓였다. 하나는 도준의 필체로, 다른 하나는 윤지호의 필체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권의 일기장 사이에는 무언가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있을 게 분명했다.
"선생님도 이 일에 대해 알고 계셨던 거예요?"
내가 물었다. 민수는 대답 대신 일기장을 한 권 집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기며 멈췄다.
"50년 전 이 학교에는 특별한 동아리가 있었어. '진실의 서클'이라고 불렸지. 도준과 윤지호는 그 동아리의 핵심 멤버였어."
민수가 가리킨 페이지에는 동아리 멤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준, 윤지호, 그리고 다른 세 명의 이름. 그런데 그 이름들 중 하나가 붉은 펜으로 지워져 있었다.
"이게 무슨..."
민지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내 팔을 꽉 잡았다. 손톱이 살에 파고들었다.
"그 동아리는 학교의 비밀을 파헤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비밀이 너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됐지. 그리고 그 다음 날, 도준이 사라졌어."
민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일기장을 덮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희가 이걸 찾기 시작하면서, 그 비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어."
그때 교실 창문이 덜컹거렸다. 빗줄기가 더 거세진 모양이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찾고 있던 건 단순한 진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위험으로 이끄는 초대장이었다.
"선생님, 그럼 윤지호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내가 물었다. 민수는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게 문제야. 윤지호는 아직도 이 학교 어딘가에 있어.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야."
민지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교실 뒤편, 칠판 옆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그저 빛의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그 형상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액체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도... 도준?"
민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형상은 도준이 아니었다. 도준의 형체는 밝고 투명했지만, 이 형체는 어둡고 탁했다. 마치 썩어가는 무언가처럼.
그 형체가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었다기보다는 입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너희가... 내 이야기를 들춰냈구나."
목소리는 거칠고 탁했다.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윤... 지호?"
내가 물었다. 그 형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목이 부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너희가 찾던 진실은... 너희를 파멸로 이끌 거야."
윤지호의 형체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잡으려 했다. 그때 민수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도망쳐!"
민수가 외치며 일기장을 우리에게 던졌다. 우리는 그 일기장을 움켜쥐고 교실을 뛰쳐나왔다. 등 뒤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달리는 동안, 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니, 쫓아오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와 함께 있었다.
"소윤아, 저기!"
민지가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문. 그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문을 향해 달렸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우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빛은 따뜻하지 않았다. 차갑고 푸르스름한 빛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우리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이곳은 학교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가 알던 학교는 아니었다.
벽에는 온통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너희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이 학교는 살아 있다.' '도망칠 수 없다.'
그리고 그 글씨들 사이로, 윤지호의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이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희가 찾던 진실은... 여기 있어."
그의 손이 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대한 거울이 있었다. 거울 속에는 우리가 서 있었다. 하지만 거울 속의 우리는 피투성이였다.
"이건... 뭐야?"
민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윤지호가 천천히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온 공간에 울려 퍼졌다.
"너희의 미래야."
거울 속의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들의 손이 거울을 뚫고 나오려 했다.
"소윤아, 도망쳐!"
민지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다시 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에는 붉은 글씨로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너희는 이미 여기에 갇혔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무언가가 나를 잡아챘다. 차가운 손이 내 목을 조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우리와 함께해."
그 순간,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교실에 앉아 있었다. 민지는 내 옆에 앉아 있었고, 김민수 선생님은 칠판 앞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너희들, 왜 그래? 얼굴이 하얗게 질렸네."
민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기장은 사라졌고,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나요?"
민지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꿈?"
그때였다. 교실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 문틈으로 검은 액체가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선생님, 저거 보세요!"
내가 외쳤다. 민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이게 뭐..."
검은 액체는 점점 더 많이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액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윤지호의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는... 이미 여기에 갇혔다."
그의 목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민수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도망쳐! 지금 당장!"
우리는 교실을 뛰쳐나갔다. 등 뒤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쫓아왔다. 아니, 쫓아오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
복도를 달리는 동안,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찾던 진실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진실에서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소윤아, 저기!"
민지가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까 그 작은 문이 다시 보였다.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문이 완전히 열렸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윤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는... 이제 우리와 함께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찾던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함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