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소굴에 먼지가 가라앉고 고요함만 남았다. 주인공은 검 끝에 맺힌 불꽃 잔여물을 내려다보았다. 드래곤은 사라졌다. 평생 쫓아온 것이.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승리도, 안도도, 기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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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어디 다쳤는지 확인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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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발걸음은 빠르게 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공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전투의 피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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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작은 상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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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마법사는 그 눈을 보았다. 말과 눈빛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그의 왼팔을 잡아 확인했다. 드래곤 발톱이 훑고 간 흔적이 길게 나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붕대와 약초를 꺼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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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처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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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소리에서 아주 미세하게, 처음으로 흔들림이 느껴졌다. 주인공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 항상 흔들리지 않던 손이었다. 마법을 다루고 검을 막아낸 손이. 그 손이 지금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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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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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그녀를 향해 내뱉은 말이었다. 마법사는 잠시 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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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무서웠어.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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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강인하고 냉정하던 그녀의 첫 번째 솔직함이었다. 주인공은 그 말을 들으며 오래 침묵했다. 두려움을 잃은 것은 살아있음을 잃은 것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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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같이 싸운 동료가 있었어. 드래곤 때문에 잃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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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어떤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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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강했어. 그래도 돌아오지 못했지. 내가 먼저 도망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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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무거운 말이었다. 그는 웃지 않았다. 마법사는 붕대를 묶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어떤 말보다 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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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을 나서 마을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드래곤이 사라진 세상은 이상하게 더 조용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말없이. 그러다 저 멀리 마을 방향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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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야. 마을 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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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주인공도 따라 뛰었다. 길 위에서 쓰러진 농부를 발견했다. 농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드래곤 군주의 봉인이 풀렸다고 말했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주인공과 마법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승리는, 이미 다음 전쟁의 예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