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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을 타고 흐르는 반짝임은 소민의 심장을 더욱 빠르게 뛰게 했다. 낯선 공간이지만 뭔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꿈 속 이 황폐한 도시, 소리도 없이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 속에서 그녀는 숨이 막히도록 무거운 공기를 파고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긴... 어디지?”
아련한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래된 거울 앞에 서 있던 자신을 마주했던 그날의 꿈처럼 멀고 또렷했다. 이내 눈에 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익숙한 단호함이 깃든 그의 눈빛이 가슴을 찔렀다.
“이현우... 맞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거친 숨결이 그녀의 귓가에서 울렸다. 그의 몸짓은 다가가고 있는 절벽의 검은 그림자를 닮았다. 머뭇거리던 소민은 손을 뻗었다. 차가운 바람 조각이 그녀의 손가락을 스쳤다.
“어떻게 알았지?”
현우는 물기 없는 입술을 살짝 굳힌 채 나지막히 물었다. 목소리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다만 소민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꿈에서... 본 적 있어. 너의 고통을.”
그 순간, 갑작스럽게 도시의 지평이 울리며 그들을 덮쳤다. 바닥이 갈라지고 길은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민은 서둘러 균형을 잡아보려 했지만, 속절없이 허공 속으로 빨려들 뻔했다.
“남아 있을 시간이 없어. 이 꿈은 나를 감추고 있어.”
현우의 목소리는 예리했다. 그의 말에 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뜨며 속삭였다.
“그럼, 우리가 함께 이겨내야겠지?”
진지한 고백이 있었다. 소민의 태도는 과거의 상처를 감싸안고 있어서, 이 세계의 냉기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다시 강풍이 불어 그들의 대화를 집어삼켰다.
***
그들이 마주한 또 다른 몽상의 세계는 넓디넓은 황금빛 들판이었다. 늘씬한 잡초들 사이로 휘몰아치던 바람은 끝없는 황무지를 뛰놀았다. 소민과 현우는 미광 속에서 긴장된 침묵을 이어갔다.
“여기가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거 같아.”
소민은 고개를 돌려 그 거친 광야를 바라보았다. 동공 속에 어린 불꽃은 그녀의 눈길과 함께 타올랐다. 광활한 배경이 운명처럼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현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각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힘주어 앙다물었다.
그때, 투명한 휘파람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소리는 점점 커지며 그들의 감각을 흔들었다. 소리를 따라가자, 황금빛 들판의 중심에 거대한 그림자가 앉아있었다.
“저기가...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인가?”
소민은 얇은 실선 같이 좁아진 눈으로 목표를 지목했다. 눈앞에 서서히 나타나는 것은 짙고 왜곡된 ineffable 존재였다. 현우가 긴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아. 그러나 저기는 단순한 방해의 장소가 아닌 것 같아.”
소민은 머리 속의 의문을 떨쳐내려 애썼다. 무겁게 내려 앉은 어둠과 환상의 세계가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마지막까지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는 현우를 향해 한발자국 다가갔다.
그 순간, 소리는 더욱 거세져 그들의 귀를 틀어막았다. 음의 파장은 잔잔하게 치고 올라왔다. 꿈의 세계가 현실과 섞여드는 듯한 감각이었다.
“우리... 준비됐어?”
소민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현우와 그녀의 두려움이 허공 속에서 이미 모든 것을 비롯해지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민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마치 불꽃이 일렁거리는 것처럼 온기가 전해졌다.
마침내, 그들은 함께 어둠으로 향했다.
***
이불 속에 갇힌 꿈에서 깨어나 온몸을 가다듬은 소민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뛰고 있었다. 숨결은 짧게 끊어졌고, 두 눈은 아득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처럼 무심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꿈이었어.”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손 끝에는 여전히 미약한 떨림이 남아있었다. 현실의 무게가 그녀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뜬 순간, 화려하지 않고 단조로운 일상이 요동쳤다.
문이 열리자, 강미래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그녀의 입안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이 그녀에게 안심 같은 존재감을 주었다.
“오늘도 이상한 꿈꿨어?”
미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따뜻한 소리에 소민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이번엔 특별했어.”
“음, 특별하다고? 소민 네가 꿈을 지배하는 왕이라도 된 모양인데?”
소민은 잠시 바라보다 미래의 혼잣말 같은 말을 되새겼다. 왕이라는 호칭으로 상징된 그녀의 꿈 속 모험이, 현실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한가해야 할 텐데. 왜냐하면 말야, 네가 준비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누군가를 돕기 위한 계획이 있다고 했잖아.”
“맞아, 한 사람을 구해야 해.”
소민의 목소리는 그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낮아졌다. 그 순간 현우의 얼굴과 그 뜨거운 눈빛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응원할게. 넌 할 수 있어. 꿈 속이라도, 현실 속이라도.”
미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소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지지는 깊은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는 빛이었다.
소민은 짧지만 강렬한 순간마다 마음을 다잡기로 결심했다. 현우를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해. 그 모든 것이 이 꿈에서 시작되었고, 이 꿈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순간 문 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 무렵에 도착한 그림자는 그녀의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상적인 현실은 그토록 날카롭고도 소름 돋게 다가왔으나, 지나가는 순간에처럼 문턱을 다시 넘어서게 했다.
그림자의 정체는 분명한가 싶었지만 도리어 신비했다. 아스라이 흔들리는 그 음산함, 그리고 소민에게로 다가오는 그 차갑고 단단한 공기가.
“우리가 길을 찾아가야 해. 우리 둘이.”
그 말은 그녀가 현실과 꿈 속을 오가며 다가가고자 하는 모든 길의 맹세였다. 소민의 손길이 닿지도 못한 그림자 속에는 미리 감춰진 비밀과, 그 너머의 무언가가 있었다. 끄집어내어야 할 진실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결코 끝나지 않을 듯했다. 소민의 마음 속 가장 흔들리는 순간, 그녀는 도리어 결심을 굳히며 내딛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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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조만간 벌어질 일은 분명히 그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가 마주할 그 어두운 진실은, 상상을 초월한 깊이에서 그들의 다가오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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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또...”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고, 그녀의 의지는 새롭게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여정은 또 다른 굴레 속으로 그들을 몰고 갈 것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