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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촉수가 제단의 가장자리를 휘감으며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파열음을 냈다. 이소민의 손이 저도 모르게 목걸이를 움켜쥐었고, 그 순간 빛이 폭발하듯 팔을 타고 치솟아 방 안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수연의 목소리가 왜곡된 채 울려 퍼졌다. “이소민… 네가… 열쇠야.”
“열쇠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윤재가 단검을 빼들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발바닥이 물웅덩이를 찍으며 튄 물방울이 어두운 벽에 튀었다. “마르크, 네가 또 무슨 장난을 친 거지? 이 목소리가 갑자기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네 계획이 완전히 뒤집히는 거 아니었어?”
마르크는 망토 자락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턱선이 단단히 굳어졌다. “장난이라니, 윤재. 네가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나? 이소민, 네 능력이 제단과 완전히 연결되는 순간, 수연의 목소리가 더 많은 걸 드러낼 거야. 하지만 그건 네가 원하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어.”
루크스가 칼날을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칼등이 돌바닥을 긁는 금속음이 길게 메아리쳤다. “원하는 진실? 제기랄, 지금 이 순간에도 네놈들은 서로를 속이고 있어! 이소민, 저 그림자가 네 어머니를 삼킨 다음에 너까지 노릴 거라고! 당장 그 능력을 멈춰!”
이소민은 제단 표면을 더듬었다. 차가운 돌의 질감이 손바닥을 파고들었고,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그녀의 맥박과 공명하는 듯했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걸음은 앞으로 향했다. “멈출 수 없어. 이미 시작됐으니까.”
윤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시작됐다라… 재미있군. 그럼 이 게임의 다음 수는 누가 던질까? 마르크, 네가 숨긴 게 이 그림자 속에 들어 있는 거 맞지?”
마르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으나, 한 음절 한 음절이 돌벽에 부딪혀 날카로운 메아리를 만들었다. “숨긴 게 아니라, 드러내지 않은 거지. 이소민, 네가 이 제단을 완전히 깨우면, 수연이 남긴 마지막 말이 네 귓가에 울릴 거야. 그 말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거울 테니까.”
그 순간, 제단 중앙에서 새로운 실루엣이 솟아올랐다. 수연의 목소리가 또렷해지며, “이소민… 네 어머니는… 너를 위해…”라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고 끊겼다. 대신, 윤재의 그림자가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자가 제단 위로 기어오르며, 이소민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만!” 루크스가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그림자의 가장자리를 베며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그림자는 칼을 통과하듯이 흘러가며, 윤재의 실루엣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윤재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이게… 내 과거를 보여주는 건가? 마르크, 네가 이걸 계획한 거야?”
장면이 유적 복도로 이어졌다. 나뭇가지가 이소민의 뺨을 스치며 얕은 상처를 남겼다. 차가운 바람이 상처를 파고들었고, 곰팡이 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앞서 걸으며 벽을 짚었다. 돌의 표면이 손가락에 진동을 전하며,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이미지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윤재가 어머니의 유산을 빼앗는 장면, 마르크가 수연을 제단에 묶는 장면, 그리고 그 사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림자.
윤재가 뒤따라오며 말했다. “이소민, 네 능력이 이렇게 커지다니. 이제 그림자가 네 이름을 직접 부르는 이유를 알겠어. 하지만 마르크, 네가 그걸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나? 수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보면, 네 배신이 더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은데.”
마르크는 벽의 문양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그의 걸음이 느려지며, 발끝이 돌을 문지르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배신이라니, 그 단어는 네 입에서 나올 때마다 거짓이 되지. 이소민, 이 복도가 신전의 심장으로 이어지지만, 네가 그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봐. 수연이 남긴 진실이 너를 삼킬 수도 있어.”
루크스가 칼을 어깨에 멨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칼날 끝이 바닥을 스치자 불꽃이 다시 피어올랐다. “삼킨다고? 제기랄,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 둘 다 이소민을 이용하고 있어! 수연이 실종된 이유가 바로 이 제단 때문이었어. 이소민, 네가 그걸 깨우면 다 끝장나는 거야!”
이소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주먹이 바짝 쥐어졌고,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이용당하는 건… 이제 끝낼 거야.”
복도의 끝에서 새로운 문이 나타났다. 문을 밀자, 더 깊은 어둠이 쏟아져 나왔다. 방 안은 축축한 공기로 가득했고, 바닥의 물이 출렁이며 파문을 그렸다. 중앙에 거대한 석상이 서 있었고, 그 위로 그림자가 맴돌았다. 수연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소민… 네가… 중심이야.”
윤재가 석상 앞에 섰다. 그의 단검이 은은한 빛을 발하며 손을 스쳤다. “중심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마르크, 이게 네가 숨겨온 진실인가?”
마르크는 석상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석상의 표면을 스치자, 미세한 진동이 방 전체로 퍼졌다. “진실이라니,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지. 이소민, 네가 이 석상을 건드리는 순간, 수연의 마지막 말이 네게 닿을 거야. 하지만 그 말은… 네 운명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어.”
루크스가 칼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뒤바꾼다고? 제기랄, 지금 당장 멈춰! 이 그림자가 너희 모두를 삼킬 거야!”
이소민은 석상에 손을 올렸다. 빛이 폭발하며, 새로운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 형상은 수연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미지의 존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이 세계의 균형이… 너로부터 무너진다”는 말을 속삭였다. 이소민의 몸이 저절로 떨렸고, 목걸이의 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윤재가 단검을 치켜들었다. “그게… 네 진짜 모습인가? 마르크, 네가 이걸 알고 있었던 거야?”
마르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알고 있었다면, 이미 막았겠지. 이소민, 네 능력이 이 존재와 연결되는 순간, 모든 게 끝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끝이 시작일 수도 있고.”
루크스가 앞으로 뛰어들며 칼을 휘둘렀다. “끝날 수도 있다고? 제기랄, 이소민! 저걸 막아! 수연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그림자가 방 전체를 삼키기 시작했다. 수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이소민… 네가… 선택해야 해”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이소민의 손이 석상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윤재와 마르크가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루크스의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새로운 그림자가 다가오는 기운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 실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