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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조용한 어둠 속에서, 형의 흔적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함께 내 주위를 돌며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빌딩 옥상에 서서 도시의 무수한 빛들을 내려다보았다. 각종 불빛들이 서울의 밤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그 간만에 보이는 별이 간신히 그 초롱같은 존재감을 드러내었지만, 도시의 창문 너머 빛들보다 작게 보였다. 형은 왜 이리 되었을까? 그 답을 찾는 동안, 칼날 같은 바람이 내 귓가를 쓸어내렸다.
"여기야, 기다렸어," 세희가 뒤에서 나직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신뢰가 묻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확신은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끝이 어딜지 몰라도, 발걸음은 이미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한 숨을 고르고, 조용히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물 계단을 내려가던 중, 벽면을 스치는 내 손끝에 느껴지는 거친 질감과 차가움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걸음을 멈췄을 때, 진한 검은색 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런 문은 흔히 볼 수 없는, 어딘가 눌린 듯한 모양새였다. 이곳에 오기 위해 필사적인 것들을 수집했던 우리가 드디어 도착했다는 말이다. 마치 형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듯, 이 문 안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민재, 내가 먼저 들어갈게. 갑자기 문을 열면 안에서 놀랄 수도 있으니까," 세희는 가늘게 문을 밀었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고, 우리 앞에 펼쳐진 공간은 예상 외로 고요했다.
그곳은 한때 사람들이 북적이던 곳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황량했다. 이 세상의 소음을 잊고, 우리는 조용히 그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저기 밑에 뭔가 있어!" 갑작스레 들린 세희의 외침에 나는 온몸이 경직됐다. 그녀는 문득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손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서히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녀가 들고 있던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또 다른 공간이 드러났다. 그것은 어떤 숨은 방처럼 작고 아늑했으며, 그 안에는 오랜 시간을 보낸 듯한 테이블과 의자가 남아 있었다. 아래엔 오래된 종이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한걸음 내딛으니 바닥이 미묘하게 불편한 소리를 냈다. 종이 위로 무릎을 꿇어, 하나를 집어들었다. '프로젝트 속도 마스터 플랜'. 제목이 적힌 부분은 낡은 글씨로 흔들리고 있었다.
"여긴 형이 남긴 것들이 맞구나..." 점점 불안감이 내 위로 밀려왔다. 형이 왜 이런 작업을 숨기고 있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발걸음을 따라가는 우리 자신의 발걸음이 더럽혀질까 두려웠다.
그러나 희미한 의심은 그 한계를 넘어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그곳에 숨겨진 다른 가닥들이 쌓여 있었고, 우리는 한낱 조용한 여행자들이었다. 중첩하여 길게 늘어진 샹들리에의 불빛 아래, 서로에 대한 시선이 얼어붙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철컥거리는 소리에 우리는 함께 고개를 돌렸다. 유진이 문턱에 서 있었다. 입 꼬리가 심상치 않게 올라가 있었고, 그 눈빛은 여전히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의 출현은 모든 사고를 제자리에 붙들어매는 것만 같았다.
"너흰 이게 끝일 것 같았니?" 반짝이는 푸른 눈을 가진 유진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내 계획은 이제 시작이야."
그 순간, 세희와 나는 눈앞에 펼쳐진 그 복잡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뒤집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진의 계획 속에 우리가 일부가 되리란 사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넌 이미 알고 있었구나... 다 계획된 일이었다는 걸," 그 말은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처럼 들렸다. 유진의 미소가 더 이상 다정해 보이지 않았다. 숨 막히게 비틀어진 미소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보였다. 이곳에 숨겨진 비밀도, 마치 저 드러난 와중에도 더 깊은 심연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심연 속으로 발을 내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 펼쳐질 모든 이야기의 끝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침울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기 위해 저쪽에 있는 빛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미로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형의 흔적을 쫓던 이 모든 여정은 다른 무언가의 시작을 위한 것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주 멀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모든 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