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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암흑에 잠겨 있었으나, 그가 올린 눈에는 확실한 빛의 윤곽이 보였다. 눈앞에서 가부지한 채로 빛나는 기계, 그의 주변은 형언할 수 없는 차가움이 휘감고 있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 숨쉴 수 있도록 그를 붙잡는 것은 오직 심장의 고동뿐이었다. 초침이 한 번, 두 번 제자리에서 기적같이 경쾌한 소리를 만들었다.
"이곳에 있을 필요가 있다."
어디선가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를 속삭이며 지난밤의 불안한 꿈들마저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손끝은 가늘게 떨렸다. 손 안에는 아직도 종이 한 장이 꽉 쥐어져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문득 적갈색 글자들이 떠올랐다.
'너를 기다리고 있다.'
달궈진 쇳물이 피를 끓게 했고, 그는 마치 온 세상이 그의 의도를 알아챈 듯 숨을 삼켰다. 이내 문득 그를 반기는 친숙한 목소리.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상상 이상의 메시지가 왔군."
그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눈동자는 은은한 빛으로 반짝였다. 눈가에 깊게 패인 미소가 핀 꽃잎처럼 그를 감싸 안았다.
"도대체 이건 무슨 소리야? 마치 어디론가 소환된 기분이야."
"너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니? 누구라도 네가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지."
그의 뺨을 스치는 그녀의 긴 손은 차가웠지만 동시에 안정감을 주었다. 그녀의 품에서 전해지는 안전 속에 잠시 심장은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평화는 일시적일 뿐, 그의 발 아래서는 계속해서 전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의 경계에서 시작된 금속성 바닥의 마찰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문 앞에서 망설이는 그의 손은 그 먼 곳에 닿고 싶어 손을 비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곳은 곧 사라질 것이야."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무작정 문을 밀었다. 문 너머를 보자마자 그의 온몸은 꺼림칙한 한기와 낯선 고요함에 잠식되었다. 무수한 빛의 조각들이 미모사처럼 깜빡이는 공간이었다. 그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환영한다, 새로운 시작에."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세상은 마치 빛의 손에 의해 부드럽게 움직이는 유영하는 듯했다. 그의 심장소리가 반주가 되어 이곳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들이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 순간, 그의 뒤에서 날카롭고 기다렸던 소리가 다시 울렸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아직도 남아 있지."
뒤를 돌아본 그는 느닷없는 충격에 숨을 죽였다. 그를 향해 서 있는 낯익은 인물—하지만 동시에 전혀 새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모습은 어딘가 달랐다. 표정 하나하나에 담긴 호기심과 목적은 범상치 않았고, 말의 끝맺음조차 이상한 기세를 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이곳에 남겠다는 건가?"
그의 말투는 분명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었다. 이곳은 그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그가 좇고자 했던 모든 해답이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잠식했다.
"결정할 시간이야."
그는 앞으로 내딛으려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면에서 울리는 명확한 목소리가 그를 다시 붙잡았다.
"아직 미지수인 것은 무수히 많다. 그중 하나는 바로 너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소용돌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욱 복잡하고, 놀라운 비밀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불현듯, 그가 놓쳐왔던 무언가 중요한 것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의 몫으로 남겨진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의 머리 위로는 여전히 금속성 장치가 다양한 색으로 끝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곳이 지닌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이곳에서 그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그 잠재성이 그를 이끌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심장소리가 리듬을 잡도록 두었다. 빛 너머엔 그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라도,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의 앞에서 펼쳐진 미로 같은 무한한 세계. 그리고 그가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준비는 됐어."
마지막으로 그는 마음의 결정을 다잡고, 빛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앞에 불현듯 나타난 또 다른 인물. 놀랍고도 익숙한 얼굴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어."
그 입에서 나온 경고는 진동처럼 그의 몸 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의 숨이 멈추고, 세상은 다시 한 번 경직된 채 멈추었다.
다음 순간, 모든 것이 암흑 속으로 묻혔다. 이제 선택의 시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