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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화: 낯선 가족의 온기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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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 안의 공기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고급스러운 샹들리에에서 흘러내리는 빛, 벽에 걸린 값비싼 그림들, 그리고 발 아래 깔린 부드러운 카펫. 모든 것이 낯설고, 동시에 어색하게 나를 압도했다. 나는 한성가의 대저택 한가운데 서서, 이곳이 정말 내 새로운 ‘집’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회장님, 아니 아버지라 불러야 할 그분의 따뜻한 눈빛과 오빠라는 한서의 다정한 미소가 마음을 조금 녹여줬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린아, 방을 보여줄게. 네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준비해뒀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나는 그 말투에서 어쩐지 조심스러운 기운을 느꼈다. 내가 이 집에 온 것이 그에게도 낯설고 부담스러운 일일까? 아니면 단순히 나를 배려하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저택의 규모에 다시 한번 놀랐다. 복도 끝마다 커다란 창문이 있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빛이 반사된 대리석 바닥이 눈부시게 빛났다. 한서가 가리킨 방 앞에 섰을 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방은 내가 살던 원룸보다 훨씬 넓었다. 크림색 벽지와 고급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창가에 놓인 부드러운 소파까지. 이 모든 게 나를 위한 것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이 방… 정말 제가 써도 되는 건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 방은 내가 꿈꿔본 적 없는 세상 그 자체였다.

한서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 집에 온 순간부터 네 공간이야. 마음껏 꾸미고, 편하게 지내. 뭐든 필요하면 말하고." 그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나는 여전히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살짝 숙이며 "네… 고맙습니다."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게 전부였다.

방을 둘러보며 짐을 정리하는 동안, 문득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저택 정원에는 푸른 잔디와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에는 작은 연못도 보였다. 이 모든 풍경이 나를 더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기분으로 만들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내가 정말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갈 수 있을까? 25년간 혼자였던 내가, 갑작스럽게 이런 세상에 녹아들 수 있을까?

그때, 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한서가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하린아, 이거 받아." 그는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받아 들었다. 상자는 작지만 묵직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섬세한 디자인의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중앙에 박힌 작은 보석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어머니께서 네가 태어났을 때 주려고 준비하셨던 거야. 지금은… 내가 대신 전해주고 싶었어." 한서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깊은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목걸이를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봤다. 어머니. 그 단어는 내게 너무나 낯설고, 동시에 가슴을 찌르는 말이었다. 나는 그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이런 선물을 받으니 가슴이 이상하게 뭉클해졌다.

"고마워요, 오빠…" 처음으로 그 단어를 입에 담았다. 오빠. 어색했지만, 한서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하는 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됐다. 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적응해. 우리도 네가 편해질 때까지 기다릴게."

한서가 방을 나가고 나서, 나는 침대에 앉아 목걸이를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이 작은 물건이 나와 어머니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집에 숨겨진 비밀이 더 많을 거라는 불안이 밀려왔다. 25년이나 나를 찾지 못했던 이유,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던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궁금증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저녁, 저택의 거대한 다이닝 룸에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긴 테이블에는 나와 아버지, 한서, 그리고 남동생 준서가 앉아 있었다. 준서는 한서와 달리 말이 별로 없었다.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기보다는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눈빛이 신경 쓰였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린아, 이 집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뭐든 말해라. 네가 편해야 우리가 다 편하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눈빛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아직은 낯설지만… 다들 잘 대해주셔서 괜찮아요."

그때, 준서가 조용히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린 씨, 갑자기 이렇게 들어와서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요? 솔직히 우리도 좀 당황스럽긴 해요."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의 말투에서 적대감이 느껴졌다. 아니, 적대감이라기보다는 불편함일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한서가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하듯 말했다. "준서야, 하린이가 이제 막 온 거잖아. 우리 모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좀 더 배려하자." 그의 말에 준서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알겠어, 형."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그 시선이 불편했지만, 꾹 참고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저도 적응하려고 노력할게요."

식사 내내 준서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한서와 아버지는 나를 따뜻하게 대해줬지만, 준서는 왜 저렇게 날 경계하는 걸까? 내가 이 집에 들어온 게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이 집에서의 첫날,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온기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밤이 깊어 저택은 고요해졌다. 나는 방 창가에 앉아 정원을 내려다봤다. 달빛 아래 정원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 준서의 차가운 눈빛, 그리고 이 집에 숨겨진 비밀. 아버지가 말했던 ‘불미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왜 25년이나 고아로 살아야 했는지. 모든 게 궁금했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내 방 앞을 지나가는 소리였다. 나는 문틈으로 살짝 내다봤다. 어두운 복도에서 준서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딘가로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서류 봉투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저게 뭐지? 왜 이 시간에 저렇게 급히 움직이는 걸까? 호기심과 함께 불안이 밀려왔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집에서의 첫날 밤, 나는 온기와 불안을 동시에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준서의 태도, 그리고 이 집의 비밀. 모든 게 점점 더 궁금해졌다. 내 새로운 삶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가슴이 두근거리며,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