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12화. 상처를 두른 무대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트랙 위에서 민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용기를 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손끝에 묻어 나오는 불안의 흔적을 감춘 채로 휠체어를 고속으로 몰아갔다. 긴장감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속도가 자연스레 가속됐다. 한재현의 집요한 추격이었다.

핸들이 그의 손가락 끝에 녹아들었다.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두려움을 눌러 담으며, 민수는 앞의 길을 직시하려 애썼다. 그렇지만 그의 눈 앞에는 여전히 그가 넘지 못한 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재현이라는 이름의 불가침의 봉인이었다.

"내가 여기서 막고 있을게, 넌 먼저 가." 규리의 목소리가 불현듯 그를 깨우쳤다. 그녀는 부드러운 말 속에 단단한 약속을 담고 있었다. 민수는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방패임을 깨달았다.

규리는 적당히 몸을 기댄 채로 그가 직면해야 할 장애물에 마주서 있었다. 그녀의 좌중하는 모습은 마치 한계에 도전하는 그의 마지막 포옹 같았다.

그 순간, 지평선 위로 어둡고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이 그려졌다. 그들은 마지막 경로를 향해 도약하기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리에서 멀어지는 일렁이는 소리들 속에서, 민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결정을 밀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곤 달리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불현듯 바닥을 때리는 소음이 그를 불안에 떨게 했다. 그 소음은 길에서 지나가는 고향 본가의 편안한 애기체 농담처럼 들렸다.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지만, 그의 귀에 다가온 그 위로 속삭임의 조각들이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일그러진 그 소리가 민수의 귓가에 위태롭게 맴돌았다. 한재현이 아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그가 목표를 잊을새라 법석이었다.

민수가 더욱 굴거세며 휠체어 핸들을 잡아당기던 사이, 그의 머릿속에서 겨우 귀에 닿은 고운 음성이 다시 들렸다. "함께한 시간들은 변치 않아. 우린 잃지 말자." 지연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민수의 마음이 온전히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길이 가로막힌 도로 끝, 한재현은 민수를 바로 눈앞에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기운이 흘렀다. 경주 속의 열기와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어색한 어둠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못한 그림자 하나가 민수의 반대 길목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를 지나는 모든 것이 그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한 친구처럼 다가왔다.

"이제 결정해야 해, 민수야." 태호가 그 그림자의 중심에서 속삭였다. 그 말은 갑작스럽게 그의 귀를 베어냈다. 민수는 태호의 존재에 의해 방향을 나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지했다.

지금 형성된 그 모든 감정들이 그의 주변에서 뒤섞이고 있었다. 민수는 긴장된 눈으로 마치 박살 난 고요 속에서 새로운 걸음을 찾고 있었다. 이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 날이 끝나기 전에, 민수는 자신 안에 남겨진 모든 것을 끄집어냈어야 했다. 하늘 한편에서는 이미 어둠이 그의 공간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그는 휠체어 경주의 중심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준비해야만 했다.

다가올 사건의 소리가 그의 귀에 더욱 생생하게 들렸다. 붉은빛은 차가운 숨결 속에서 민수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 드리워진 긴 그림자는 아직도 인지가 안된 발걸음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가 선택하지 않으면 아직 완전히 획득하지 못한 희망의 스무 고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민수는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순간, 두려움은 계속해 새로운 실마리로 이어졌다. 누군가의 고백 같은 고조된 감정이 그를 멀리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