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따스했던 불빛이 사라지며, 방 안의 공기는 차가운 안개 같은 기운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심장은 마치 눈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처럼 긴장감에 서늘해졌다. 그러나 그 서늘함이 금세 우리의 깊은 숨소리에 의해 부서졌다. 한순간의 고요를 깨던 것은 그가 간직하던 속삭임이었다.
"나는 항상 이 순간을 기다려 왔어," 경호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세월의 무게가 짙게 배어 있었고, 그의 눈에는 보다 깊은 슬픔이 가득했다. 그는 그 어떤 것에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담배 연기를 쫓아 올라가는 듯한 서늘한 침묵이 겨드랑이를 스쳐 지나갔다.
방 한구석 어둠 속에 묻혀 있던 피아노는 금방이라도 깨어날 듯 했다. 음표들이 살아나려는 순간을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걸어가자, 경호의 눈에는 불안한 결의가 퍼졌다.
"네게 줄 메시지가 하나 있는데," 그의 목소리는 갑작스럽게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너의 길을 보장할 수는 없으니까 따라가 보겠어?"
나는 얼굴에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을 무시했다. 그 말에는 무언가 쓴맛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피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돌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는 거지?"
그 질문은 피아노 건반을 혼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의지하며 나는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응시했다. "그것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 아닐까?"
경호에게 걸린 나의 의도는 그대로 타고 다가왔다.
"그렇다면, 넌 준비된 것처럼 입술을 예쁘게 단장하는 게 좋을 거야." 그의 돌연한 조언은 즈음마다 뼈아프게 다가왔고, 무엇보다도 존재를 쥐어내는 것이 같았다. 마치 그가 어디로 가게 될지를 이미 알고 있었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 입 다물고 있을 수 없다며 나를 조용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순간, 고요를 깨는 건 하준이었다. "더욱 밝아질지도 몰라. 이건 단지 좋은 일일 수 있어,"라고 속삭였는데, 그의 말투에는 부드러운 응원의 미소가 서렸다.
형식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그 미소는 그러나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의 의도였다. 곧바로 벽 너머로부터 흐르는 불안한 진동에 정신이 간질어졌다. 이쯤에서 나는 피아노를 향해 한 발, 또 한 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 순간, 문득 방 안에 미약한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장대한 그림자가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과거의 음악가들로 가득 찬 환영처럼, 그들은 내 앞에 서서 여러 가지 질문으로 나를 막아섰다. 이 순간이 진짜인지 아등바등하던 동안, 나는 그들의 손끝을 응시하며 사방이 울리는 시간의 소리를 느꼈다.
"그 소리는 대체 무슨 뜻인가?" 나는 자신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릎을 꿇으며 물었다. 내 안의 두려움과 희망이 동시에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경호는 한 손을 가볍게 들어올리며 전등을 가리켰다. "너의 소리로 그것들을 변화시켜 봐." 그의 지침은 유려하고 명확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눈물방울처럼 울렸다.
이제 인식이 뒤집히기 전까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발걸음이 바라보일 것이었다.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주어진 방법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순간, 이상한 불투명이 아주 끈적거리는 어둠으로 가득 찬 그림자처럼 변하고 있었다. 이 현상은 다만 한가지 이유로 나를 압도했다. 체온이 피부 위에 천천히 스며드는 동안, 경호의 시선은 여전히 무겁고, 어딘가의 까마득한 과거로부터의 지시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귀에 전해지는 다른 쪽의 소리가 다시금 무너졌다. 낡은 헤드폰은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나의 손에 쥐어졌다. 나는 기이한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위해 다시 이 장치를 걸었다.
나는 나날이 기억되지 않을 멜로디를 다음 행보에서 손쉽게 찾기를 바라며 아침의 시작과 함께 첫발을 내디뎠다. 당분간은 이 고귀한 소리로부터 멀어진 채, 잡히기 힘든 순간의 감정으로 이 테두리에서 나의 상대를 쫓아갔다.
시간이 다가기 전까지, 불투명한 경계선 위의 떠오르는 색들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경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뱉어냈다. "이제 곧 다가올 시간이 올 거야. 아직도 준비되지 않았어?"
미래를 대망케 하는 경호의 말은 내가 마침내 발걸음을 멈출 이유를 주지 않았다. 한적한 고음의 유혹이 귓바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 손끝에서 맴도는 감각이 계속해서 이 세계의 심장을 뛰게 했다.
과거의 반복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그 소리 속에서, 나는 영원한 것을 기다리기가 더 두려워졌다.
갈빗대 심해를 헤엄치는 거대한 괴물처럼, 그 기운은 천천히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하지 않으려 했던 새로운 각성에 대비하는 현실에 다다르게 되었음을 순간적으로 이해했다.
자신의 자신감은 떨어진다면, 단지 그것을 방어막 삼취에서 모르는 채로 남겨 두었던 언어의 맥락이 경호가 주는 또 다른 선물임은 명확했다. 그와 나, 혹은 나의 미래와 엮일 수 있는 그 사람의 음악은 아직도 이 이야기 속으로 이어질 여운을 남였다.
그 순간, 벽 너머로부터의 소리가 노랫가락처럼 흘러 나왔다. 복도의 끝에 있는 문이 소리를 감추려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는 나란히 미래의 음색 속으로 걸어갔다. 곧, 익숙한 어느 문구가 머릿속에 핑 돌며 끈적하게 당기었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 중력의 손길이 나를 깊은 세계 속으로 이끌었다. 미리 짜놓은 발걸음들이 비로소 구름 너머의 빛드레에 맞춰 다가가는 낯선 여정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순간, 그 뒤엔 경호의 시선이 등 뒤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의 몸짓은 단 일말의 회피도 용납하지 않는 당당한 결의였다. 시간의 사슬에서 더 이상 자유롭게 움직일 그날을 고대하며, 나는 나의 내면에 꾸준히 스며드는 음악의 선율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모든 것은 이것 이상의 이야기가 될 것이었다. 조용히 스며드는 소리가 마음속 깊은 곳의 끈질긴 질문들처럼 나를 이끌어 나왔음을 직감했다. 혼자 걸어 나가던 그 길 끝에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