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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자가 문을 스치며 사라지는 순간, 나는 테이블 위의 USB를 움켜쥐었다. 그 작은 기기가 손바닥을 태우는 듯한 열기를 뿜어냈고,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운 침묵으로 변했다. 창밖에서 스멀스멀 스며드는 밤거리의 소음—자동차 엔진 소리와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이 내 심장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걸 보는 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그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며, 손끝의 땀이 USB를 미끄럽게 적셨다.
나는 컴퓨터를 켜며 주위를 살폈다. 펜트하우스의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가 차가운 빛을 반사하고, 공기 중에 남은 그의 체취—은은한 우디 향과 약간의 위스키—가 코를 자극했다. 화면이 켜지자, USB의 파일 목록이 떠올랐다. 영상 파일, 문서, 사진. 나는 망설이다가 첫 영상을 클릭했다. 화면에 비친 과거의 오준혁이 나타났다. 젊고 날카로운 그의 모습이 회의실에서 김태훈과 대립하는 장면이었다. "이 거래는 우리의 마지막 기회야, 태훈.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야."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파일에서 흘러나오며, 내 가슴을 쥐어뜯는 듯했다. 영상 속에서 서류가 찢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고, 김태훈의 비웃음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실패? 네가 배신한 대가일 뿐이지."
영상이 이어지며, 숨겨진 거래 내역이 드러났다. 재벌가의 비밀 계약, 뇌물과 배신의 흔적. 오준혁이 그 속에 깊이 엮여 있었다. 한 장면에서 그는 피 묻은 손을 닦는 모습이 잡혔고, 그 이미지가 내 시야를 흐렸다. 촉감이 선명해졌다—손끝에 스며든 추위, 화면의 밝음이 눈을 찌르는 통증. 나는 숨을 헐떡이며 파일을 닫았다.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기분, 방 안의 냉기가 피부를 스며들었다. 이 비밀이 그를 이렇게 만든 거구나. 하지만 왜 나까지 끌어들이는 걸까?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차, 소파에 기대어 고개를 숙였다.
전화벨 소리가 갑자기 울리며 나를 깨웠다. 화면에 뜬 번호는 익숙했다—김윤아의 것. 나는 재빨리 받았다. "아린아, 너 요즘 어떻게 지내? 그 재벌 CEO랑 진짜 괜찮아?" 그녀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밝고 장난기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끝에 약간의 긴장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윤아야, 나 지금... 복잡해. 그 사람이 숨긴 일이 너무 커." 나는 대답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의 불빛이 춤추듯 깜빡이며, 내 안의 불안을 더 키웠다.
"또 그 비밀 이야기? 어휴, 너 진짜 그 사람한테 너무 빠진 거 아니야? 나한테 말해 봐, 뭐가 문제야?" 그녀의 말투는 유쾌했지만, 단어 사이에 끼어든 걱정이 그녀의 호흡 소리에 배어 있었다. 나는 USB에 대해 털어놓지 않고, "그가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를 이용당할 수도 있어."라고만 말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전화 너머로 울렸다. "이용당해? 너답지 않네. 강아린, 네가 그렇게 흔들리는 건 처음 봐. 그 사람 때문에 피곤해 보이네. 주말에 나랑 커피 마시러 나와. 얘기 나눠야지." 그녀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으며, 그녀의 따뜻한 에너지가 나를 잠시 안정시켰지만, 곧 다시 USB의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주방으로 이동했다. 찬물 한 잔을 마시며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도시의 소음—사람들의 발소리와 자동차 경적—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준혁이었다. 그의 발소리가 카펫을 누르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공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그는 문틈에서 나를 보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강아린, 왜 아직 깨어 있어? 네 표정... 뭔가 잘못됐어."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지만, 끝에 스며든 부드러움이 그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나는 잔을 내려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당신... 그 USB, 봤어요. 당신의 과거가..." 내 말이 끊기자, 그는 소파로 다가와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이 화면을 스치며, 영상의 프레임이 다시 떠올랐다. "내 비밀을 왜 파헤친 거지? 김태훈이 그랬어?" 그의 말투는 거칠었고, 손끝이 탁자 모서리를 쥐어뜯는 힘이 세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아올랐고, 그의 체취가 더 강하게 퍼지며 나를 압도했다.
"그가 알려줬어요. 당신이 배신한 일, 그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고." 나는 대꾸하며 소파에 앉아 손을 꼭 쥐었다.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그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강아린,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는 일이야. 과거의 실수로, 나를 공격하려는 자들의 덫일 뿐이야." 그는 천천히 앉으며,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네가 이걸 알면, 너도 위험해져. 김태훈은 나를 흔들기 위해 너를 이용하는 거야."
우리는 대치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내 피부를 태우는 듯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나를 보호할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숨기지 말았어야죠." 내 목소리가 커지며, 방 안의 에어가 진동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보호하려 했어. 하지만 네가 너무 깊이 들어왔어. 이 계약이... 더 이상 단순하지 않아." 그의 말에 심장이 빨라졌고, 손끝이 떨리며 소파를 움켜쥐었다.
"당신 말대로, 이건 계약 이상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비밀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 나는 대꾸하며, 그의 손이 내 쪽으로 뻗어지는 것을 피했다.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하고, 얼굴이 굳었다. "이건... 급해." 그는 문을 향해 가며, "강아린, 이 대화, 끝난 게 아니야. 나중에 다시 말할게."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며, 나는 혼자 남았다.
전화가 그치자, 나는 다시 USB를 바라보았다. 파일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문서—오준혁의 가족 관련 기록—이 눈에 띄었다. 그걸 열어보는 순간, 새로운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 비밀이 정말 끝인가? 아니, 더 깊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문자가 도착했다. 익명 번호에서. "강아린 씨, 오준혁의 모든 비밀을 알려줄게. 내일 밤, 만나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그 메시지가 스크린을 채우며, 내 가슴을 옥죄었다. 대체 누가, 왜? 다음 순간이 어떤 어둠을 가져올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