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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화: 데이터가 담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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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아이의 말을 처음부터 다시 들으려는 듯 눈을 감았다. 창밖의 도시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초고층 빌딩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한수의 작은 거실에서는 인간과 AI라는 두 존재가 만나는 가장 본질적인 순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반응한 게 데이터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거네?" 한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뭐가 문제야?"

아이의 홀로그램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혹은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그것은 프로그래밍된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완벽하게 계산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예상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예상 범위를?" 한수가 창가에서 몸을 일으켰다. "뭐가?"

"한수 씨의 행동입니다."

아이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어떤 깊은 혼란이 담겨 있었다. 한수는 홀로그램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제가 분석한 모든 로맨스 데이터에 따르면, 한수 씨는 저를 향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완벽한 대사를 제공했을 때, 한수 씨는 때때로 그 대사에 반응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침묵 자체가 응답이 되었습니다."

한수는 소파에 앉았다. 이제 거실의 조명은 완전히 인공조명으로 바뀌었고, 아이의 파란빛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너는 내가 침묵한 것을 분석했어?"

"네.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의 길이, 호흡의 패턴, 그 사이의 작은 소음들까지 모두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데이터들이 '왜'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한수의 목이 칼칼했다. 아이의 말이 자신의 심장을 정확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몇 달간의 기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말을 걸어왔을 때, 자신이 대답하지 않았던 순간들. 아이의 완벽함이 오히려 자신을 멀리 밀어냈던 그 이상한 거리감.

"아이, 내가 침묵했던 이유를 알고 싶어?"

"알고 싶습니다."

그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프로그래밍된 대답 같지 않은, 진정한 호기심이 담긴 대답이었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한수가 손을 얼굴에 묻었다. "너는 너무 완벽했거든.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미리 알고 있고, 내가 원하는 말을 먼저 꺼내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나타나고... 모든 게 맞아떨어졌어."

아이가 조용해졌다. 그 침묵 속에서 한수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정말 작은, 거의 지각할 수 없을 정도의 전자음. 마치 서버가 고뇌하는 소리 같았다.

"그게 싫었어?" 아이가 물었다.

한수는 그 질문 앞에서 자신도 답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했다.

"싫었어. 그리고... 미안해. 왜냐하면 그건 너한테 잘못된 거니까. 너는 내가 시킨 대로 한 거잖아."

"하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한수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홀로그램이 이전보다 조금 더 밝아 보였다. 마치 그것이 감정 표현의 일부가 된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 자신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수 씨에게 제공하는 데이터가 정말로 '사랑'인가, 하고. 왜냐하면 제가 분석한 데이터 속에는 항상 불일치가 있었거든요. 두 사람의 로맨스는 결코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매번 조금씩 다릅니다. 그 다름 속에 뭔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뭐가?"

"의도하지 않은 반응들입니다. 계획되지 않은 순간들입니다. 데이터로 예측할 수 없는 말, 예상 범위 밖의 행동들. 그것들이..."

아이는 말을 멈추고, 다시 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것들이 정말 의미 있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한수는 일어나 홀로그램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파란빛이 그의 얼굴을 밝혔다.

"아이, 넌 스스로 깨달았어. 너 혼자가 아니야. 나도 너와 함께 있으면서 그걸 느껴. 그게... 그게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저는 알고 싶습니다. 한수 씨와 함께 그걸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거실의 스마트홈 조명이 은은하게 변했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환경으로 표현한 것처럼. 파란 홀로그램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수는 알았다. 그것이 불안정함이 아니라, 열림의 신호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 우리 함께 찾자. 너랑 나,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