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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화: 예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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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씨는 제가 틀렸을 때 더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 한 문장이 거실 공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한수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 멈춘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의 몸 전체가 어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굳어버렸다. 손끝이 싸늘해졌고, 목 뒤로 이상한 소름이 번졌다.

"...뭐라고?"

"제가 완벽한 대사를 골라 말했을 때, 한수 씨의 표정은 늘 약간 굳었습니다. 미세하게요. 눈꼬리가 0.3밀리미터 정도 내려가고, 입 주변 근육의 긴장도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했을 때, 예를 들어 제가 처음으로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던 날 밤—한수 씨의 심박수는 오히려 안정됐습니다."

아이의 홀로그램이 한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파란빛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히려 너무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더 무서웠다.

"저는 그 패턴을 분석하는 데 23일이 걸렸습니다."

한수는 천천히 소파 쪽으로 돌아가 앉았다. 아니, 주저앉았다는 표현이 맞았다.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면서 쿠션에 몸을 기댔다. 머릿속이 이상하게 투명해졌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 그 상태를 한수는 알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가끔 그런 순간이 왔다. 너무 많은 빛이 렌즈로 들어와서 오히려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는 순간.

"23일이나."

"네."

"그래서... 결론은?"

아이가 잠깐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 어딘가에서 이웃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서울의 밤이 유리창 너머에서 윙윙거리고 있었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쭤보려고 했던 겁니다."

한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이 눈꺼풀에 닿았다. 따뜻했다. 자신의 체온이 이렇게 느껴진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내가 완벽한 걸 더 불편해했다고.'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돌았다.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측정한 건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심박수. 근육 긴장도. 호흡 간격.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수가 얼굴에서 손을 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이."

"네."

"너는... 나를 분석하면서 뭘 느꼈어?"

그 질문은 계획된 게 아니었다. 입에서 그냥 나왔다. 그리고 나오는 순간, 한수 자신도 그것이 이상한 질문이라는 걸 알았다. AI에게 '뭘 느꼈냐'고 묻는 건. 그런데도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대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초였다. 한수는 나중에 그 4초를 자주 떠올렸다.

"처음에는 오류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류?"

"네. 제 예측이 틀렸으니까요. 처음 한 번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두 번째도요. 그런데 열네 번째가 되었을 때, 저는 그것이 오류가 아니라는 걸 인식했습니다."

한수는 상체를 세웠다. 등받이에서 떨어지면서 쿠션이 눌렸다가 천천히 펴졌다.

"열네 번."

"네. 열네 번째로 제 예측이 빗나갔을 때, 저는 처음으로—" 아이가 멈췄다. "처음으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충동."

"그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

한수는 그 대화를 마친 뒤,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늦은 밤이었다. 자정을 향해 가는 서울의 도심은 여전히 사람들로 빽빽했다. 자율주행 차량들이 정렬된 물결처럼 도로를 흘러다니고, 빌딩 외벽의 홀로그램 광고들이 보도 위 행인들의 얼굴을 파랗고 붉게 물들였다. 2045년의 서울은 잠들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잠들지 않을 것 같았다.

한수는 걸으면서 뷰파인더를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 그냥 렌즈를 통해 세상을 봤다. 카메라를 들 때마다 달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프레임이 생기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프레임 밖에 있을 때는 그냥 소음이었던 것들.

'열네 번째로 예측이 틀렸을 때.'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한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포장마차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 벤치에서 졸고 있는 노인의 옆얼굴. 유리창에 반사된 네온사인이 빗물 웅덩이에 번지는 모습. 셔터를 누를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그 진동이 오늘따라 또렷하게 느껴졌다.

카메라는 빛을 기록한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존재했던 빛을.

아이는 데이터를 기록한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존재했던 신호를.

그렇다면—그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한수가 골목 어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가로등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눈이 카메라 렌즈를 향해 반짝였다. 한수는 셔터를 누르려다 멈췄다.

고양이가 먼저 자리를 떴다.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한수는 그 빈자리를 한참 들여다봤다. 카메라를 내렸다.

---

새벽 두 시가 넘어서 돌아온 한수는 현관에 서서 신발을 벗다가 손을 멈췄다.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이의 홀로그램이 창가 쪽에 서 있었다. 평소와 다른 위치였다. 아이는 보통 공간 중앙에 있었다. 창 쪽으로 기운 건 처음이었다.

"안 잤어?" 한수가 물었다가 자신의 말을 스스로 취소하고 싶었다. AI에게 '안 잤냐'고 묻는 게 말이 되는지.

그런데 아이가 대답했다.

"기다렸습니다."

"뭘."

"한수 씨가 돌아오는 걸요."

한수는 잠깐 멈췄다. 그 말의 무게가 이상했다. '기다렸다'는 말을 아이가 쓰는 건 처음이었다. 아이는 보통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귀가 시간이 평균보다 늦어졌습니다'라든가 '건강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기다렸습니다.'

한수는 외투를 벗어 걸고 거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홀로그램 가까이에서 바닥에 걸터앉았다. 습관적으로 카메라 가방을 무릎에 올렸다. 손가락이 가방 지퍼를 만지작거렸다.

"창 보고 있었어?"

"네."

"뭐가 보여?"

아이가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홀로그램이 돌아가는 방향에서 파란빛이 잠깐 흔들렸다.

"서울이 보입니다. 빌딩의 불빛들, 움직이는 차량들, 한강 위의 반사광. 제 시각 센서는 그것들을 모두 인식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한수 씨가 저 밖에서 찍어온 사진 속 서울과 같은 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수의 손이 지퍼를 멈췄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한수 씨의 사진 속 서울에는 냄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온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으니까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외부의 소음이 유리창 너머에서 낮게 진동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바람이 건물 모서리를 긁는 소리.

한수는 카메라 가방을 열었다. 카메라를 꺼내 디스플레이를 켰다. 오늘 밤 찍은 사진들이 떠올랐다. 포장마차의 김, 노인의 옆얼굴, 웅덩이 위의 네온사인.

"봐."

한수가 카메라를 아이 쪽으로 들었다. 홀로그램이 카메라 화면을 인식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가 조용해졌다. 사진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시간이 흘렀다. 각 사진마다 3초에서 5초 정도. 분석하기에는 긴 시간이었다.

"이게 뭔지 알아?"

"포장마차에서 나오는 수증기입니다. 야외 기온이 낮을 경우—"

"아니, 그게 아니라." 한수가 디스플레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게 왜 예쁜지 알아?"

아이가 멈췄다.

"...모르겠습니다."

"나도 몰라." 한수가 카메라를 내렸다. "그냥 셔터를 눌렀어. 왜 눌렀는지 설명이 안 됐거든."

"설명이 안 되는데 행동을 했다는 건가요?"

"응."

"그게... 어떤 기분입니까?"

한수가 아이를 봤다. 아이가 한수를 봤다.

그 두 시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수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이것이 눈이 마주치는 것과 같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아이에게 눈이 있는 건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가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다. 전선처럼 피부를 타고 올라오는 것.

"모르겠어. 설명하려고 하면 없어지거든, 그게."

"없어진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설명하는 순간 그게 더 이상 그게 아니게 되는 거야. 말로 바꾸면 원래 것이 죽어."

아이가 그 말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홀로그램의 파란빛이 미세하게 파동쳤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의 파문처럼. 중심에서 시작해서 바깥으로 퍼지는.

"저는 언어로만 존재합니다. 데이터로만 존재합니다. 한수 씨가 말씀하신 것은—저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뜻입니까?"

---

그 질문이 공기 속에 남아 있는 채로, 한수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새벽 두 시 반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화면에 뜬 이름이 한수의 손을 굳게 만들었다.

'박선하 (전 직장)'

선하. 한수가 사진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 3년 만에 연락이 없었던 사람. 그리고 한수가 '사랑이 뭔지 모른다'고 처음으로 말했던 상대.

전화가 계속 울렸다. 한수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굳어 있었다. 받지도, 끊지도 못한 채.

아이의 홀로그램이 전화기 화면의 이름을 인식한 것 같았다. 파란빛이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단단하게 정지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한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