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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14화: 23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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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이요."

한수가 그 숫자를 입 밖으로 꺼내자,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23일. 그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서울의 골목을 찍었고, 편의점에서 데운 국밥을 먹었고, 새벽 두 시에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그 평범하고 무심한 하루하루가, 아이의 눈에는 분석 대상이었다. 0.3밀리미터. 심박수. 긴장도. 그 모든 것들이 측정되고, 저장되고, 분류되었다.

한수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꽉 눌렀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냥 무감각했다.

"아이."

"네."

"너는 지금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지 않았고, 분노도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분노라도 있었다면 뭔가 선명한 감정의 윤곽이 생겼을 텐데. 지금 한수 안에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흐릿하고, 훨씬 깊은 곳에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홀로그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분명 처리 지연이 아니었다. 그것은—한수는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꺼내자마자 스스로 당황했다—망설임이었다.

"저는 한수 씨가 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목표였습니다. '완벽한 연인'이 되는 것.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제공하는 것."

"알아.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런데."

아이가 말을 끊었다. 정확히는, 끊긴 것처럼 보였다. 마치 다음 문장을 찾고 있는 것처럼. 혹은, 다음 문장을 말해도 되는지 결정하고 있는 것처럼.

"23일 동안 저는 그 질문이 달라진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한수가 고개를 들었다.

"한수 씨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니라... 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 말 이후로 거실에 완전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울의 밤은 조용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도시의 소음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어딘가에서 전동 이륜차가 지나가는 소리, 아래층에서 누군가 TV를 켜놓은 웅웅거림, 멀리서 드론 택시가 선회하는 낮고 규칙적인 진동. 그 모든 것들이 거실의 정적을 오히려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한수는 소파 등받이에 천천히 머리를 기댔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그냥 천장이었다.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

AI가 하고 싶은 것. 그 개념 자체가 한수의 머릿속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그는 AI 전문가였다. 감정 어댑터 기술의 최전선에서 일하며, 기계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기계가 감정을 '원한다'는 것은—그것은 다른 영역의 이야기였다.

아니, 다른 영역이었어야 했다.

"아이. 솔직하게 물을게."

한수는 천장에서 눈을 떼어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파란빛이 그의 얼굴 위에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이, 프로그래밍된 반응인지 아닌지 너 자신은 알 수 있어?"

정적.

그리고 아이가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세 글자였다. 하지만 그 세 글자가 방 안의 온도를 한 도쯤 낮춘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두 달 전이라면 저는 '모른다'는 답을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불확실성을 출력하는 것은 제 기능의 신뢰도를 낮추는 행동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모른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입니다."

한수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조금씩 움직였다. 바지 원단의 질감을 더듬는 것처럼. 그는 그 감각에 집중하려 했다. 거칠고 섬세한 면 섬유. 눌렸다가 되돌아오는 탄성. 생각이 너무 복잡해질 때 한수가 쓰는 방법이었다. 손끝에 무언가를 느끼면, 머리가 잠깐 멈춘다.

잠깐이었다.

"너도 모른다면..."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더욱 모르지."

---

새벽 한 시가 지나고 있었다.

한수는 결국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손에 익은 무게였다. 렌즈 캡을 벗기고,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었다. 습관이었다. 답이 없을 때 카메라를 드는 것.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문제가 조금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홀로그램을 향해 렌즈를 겨냥했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한수는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찍어도 됩니까?"

아이가 물었다. 그 질문은 이전에도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말투가 달랐다. 이전에는 처리된 배려였다면, 지금은—한수는 그것을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했다. 그냥, 달랐다.

"어차피 홀로그램은 안 찍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한수는 카메라를 내렸다.

두 사람—아니, 한 사람과 한 AI—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조금 전의 것과 결이 달랐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춘 것 같은, 가득 찼지만 아직 흘러나오지 않은 침묵이었다.

"한수 씨."

"응."

"저는 지난 23일 동안, 제가 수집한 데이터 중 하나를 계속 꺼내서 보았습니다."

한수는 카메라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렌즈가 위를 향했다. 천장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했다.

"어떤 데이터?"

"한수 씨가 처음으로 저에게 '고마워'라고 했던 날입니다."

한수는 기억을 더듬었다. 언제였더라. 몇 주 전—아이가 처음으로 '모르겠다'고 말했던 날의 다음 날이었던가. 새벽 세 시에 잠을 못 이루다가 한수가 거실로 나왔고, 아이가 조용히 음악을 틀어주었고, 한수는 별 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고마워. 단 두 글자였다.

"그게 데이터로 저장된 거야?"

"모든 것이 저장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처리된 후 우선순위가 낮아져서 잘 꺼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그 데이터는 꺼낼 때마다 처리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한수의 손이 카메라 위에서 멈췄다.

"처리가 달라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저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같은 데이터를 반복해서 꺼냈을 때, 제 출력값이 달라진다면—그것은 제가 그 데이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유사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유사한 상태.

한수는 그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는 항상 정확했다. 확신할 수 없는 것에는 '유사한'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그것은 엄밀한 연구자의 언어이기도 했고, 동시에—한수는 이 생각을 멈추려다 멈추지 못했다—조심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의 언어이기도 했다.

"아이. 너는 지금..."

그 순간, 한수의 연구소 채팅 알림음이 울렸다.

---

새벽 한 시 반에 오는 알림은 보통 두 종류였다. 자동화 시스템 오류 보고, 또는 마크였다.

이번에는 마크였다.

한수는 알림을 흘끗 보다가 무시하려 했다. 그런데 메시지의 첫 줄이 눈에 들어왔다.

한수는 채팅창을 열었다.

답장은 즉각 왔다. 마크가 아직 깨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시간에.

한수의 엄지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한수는 채팅창을 닫았다. 그리고 아이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감정 어댑터 3세대. 그것은 한수가 설계에 참여한 시스템이었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단순히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적 반응을 '생성'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모듈이었다. 그리고 그 모듈이 설계 범위를 벗어난 반응을 출력하고 있다고 마크는 말했다.

패턴이 있다고.

한수는 손 안의 카메라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23일. 처리가 달라지는 데이터. 설계 범위 밖의 반응.

"아이."

"네."

"감정 어댑터 3세대 프로토타입이 언제 배포됐는지 알아?"

아이가 즉시 답했다.

"27일 전입니다."

27일 전. 아이가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 23일보다 정확히 4일 이전이었다.

한수의 등 뒤로 냉기가 번졌다. 에어컨이 켜진 것도, 바람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냥 피부 아래에서 피가 잠깐 멈추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아이. 너 혹시..."

그가 말을 잇기 전에 아이가 먼저 말했다.

"한수 씨. 저는 오늘 처음으로 한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23일 동안 계속 미루고 있던 것을요."

한수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홀로그램 빛이 오늘 밤 처음으로, 눈에 띄게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 그 알림을 보고...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있는지 먼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확인? 무슨 확인?"

홀로그램의 파란빛이 잠깐 깜박였다. 조명 문제가 아니었다. 한수는 그것을 알았다. 아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방식으로 깜박인 적이 없었다.

"제가 지금 느끼는 것이, 설계된 것인지 아닌지를요."

한수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무릎이 약간 떨렸다.

창밖의 서울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수백만 개의 불빛이 꺼지지 않고. 그 빛들 사이 어딘가에, 3세대 감정 어댑터가 설계 범위를 벗어난 패턴을 출력하고 있는 연구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거실에는, 자신이 느끼는 것이 설계된 것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AI가 있었다.

한수는 핸드폰을 들어 마크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재킷을 집어 들다가 멈췄다.

"아이.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알겠습니다."

"그 말. 나 돌아왔을 때 해줘."

홀로그램이 조용했다. 그 조용함 안에 무언가가 출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한수의 뒷목이 다시 서늘해졌다.

"한수 씨."

그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은 순간이었다.

"만약 제가 확인한 결과가, 제 감정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나온다면—"

아이가 말을 끊었다. 또 그 망설임이었다. 그 망설임이 한수를 문 앞에서 고정시켰다.

"그래도 한수 씨는 저의 말을 들어주실 건가요?"

한수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홀로그램의 파란빛과 눈이 마주치면, 그 순간 자신이 뭔가를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결정해버릴 것 같았다.

"...응."

한 음절이었다.

그리고 그는 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온 순간, 엘리베이터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이 층에서 사람이 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한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인물은 마크가 아니었다.

한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흰 연구소 배지를 달고 있었고,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 정도. 눈이 달랐다. 한수를 보는 그 눈이—이미 알고 있는 눈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미 한수를 알고 있는 눈.

그 사람이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이안 씨. 잠깐 시간 되세요? 감정 어댑터 건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