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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서의 말이 응접실에 차가운 파동을 일으키며 울렸다. "형도, 아버지도… 더 이상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걸." 그 충격적인 말은 내 심장을 꿰뚫는 비수 같았다. 내가 진실을 알게 되면 가족에게 버려질 것이라니. 이 집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눈앞의 한서 오빠와 준서는 마치 거대한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보였다. 한서 오빠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함께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준서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준서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한서 오빠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그는 준서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대체 무슨 진실을 말하는 건데? 하린이가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거라니! 당장 설명해!"
하지만 준서는 한서 오빠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설명할 필요 없어요. 형은… 늘 진실을 보지 못했으니까.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하린 씨가 왜 사라졌었는지… 형은 그저 아버지의 말을 믿고 싶었을 뿐이잖아요."
준서의 말은 단순히 감정적인 싸움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숨겨진 진실의 조각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아버지의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모호한 표현, 준서의 ‘엄마, 미안해’라는 중얼거림, 그리고 이제 이 ‘진실을 외면했다’는 말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준서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이야? 무슨 진실이 있는데? 어머니의 죽음이… 내가 사라진 것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데?"
준서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싸늘한 눈빛으로 한서 오빠를 바라봤다.
"형은 항상 하린 씨를 보호하려고만 했어. 아버지처럼. 하지만 그 보호가… 진짜 진실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거야? 그 진실은… 우리 가족 전체를 흔들 거야. 당신이 재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진실 때문이야. 당신은 그저 그 진실의 결과일 뿐이니까."
그의 말은 더욱 모호해졌지만, 그 무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나는 내가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음모나 사건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가족에게 버려질 수도 있다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한서 오빠는 준서의 말을 끊었다.
"준서야! 그만해! 대체 하린이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함부로 추측하지 마!"
"추측이 아니에요, 형. 이건 전부 사실이야. 형도 알고 있잖아요. 우리가 늘 피해왔던 그 그림자… 그게 이제 하린 씨의 등장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거라고요."
준서의 말에 한서 오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분노로 이글거렸지만, 동시에 깊은 고통과 체념 같은 것이 엿보였다. 마치 준서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듯한 미묘한 기색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한서 오빠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진실의 일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 중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응접실의 어두운 분위기는 우리의 싸늘한 대화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두 오빠 사이에서 흔들리며, 이 싸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내가 과연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편을 나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오빠… 정말 알고 있는 거야? 아버지가 말한 ‘불미스러운 일’이 뭔지… 준서가 말하는 진실이 뭔지…"
나는 한서 오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렸고, 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린아… 지금은… 지금은 때가 아니야. 준서가 너무 감정적으로 말하고 있어. 나중에… 나중에 내가 다 설명해 줄게. 걱정하지 마. 넌 절대 우리 가족에게 재앙 같은 존재가 아니야."
한서 오빠는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그 따뜻함 속에서 나는 어딘가 모를 불안감과 회피를 느꼈다.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가 말하는 ‘나중에’라는 시간이 과연 언제일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나중에’가 오기 전에 내가 이 집의 비밀에 파묻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중에라니… 언제요?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내가 왜 버려졌는지,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채로?"
내 목소리가 더 격앙되었다. 내가 25년간 혼자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응어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그때, 준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사라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죠. 우리 가족은 그 진실을 덮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어요. 특히… 아버지와 형은… 당신이 그 진실을 알게 되면… 이 집에 머무르기 힘들 겁니다. 어쩌면… 당신이 우리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을 테고."
준서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들렸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우연이 아니다? 이 집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이 정교하게 짜인 어떤 그림 속의 조각들이라는 말인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서 오빠는 결국 참지 못하고 준서에게 소리쳤다.
"준서! 그 입 다물어! 더 이상 하린이에게 상처 주지 마!"
그의 목소리에는 아픔과 함께 강력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준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잠시 한서 오빠를 노려보더니, 이내 뒤돌아 응접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쾅, 하는 굉음이 다시 한번 복도에 울려 퍼졌다.
준서가 나간 후, 응접실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한서 오빠는 내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나는 그의 진심 어린 위로조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눈빛 속에 드리워진 그늘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린아… 준서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 걔가 원래 좀 그래. 어머니 일 때문에 많이 힘들어해서… 감정적으로 격해지면 앞뒤 안 보고 말하거든."
한서 오빠는 애써 미소 지으며 나를 달랬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슬퍼 보였다. 그는 준서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적으로 격해졌다’고 둘러댈 뿐이었다. 그의 말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의심을 심어주었다.
"오빠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준서가 왜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는 거야?"
나는 그의 눈을 다시 한번 똑바로 바라봤다. 한서 오빠는 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몰라…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하린아, 어떤 진실은… 알지 않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 거야."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니. 그것은 곧 내가 알면 안 되는, 혹은 알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나를 향한 다정함 뒤에 이런 무거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나는 그제야 이 집에서 내가 느끼는 불안감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집은 단순히 부유한 공간이 아니었다. 거대한 비밀과 침묵으로 쌓아 올려진 성이었다.
나는 한서 오빠의 품에서 벗어나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알아야겠어. 내가 왜 이곳에 와야 했는지,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내가 왜 25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왔는지. 이 모든 진실을 알아야만 해.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모르는 게 나를 더 병들게 할 거야."
내 결심은 확고했다. 더 이상 그림자 속에서 숨어 있을 수 없었다. 이 집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어쩌면 나를 또 다른 고통으로 이끌지도 모르지만, 이대로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준서의 적대심이든, 한서 오빠의 회피든, 아버지의 모호한 침묵이든, 이 모든 것이 나를 진실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한서 오빠는 내 눈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결심을 읽었는지, 더 이상 나를 말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 손을 조용히 잡고 말했다.
"만약… 정말 그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면… 혼자 두지 않을게. 내가… 내가 너를 지켜줄게. 약속해."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강렬하게 와닿았다. 그의 따뜻한 손길은 나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끈처럼 느껴졌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슬픔 속에서도 나를 향한 깊은 걱정과 애정이 엿보였다. 그 순간, 나는 한서 오빠에게 조금 더 기대고 싶어졌다. 그의 다정함이 어쩌면 이 집의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줄 유일한 빛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약속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지켜줄게'라는 말은 그가 나보다 더 큰 위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가 나를 지켜야 할 만큼, 그 진실이 잔혹하다는 뜻이었다.
응접실을 나와 방으로 돌아오는 길, 저택의 복도는 이전보다 훨씬 길고 어둡게 느껴졌다. 나는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은 여전히 혼란의 소용돌이였다.
준서의 경고, 한서 오빠의 불안한 위로, 그리고 그들 모두가 숨기고 있는 잔혹한 진실. 나는 재벌가의 숨겨진 딸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장기판 위의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움직임에 좌우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 집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것이 될 터이다.
나는 조용히 방을 둘러봤다. 이 호화로운 공간 어딘가에 내가 찾아야 할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 저택 밖, 과거의 기록 속에. 이제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 집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진실의 빛을 찾아 나설 시간이었다. 내일, 나는 반드시 그 그림자의 실체를 파헤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든, 어떤 관계를 파괴하든 상관없었다.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불꽃을 느끼며, 나는 굳게 주먹을 쥐었다. 이 미로 같은 집에서, 나는 내 길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