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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제24화: 태양의 무덤, 그림자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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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의 무덤, ‘태양의 영면실’에 잠들어 있지.

카엘의 마지막 말은 지독한 냉기가 되어 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고 어두운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태양의 영면실. 제국의 건국 신화 그 자체이자, 살아있는 자는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다고 알려진 성역 중의 성역. 황제의 장례식 때조차, 그 누구도 입구 너머를 본 자가 없었다. 그곳은 신의 영역이었다.

“미친 소리.”

내 입술 사이로 얼어붙은 단어가 새어 나왔다. 옆에서 나를 부축하고 있던 이안의 몸이 돌처럼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내 등을 적시는 축축한 감각보다, 그 이름이 주는 절대적인 공포가 더 차갑게 와닿았다.

“네놈의 혓바닥으로 감히 그곳을 입에 담아? 초대 황제 폐하의 무덤을 도굴이라도 하자는 거냐!”

이안이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를 넘어선 경악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것은 신성모독이었다. 제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경이었다.

하지만 카엘의 얼굴에는 죄책감이나 두려움 따윈 한 조각도 없었다. 그는 그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도굴이라니, 말이 험하군. 우리는 그저 잠시 ‘빌리는’ 것뿐이야. 위대한 선조께서 후손의 위기를 위해 잠시 유품을 내어주시는,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지 않겠어?”

“닥쳐! 네놈의 그 더러운 주둥이를 찢어버리기 전에…!”

“진정하게, 늑대 나리.”

카엘은 이안의 분노를 가볍게 손짓으로 받아넘겼다.

“흥분은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는 법이야. 지금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있나? 황태자는 ‘밤의 가시’ 저주를 완성해 세상을 제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있고, 자네의 동생은 그 위대한 실험의 부작용으로 죽어가고 있지. 이대로 손 놓고 기다리면, 모두 함께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게 될 텐데. 그보다는 신의 영역에 한번 도전해보는 게 더 희망적이지 않나?”

그의 말은 한 치도 틀린 구석이 없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그는 우리의 마지막 남은 상식과 윤리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나는 카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달빛에 젖은 그의 자수정 빛 눈동자는 모든 것을 비웃는 심연처럼 깊었다.

“어떻게 들어가지?”

내 질문에, 이안과 엘리안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정말로 그 미친 제안을 받아들일 셈이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 물음에 카엘의 입가에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역시 말이 통하는군, 릴리아. 방법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지독하게 어려워. 태양의 영면실은 오직 태양의 피, 즉 황실의 직계 혈통에게만 문을 열어주거든. 그리고 그 피의 주인이, 자신의 가장 강한 ‘의지’를 담아 문을 밀어야만 해.”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나는….”

“그래, 바로 그게 문제야.”

카엘이 내 말을 가로챘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장난기가 사라지고, 냉철한 분석가의 예리함만이 남아 있었다.

“너는 반쪽짜리 그림자. 제국의 마법은 너를 황족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다. 네 진짜 몸은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되어 황궁 지하에 파묻혔으니. 네가 아무리 문을 밀어봤자, 그 문은 꿈쩍도 하지 않을 테지. 그래서, 우리는 열쇠를 ‘속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해.”

***

수도 외곽, 버려진 양조장은 역한 맥주 찌꺼기 냄새와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리가 간신히 몸을 숨긴 새로운 은신처였다. 이안은 벽에 기댄 채, 엘리안이 건네준 소독약을 상처에 들이붓고는 짐승 같은 신음을 삼켰다. 그의 얼굴은 고통과 분노, 그리고 절망으로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아, 깨끗한 천으로 그의 상처를 다시 동여맸다. 그는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굳게 입을 다문 채,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탓이 아니야.”

“하지만….”

“네가 뭘 선택했든, 나는 널 원망하지 않았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투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무겁게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카엘을 증오하고, 동생을 구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탓할지언정, 결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부서진 별의 요람보다 더 날카롭게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반드시… 방법을 찾을 거야.”

그것은 그를 향한 위로인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맹세였다.

“대장, 카엘 경이 이걸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은신처 입구에서 망을 보고 돌아온 엘리안이,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를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도 눈에 익은, 우아하고 유려한 필체였다. 나는 그것을 받아 펼쳤다. 그 안에는 태양의 영면실 주변의 지형과 경비 체계, 그리고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영면실의 문양인가?”

“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글귀가, 카엘 경이 말한 ‘열쇠를 속이는 방법’인 듯합니다.”

나는 촛불 아래로 양피지를 가져갔다. 문양 아래에는, 고대어로 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태양은 홀로 빛나지 않으니, 두 개의 그림자가 길을 열고, 달의 심장이 그 빛을 증명하리라.」

“두 개의 그림자… 달의 심장… 이게 대체 무슨 수수께끼 같은 소리지?”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엘리안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태양은 황제를 의미할 테고, 두 개의 그림자는… 아마도 황제를 섬기는 가장 가까운 존재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초대 황제를 보필했던 두 명의 대마법사, 혹은 두 명의 기사단장일 수도 있겠군요. 문제는… 달의 심장입니다. 제국의 역사 어디에서도 ‘달의 심장’이라는 유물이나 인물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개자식은 우리에게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져주고 또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고 있는 거군.”

이안이 분노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말없이 양피지에 그려진 문양을 뜯어지게 쳐다보았다. 태양을 중심으로, 좌우에 한 쌍의 검이 교차하고, 그 아래에 초승달이 태양을 받치고 있는 듯한 형상.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문의 잠금쇠를 여는 순서나 방식을 암시하는 암호일 터였다.

두 개의 그림자. 나와, 또 다른 누군가.
달의 심장. 존재하지 않는 열쇠.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카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해답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우리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낼 것이라 믿고 있었다. 아니, 내가 풀어낼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왜? 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

“잠은 좀 잤나?”

새벽의 푸른빛이 좁은 창틈으로 스며들 무렵,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내게 카엘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어느새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아, 마치 제집 서재에라도 온 것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기척은 연기처럼 희미했다.

“네놈 낯짝을 보고 잠이 올 리가.”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는 내 대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참 유감스럽군. 앞으로는 아주 지겹도록 보게 될 텐데. 미리 좀 익숙해지는 게 좋지 않겠어?”

“본론만 말해. 그 수수께끼, 네가 아는 걸 전부 불어. 빙빙 돌려 말할 시간 없어.”

“정답을 바로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그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품 안에서 작은 사과 하나를 꺼내 나이프로 껍질을 돌려 깎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저 힌트를 줄 뿐이야. 문제를 푸는 건 네 몫이지. 생각해 봐, 릴리아. 네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잃어버린 건 황녀라는 신분, 가지고 있는 건 엿 같은 운명뿐인데.”

“아니.”

그는 깎던 사과를 내게 툭 던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너는 ‘그림자’의 운명을 가졌지만, 동시에 ‘태양’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너는 누구보다 황실의 비밀을 잘 알고, 누구보다 황실의 마법에 익숙하지. 네 어머니가 네게 남겨준 것은 저주뿐만이 아니었을 거야.”

그의 말에, 뇌리를 스치는 기억의 파편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내게 몰래 가르쳐주었던 수많은 고대 마법진과 역사 이야기들. 그녀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너는 특별하단다, 카일루스. 네가 알아야 할 세상은, 네 오라비들이 배우는 세상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단다.’ 나는 그것이 그저 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헛된 희망은 품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네 진짜 목적이 뭐지?”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이 궁금했다.

“돈? 권력? 아니면 그냥 이 세상이 불타는 걸 보고 싶은 미치광이인가?”

카엘은 사과 껍질을 마저 깎아내고는, 나이프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 어린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자수정 빛 눈동자는 새벽의 차가운 빛을 받아,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내 것을 되찾으려는 것뿐이야.”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무거웠다.

“내 것을… 황실에 빼앗긴 내 모든 것을.”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먼 곳, 내가 알 수 없는 과거의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있었다.

“네게만 말해주지. 어차피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이니까. ‘밤의 가시’ 저주가 세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이솔데 양이 처음이 아니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 내 가문에서… 내 누이의 몸에서 처음 피어났지. 황혼의 교단과 손을 잡은 황실의 비열한 실험에, 내 가문 전체가 제물로 바쳐졌다. 그리고 나 혼자만 살아남았어.”

그의 고백은 망치처럼 내 뒤통수를 내리쳤다. 배신자, 정보상, 혼돈을 즐기는 미치광이. 내가 그에게 붙였던 모든 이름표가 한순
간에 너덜너덜하게 찢겨 나갔다. 그의 모든 행동, 모든 말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모든 판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복수를 위해 가장 절박하게 발버둥 치고 있었던 또 다른 피해자였다.

“황태자는 그 저주를 완성하려 하고, 나는 그것을 파괴하려 한다. 우리의 목적은 같아. 다만,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니 너무 날 세우지 마, 그림자 공주. 나는 네가 가진 가장 확실한 칼이자,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될 테니까.”

그가 은신처의 문을 열고 새벽의 어스름 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내가 그를 불렀다. 그는 문고리를 잡은 채, 돌아보지 않고 멈춰 섰다.

나는 내 손안의 사과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카엘이 내게 준 것은 단순한 힌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해답 그 자체였다.

“두 개의 그림자는… 사람이 아니야.”

내 중얼거림에, 카엘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태양의 영면실을 지키는 것은, 초대 황제의 그림자 기사.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황실의 피에만 반응하는 두 개의 마법 골렘이지. 그리고 그들을 깨우는 열쇠는… 황녀 카일루스, 즉 내가 어릴 적 어머니에게 배운 고대의 기사 소환술식이야. 내 피와 기억, 둘 다 필요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은 카엘의 등이 아닌, 그가 남기고 간 양피지 속 ‘달의 심장’ 문양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달의 심장’은, 대체 뭐지?”

카엘은 여전히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까지 네가 알아낸다면, 정말로 널 내 파트너로 인정해주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밤공기를 찢었다. 엘리안이 미리 설치해 둔, 침입자를 알리는 마력 경보였다.

“젠장! 벌써 들이닥친 건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안이 벌떡 일어나며 검을 움켜쥐었다. 엘리안 역시 단검을 뽑아 들고 입구를 향해 경계 자세를 취했다.

카엘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손님이 좀 일찍 도착한 모양이군.”

그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곳에 서 있던 것은 황궁의 기사들이 아니었다.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로브를 벗자, 낯익은 얼굴이 드러났다.

음모와 술수의 대가, 마르셀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경박한 미소 대신, 짙은 피로감과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이런, 이런. 두 분이서 오붓하게 밀회를 즐기고 계셨군요. 죄송하지만, 그 로맨스는 잠시 미뤄두셔야겠습니다.”

그가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우리 모두에게 폭탄 같은 소식을 던졌다.

“황태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별의 요람이 무너진 것에 격노해서, 수도 전체에 계엄령을 내리고 이 잡듯 우리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마르셀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가… ‘황혼의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을 수도로 불러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