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사각지대에 있던 전신 거울이 주인공의 몸과 눈을 맞췄다. 낯설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리다, 자신의 숨소리가 귀가에 울리는 것을 느꼈다. 착각일 수 있겠지만, 그는 이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세상은 확실히 고요했다. 그러한 순간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오는 법이다.
마치 잠에서 막 깨어나 추락하듯 남겨진 이 내던져진 현실에, 그는 어려서부터 듣곤 했던 노래의 후렴구를 중얼거리며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여기에 있는 그가 어제의 그였다면, 오늘은 누구란 말인가? 자신이 서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지금 당장 마주해야 할 것들은 사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뭐지, 이 방은...?"
그가 소리 내어 묻자, 공기 중의 작은 진동이 그를 향해 되돌아왔다. 먼지가 쌓인 방 안, 어딘가 허름하면서도 익숙하게 생긴 가구들이 드문드문 배치된 그 방은 가장 어린 시절 그의 기억 속 단편으로부터 뚜려하게 떠올랐다. 외양은 변화되었을지 모르나, 그 본질은 여전했다.
그 방 안에 자리한 침대, 침실 벽에 걸려 있는 포스터, 그리고 옆 테이블에는 어제와 같지 않은, 그러나 어딘가 전혀 의문점을 자아내는 작은 금속 시계가 놓여 있었다. 시간이거니와 그가 아는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명확한 실체를 지닌 것이다.
**
"어머, 벌써 일어났네?"
문득 그의 뒤에서 들린 부드러운 목소리에 그는 자신의 숨소리를 멈췄다. 그곳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자주 떨었던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이 잔잔한 항상성이 그에게는 안도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을 조장했다.
"어머니?" 그가 몸을 돌리며 물었다. "여기는..."
"오늘 중요한 날이잖아,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다. 나중에는 이런 일 없도록 해야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참 좋지 않아. 특히 그 건강한 피부에도!”
그가 질문을 던지려 했으나 그녀는 부드럽게 그의 말을 밀어내었다. 그녀의 얼굴에 맺힌 자부심과 기대에 기색에, 그는 다만 고요히, 의문이 가득한 상태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물음도 이제 한 순간 넘어가야 할 작은 관문일 뿐이었다.
**
그는 거리를 나서며 정오의 햇살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또 다른 침입자처럼 그를 따라 무엇인지 모를 감각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 도시의 냄새와 소리들은 기억의 이면처럼 베이어 있었다. 익숙했던 거리의 풍경과 새로운 감각이 모여, 마치 미처 가져 보지 못했던 미래를 그려 내고 있는 것처럼.
"준호, 너 가방을 두고 갔다!"
뒤이어 그의 친구가 과거 어느 때나 그랬던 모습처럼 골목 끝에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까먹고 두고 온 듯한 그의 물건, 천으로 감싼 책 몇 권이 들려 있었다. 시나브로 그와 대면한 송원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그 순간에도 현실의 압도적인 무게가 그의 어깨에 얹힌 듯 한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감이 그를 감싸안았다.
"기억 잘해야 한다니까. 그동안 안 본 사이에 너무 착각한 거 아냐?"
그는 담담하게 두 손으로 책을 받으며 웃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이 책의 감촉은 그와 연역된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 영원토록 인식되도록 만들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 알 수 없는 채, 손끝으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럼, 오늘은 뭐 하러 가는 거야?"
송원의 질문에 준호는 생각에 잠겼다. 선택의 시작, 그 어느 순간보다도 중요한 거점에 서 있는 지금, 일렬로 이어진 이 상황들이 역학처럼 풀어질 때가 온 것 같았다. 길 위에 선 그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재며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아직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가끔 이렇게만 살아보자. 그게 길이니까."
그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세상, 그리고 이제 시작될 여정은 그동안 껍데기를 쓴 채 외면해왔던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한층 새로운 결정이 필요한 순간은 헛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는 고요가, 땅에는 그의 발걸음이 소리를 만들며 응답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무방비 상태의 갈등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이면에 숨겨진 비밀들이 자신에게 바라오는 순간조차 그 어떤 강렬함으로 다가왔을 것인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그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 발 아래에 그려진 길 끝에는 또다른 무언가가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