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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는 자하르의 말을 듣고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리 쉽게 시작된 동행이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그녀도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루아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용의 저주를 풀겠다는 다짐을 가슴 속에 새겼지만, 그 방법이 이렇게 막연할 줄은 몰랐다.
자하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를 향해 말했다. "내가 인간 세상을 안 떠돈 지 오래 됐군. 인간들이 사랑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려주게."
루아는 그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사랑은... 보통 작은 것들에서 시작하죠. 일단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걸로 시작해보는 게 좋겠네요."
그녀의 제안에 자하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말해 보게. 난 천 년 동안 이곳에 있었으니, 당신이야말로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소개해줄 수 있을 거야."
'소개라...' 루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용족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도전일 수도 있었다.
'자, 저랑 한번 걸어봐요. 이 산에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많답니다.' 루아는 조금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은 천천히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숲 속에는 온갖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바람은 부드럽게 나무 사이를 휘감고 있었고, 햇빛이 나무 잎 사이로 아른거렸다.
'여기는 우리의 마을 사람들이 자주 오지 않아요. 그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죠. 하지만 자연은 어떤 의미에선 제일 솔직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루아는 이렇게 말하며 자하르의 표정을 살폈다.
자하르는 숲의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난 꽤 오랫동안 솔직한 친구들과 살았군.'
시간이 흐르자 그들 사이에 조금은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게 되었다. 루아는 길을 걸으며 자신이 경험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그녀의 이야기에 자하르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가 듣는 이야기는 그의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것들이었다.
'인간들은 그토록 복잡한 삶을 사는군.' 자하르의 감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사랑을 할 시간이 있다니, 참으로 대단해.'
루아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때론 그게 우리네 삶의 가장 큰 난제죠.'
둘은 산 정상에 다다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넓게 펼쳐진 숲과 멀리 보이는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루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그녀에게도 특별한 장소였다.
'여기, 정말 아름다워요.' 자하르가 고요하게 말했다. 그의 눈에는 진정한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는 말없이 풍경을 음미했다.
루아는 그의 옆에서 그 광경을 함께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하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약간의 희망을 걸었다. 순수한 사랑은 쉽게 피어나지 않겠지만, 이런 순간들이 계기가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기로 했다.
어느덧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루아는 자하르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서 오늘의 마무리를 지어야겠어요. 내일은 또 다른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자하르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응시했다. '그렇군. 내일도 당신과 함께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소.'
그들의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났고, 새로운 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여운은 루아의 마음속 깊이 남아, 다음 날의 만남을 기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