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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기억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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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는 폐허처럼 남은 주방의 침묵 속에서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펴보니 온몸이 저릿한 감각과 왠지 모를 공허함이 손끝에 맺혀 있었다. 그때 그의 안쪽 귀를 찢는 듯한 경고음이 울렸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가 깨어난 소리처럼, 놔두었던 무언가가 방향을 틀어 잡아채는 듯한 냉정한 싸늘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규현의 목소리가 군더더기 없이 날아왔다.

"이제 제대로 시작해야겠군."

주방의 기운이 다시 애틋한 긴장감으로 차올랐다. 민재는 허공을 응시하며 규현이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진정한 의미를 얻으려 애썼다. 그때, 그의 눈에 수아의 뒷모습이 눈부시게 비쳤다. 그녀는 조용히 주방의 또 다른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도도한 걸음걸이는 심상치 않은 결단을 내비치는 듯했다.

"수아, 잠깐."

민재가 말했을 때 그녀는 순간 멈췄다. 그러나 그녀의 동공은 화살처럼 규현을 향해 있었다. 균형과 조화가 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그때 주방 안에 있던 모든 눈이 한 곳에 맞춰졌다. 수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민재의 심장은 마치 멈춘 듯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여기서 멈출 수 없어요. 제가 찾으러 온 게 있으니."

민재는 그녀의 태도와 결정에 대해 막연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의 시야에 단단히 박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변화도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민재는 그의 손 끝에 마지막으로 느껴진 기억의 울림을 다시 느꼈다. 바로 그때가 다음 움직임을 취할 때였다.

"규현, 이곳에 왔을 때 울렁이던 그 기억의 조각들. 당신이 알지 않아?"

민재가 물었을 때 규현의 입술이 희미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미소는 그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민재, 여기에선 모든 게 단지 요리로 끝나는 게 아니라네. 너와 그녀, 모든 사람들이 여길 찾는 이유 말일세."

그의 말은 알쏭달쏭한 퍼즐처럼 의문만을 남기고 있었다. 민재는 그의 말 속에 담긴 진의를 파악하려 애쓰며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대체 저 빛 뒤에 무슨 비밀이 숨겨진 거야?"

규현은 민재의 질문에 잠시 말 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전설을 노래하듯, 중립적이면서도 낯선 힘을 품었다.

"사람들이 여기에 오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함이야. 네가 바로 그 목적을 가리키고 있는 거지."

규현의 말은 얼핏 민재에게 일종의 퍼즐같이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 주방의 또 다른 문짝이 소리 없이 열리고, 그 문턱 너머로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인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민재가 그곳으로 돌아볼 때, 그의 가슴은 본능적으로 가벼운 두려움과 상기된 희망이 혼재되며 뛰었다. 그 인물은 민재가 예전에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어린 시절의 잔상이었다.

민재는 충격과 황홀감이 동시에 밀려오며, 눈앞의 현실이 헛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바라본 기억의 파편들은 그곳에서 그의 과거와 마주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돌연 차갑고 무심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를 주목하는 모습은 기이했으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민재가 걸어 나가려던 순간, 그 그림자가 재빠르게 끌어당기며 다른 도전의 정점을 긋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네가 찾는 대답은 아직이지 않은가."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민재가 그의 과거와 그가 그저 발견해야 할 미래로 이끄는 긴 여정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날 손 끝에 닿은 기억의 불씨들이 그를 이끄는 곳으로, 그가 감당해야 할 임무와 선택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재는 마지막에 떠올렸던 그 향기를 향해 재차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그의 손끝에는 무언가 깨어져 간 시간이 남겨두었던 잔향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이 다가올 것을 그는 부정할 수 없었고, 그 자신이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모든 이야기들을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