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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가 주방의 긴장을 깨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거칠게 이어지던 무언의 설움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침묵 속에서도 들리는 초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가 놓쳐버린 어떤 뜻의 덩어리 같았다.
문틈으로 들어온 빛이 규청을 가로질러 바닥에 누웠고, 그 빛 속의 먼지들이 서서히 춤추었다. 민재는 그 어디에서도 비추지 않는 빛을 가슴 깊이 받으며 차츰 숨을 골랐다.
"민재, 그 기억... 아직도 찾고 싶니?"
낮게 깔린 그 목소리는 규현의 것이었지만, 마치 먼 곳으로부터의 메아리 같았다. 그의 질문은 어느 방향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도전, 그리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도화지를 무언가로 채우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민재는 눈을 반짝이며 작은 숨을 들이마셨다. 고요함 속에서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무언가가 신음처럼 웅웅대기 시작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희미한 그림자가 현실과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찾을 거야. 그게 어디에 있든."
단호한 그의 대답은 공기 속을 찢고 멀리 울려퍼졌다. 방에서 사라졌던 빛은 다시 돌아와, 명료하게 민재의 표정을 비추기 시작했다.
주위의 기운이 서서히 진중하게 변해갔고, 마치 영혼이 담긴 요리 속에 담긴 비밀을 그는 이해하고자 하는 듯했다. 그 순간, 민재는 두 번 다시 물러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사이, 가장 불안정한 숨결처럼 얇게 밴 그림자가 또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며 바람처럼 그를 에워쌌다. 그 흩날리는 그림자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추억 속 여운을 타고 와, 그의 주변에 둥둥 떠다녔다.
"그래, 그 비밀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이후엔 무엇이 남을까?"
규현의 음성은 그 어느때보다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민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모래 위에 집을 지을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호한 그의 결의가 이어지는 순간, 주방의 문 쪽에서 불쑥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시 한 번 등장을 알렸다. 금세 자박자박한 발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수아였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대며 차갑게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마치 문 너머에 숨겨진 무언가가 이곳 모든 걸 좌우할 것인 양 진지했다.
그녀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고, 침묵 속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민재의 눈에는 혼란이, 그리고 기대감이 깃들었다. 그들은 모두 숨 죽인 채 어떤 계시에 귀를 기울였다.
"민재, 이제 정말 중요한 순간이야." 수아의 목소리가 조심스럽지만 맑고 뚜렷하게 흘러나왔다. 그 안에 무한한 신뢰와 또 다른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민재는 자신이 곧 도달할 진실의 문턱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의미한 잊혀짐 속에서 찾아낸 단서를 붙잡고, 그들의 여정은 새로운 장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다시 한 번 문이 쩍 벌어지며 예상치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표정을 지니고 선 그는 모두를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여기에 있었군. 드디어 때가 되었어."
충격적인 순간에도 모든 감각이 깨어나버린 민재는 순간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이곳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머뭇거릴 시간 따위는 이미 사라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