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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숙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루아는 따스한 빛에 눈을 떴다. 어젯밤 꿈속에서 자하르의 푸른 눈동자를 다시 마주한 탓일까, 그녀의 마음은 평소보다 훨씬 더 설레고 있었다. 그의 무심한 듯 던지는 말 한마디, 숲을 응시하던 진지한 시선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될 거예요." 루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제 연못가에서 보았던 귀한 식물. 오늘이 바로 그 꽃이 피어나는 날이었다. 단 하루, 짧지만 강렬하게 피어나는 꽃은 루아에게 그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 느껴졌다. 저주를 풀기 위한 천 년의 긴 여정 속에서, 자신과 자하르가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하르는 이미 깨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창밖의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해와 달을 보아왔지만, 루아와 함께하는 아침은 매번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듯했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차가운 무관심의 껍질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더없이 고요하군." 자하르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함처럼." 그의 말에 루아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족의 왕자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예감하는 것일까.
"괜찮아요. 제가 옆에 있을 테니까." 루아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미소는 자하르의 얼어붙은 심장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것은 호기심을 넘어선, 미묘한 이끌림이었다.
그들은 다시 숲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루아는 혹시 꽃이 피지 않았을까, 아니면 누군가 먼저 다녀갔을까 하는 불안감을 애써 잠재웠다. 자하르는 그런 루아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떨림이 그에게는 새로운 언어처럼 느껴졌다.
숲은 어제와 다름없이 아름다웠지만, 오늘은 묘한 정적이 흘렀다. 새들의 지저귐도 잦아들고,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했다. 루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했다. 사냥꾼으로서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자하르가 루아의 옆에 바짝 붙어 걸으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걱정이 섞여 있었다. 그는 무언가 루아에게서 불편함을 느꼈음을 직감했다.
"숲이 너무 조용해요. 평소에는 이렇지 않거든요." 루아는 활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들의 발걸음이 연못에 가까워질수록 숲의 정적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연못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였다.
"저게 뭐지?" 자하르의 푸른 눈동자가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연못가, 어제 보았던 작은 싹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짐승이 서 있었다. 늑대와 비슷하지만 훨씬 크고 흉포해 보이는 이빨을 드러낸 검은 털의 짐승이었다. 놈은 싹이 돋아난 곳을 향해 앞발을 들고 있었다. 꽃을 짓밟으려는 듯이.
"흑랑!" 루아는 비명을 지르며 활을 겨눴다. 흑랑은 이 숲에서 가장 사납고 포악한 짐승 중 하나였다. 평소에는 인간에게 접근하지 않지만, 먹이를 사냥할 때는 거침없었다. 그런데 지금, 녀석은 하필이면 그 귀한 꽃을 노리고 있었다.
쉬이잉! 루아가 쏜 화살이 흑랑의 어깨를 스쳤다. 녀석은 크게 울부짖으며 루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그리고 녀석은 주저 없이 루아에게 달려들었다. 이빨을 드러낸 채, 마치 그녀를 한 입에 삼킬 듯이.
"루아!" 자하르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그의 몸이 흑랑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푸른 빛이 그의 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흑랑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마력이 흑랑을 덮쳤다.
크아아앙! 흑랑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압력에 짓눌려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 거대한 몸집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땅이 흔들리고, 나무들이 휘청거렸다. 흑랑은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이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루아는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었다. 자하르의 마력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는 그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여전히 강력한 용족의 왕자였다. 그의 눈빛은 아직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숲의 모든 생명을 억누를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자하르의 마음을 읽었다.
"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루아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용맹함과 압도적인 힘에 경외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의 변화에 놀랐다. 그는 그녀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 그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자하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흑랑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별것 아니오. 놈이 감히..."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심장이 이전과는 다른, 낯선 감정으로 뛰고 있었다. 루아가 위험에 처한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력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제야 루아는 연못가로 시선을 돌렸다. 기절한 흑랑이 연못 옆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흑랑이 짓밟으려 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작고 여린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나 있었다. 순백의 꽃잎은 새벽 이슬을 머금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 하루, 그 짧은 생명을 불태우는 듯한 아름다움이었다.
"피었어요..." 루아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그렁거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꽃에 다가갔다. 자하르도 그녀의 옆에 서서 꽃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이토록 작고 연약한 존재가 이토록 험난한 숲에서, 온갖 위협 속에서 피어났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순간은... 영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이오." 자하르는 낮게 읊조렸다. 그의 눈빛은 꽃과 루아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는 루아의 눈 속에서 자신의 저주를 풀 수 있는 희망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았다. 어쩌면 그에게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작은 싹이, 지금 이 순간 그의 심장 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몰랐다.
루아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녀는 자하르의 손을 잡았다. 그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온기로 서서히 데워지는 듯했다. "그럼요, 왕자님. 우리의 순간들도 영원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분명히." 그녀는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녀는 확신했다. 자하르의 마음속에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은 자하르의 표정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평화로운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멀리서, 숲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주받은 용의 전설을 쫓는 또 다른 이들이었을까. 루아는 본능적으로 자하르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새로운 위험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