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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온실에서 준서를 본 후로 내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의 행동과 말들은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었다. 왜 그는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까? 시들어가는 꽃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내가 숨겨진 방에서 발견한 사진과 '미안하다'는 글귀는 이 사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모든 것이 어지럽게 얽혀내는 세상의 퍼즐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잠은 들지 않았지만, 복도에 나서기를 망설였다. 이 집 안에서 숨겨진 비밀의 무게가 점점 증폭되어 갔다.
아침이 밝아왔지만, 내 머릿속은 어둠 속에 갇힌 듯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울을 바라봤다. 피곤함이 가득한 내 모습은 며칠 사이에 희미해져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일부분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해. 이 집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
아침 식사 시간, 식탁에 앉아 있는 가족들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신문을 넘기며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회장님처럼 보였고, 한서는 내게 다정한 미소를 건넸다. 준서는 여전히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간단한 안부 인사로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 숨겨진 감정들이 감돌았다.
"하린아, 오늘 계획은 뭐니?"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아직 이곳에 적응 중이니까요."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가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있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이제 이곳이 네 집이니까." 아버지는 따뜻한 미소로 내게 응원했다.
준서는 내 대답을 들으며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의 태도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그가 혼자 저온실에서 중얼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증오 이면에 깊은 슬픔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한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린아, 오늘 잠깐 같이 나갈래? 이 주변에 괜찮은 카페가 있어. 조금 바람이라도 쐴 겸."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의 제안이 꽤 괜찮아 보였다. 이 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좋아요, 오빠. 같이 가요."
한서와 함께 나서니, 그의 다정한 관심 덕분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차를 타고 도착한 카페는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아늑한 곳이었다. 우리는 창가의 자리로 향했다. 차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여유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한서는 내게 이 지역의 명소와 맛집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잠시 웃으며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의 다정함은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하지만 미처 잊고 있던 문제가 다시 머릿속을 스며들 듯 돌아왔다. 그저 일상의 작은 행복을 경험했을 뿐인데도, 그 순간이 끝나면 다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느샌가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한서에게 물었다.
"오빠, 준서에 대해 조금만 더 알려 줄 수 있어요? 그냥…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어요."
한서는 잠시 침묵한 뒤,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준서는… 정말 착한 아이야.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너를 잃은 후로 많이 힘들어했어. 어머니는 준서에게 특별한 존재였거든. 그녀가 돌아가진 후, 그는 자신의 세상에서 큰 부분을 잃은 거야. 그래서 가끔씩… 방어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가 남아 있어서 그런 거니까."
한서의 설명에 준서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빠르게 다가왔다. 그의 비밀은 단순히 그가 겪은 상처의 일부였다. 그에게 무엇이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을까? 다시 한번 그가 어젯밤 온실에서 중얼거렸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걸 극복하는 데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네요." 나는 작게 답하며 이해할 수 있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에서 나오는 길, 한서는 내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하린아, 우리와 같이 이곳에서 살아가기로 한 이상, 가족으로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준서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너를 받아들일 거야. 그땐 분명히 좋은 형제들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그의 말은 따뜻했지만, 동시에 나는 불안함을 계속 느꼈다. 알 수 없는 비밀들과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내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서의 말은 작은 위로가 되었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온 나는 미리 말한 대로 방에 필요한 물건들을 더 채워두었다. 조용한 저녁 시간이 흘러갔고, 나는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적막 속에서 준서에 대한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가 왜 화가 나 있었는지, 서류 봉투 안에 들어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특히 그의 연약했던 순간을 목격한 후, 지금까지 그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가 어머니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그리고 그 관계가 지금의 우리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더 알아봐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두려움이 커져갔다. 내가 이곳에서 얻은 가족의 따뜻함과 사랑이 거짓이 될까 봐 두려웠다. 혹여 내가 그들 사이를 더욱 어지럽히게 될까 봐. 몰아치는 감정 때문에 나는 제대로 된 생각을 미처 정리하지 못했고, 밤이 깊어갈수록 혼란이 더 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다가옴에 따라 나는 또 다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더 많은 비밀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나는 진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준서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약간의 설렘도 함께했다.
그날 밤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잠자리로 돌아갔다. 미로 같은 이 집의 비밀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고, 나는 과연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진실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하게 되었다. 궁금증을 억제할 수 없었고, 내 마음속의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며 달빛 아래에서 꿈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