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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 어서와!”
하얀 장막을 뚫고 들어가자마자, 그를 맞이한 것은 강철수의 환한 미소와 함께 퍼지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준호의 주위를 순식간에 감쌌다. 근무 시간의 끝자락, 텅 빈 사무실에는 그의 말소리만이 그 울림으로 공허를 채우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뭔가 색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원래 이렇게 조용했니?” 준호는 철수에게 다가가면서 묻자, 그의 내면에는 사무실의 정적이 마치 긴 그림자처럼 옥죄어 들었다. 그는 매일 듣던 기계 음소리나 종이가 뒤섞이는 소리 대신, 이상하리만큼 맑은 고요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이었다.
“뭐, 우리는 항상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일상에 익숙하잖아. 글을 쓰는 것도 떠들썩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철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준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순간 그의 손길은 단단한 안락을 제공했다.
입술 사이로 스미던 차가운 바람이 몸을 타고 스쳤다. 그 감촉에 준호는 겨우 눈썹을 찡그리며 반사적으로 긴 팔로 손목을 감쌌다. 철수와의 대화가 끝난 이후에도 그의 마음엔 무언가 불길한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안심할 수 없는 기분이 계속 드는데, 이게 뭐지?” 준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복도를 택했다. 그곳에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
“난 충분히 진지해졌어.” 도시에 닿은 불빛이 그의 시야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준호는 도시의 아지랑이처럼 번지는 황혼 속으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속에는 새로이 다가오는 밤이 있었다.
손가락 끝을 떨며, 그는 가장자리로 미끄러지듯 걸었다. 이 길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혼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길을 지배하는 공기는 싱그러웠지만 어딘가 불안한 잔상이 남아있던 바였다.
“준호, 여기야!”
서영의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그 속에는 무언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실루엣이 그를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네 목소리를 들으면 항상 기운이 나.” 준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은 서영의 손가락과 부드럽게 얽혔다. 그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진 따뜻함은, 한없이 편안한 온기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말해줄 때야.” 그녀의 말에 담긴 무거움이 밀려들 거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떨고 있었다.
준호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이는 그저 무작정 달려가다 마주한 벽과도 같았다. 그녀의 말속에 담긴 진실로 인해,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
“드디어 알아챘네.”
강민재가 나타났다. 어둠이 깃든 시설물 안에서 그의 존재는 유령과도 같은 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는 무심하게 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는 반짝이는 수배표가 들려 있었다.
“이제 너의 미련을 버려야 할 때란다,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 민재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의 입에서는 서늘한 확신이 흘러나왔다.
준호는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 순간 확신에 찬 결심으로 모든 것이 해소되자, 불안하다는 불길한 감각이 그를 덮쳤다. 그의 손등에는 알 수 없는 떨림이 이어졌다.
“네가 사라질 것으로 가득 찬 그 시간에 목적이 있을 거란다.” 민재는 불가사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미래의 도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그의 말에 담긴 불길함은 더욱 더 깊어져 갔다.
준호는 서둘러 민재의 예상에서 벗어났다. 그는 손끝으로 또 다른 무게 있는 밀고를 감지하며 자신의 길을 계속 이어갔다.
***
긴 밤이 드리운 차가운 골목에서, 준호의 발걸음이 울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 너머로는 불안한 그림자들이 파문처럼 퍼지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시계추가 되살아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준호는 희미한 슬픔을 떠올리며 고개를 접었다. 그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고요한 거리 끝에서 한서영의 실루엣이 포착되었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내 그의 손 끝에 닿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오면, 다시금 낯설지 않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랑은 또 다른 선택을 가져온단다.” 서영이 조용히 속삭였다.
준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가볍게 감고 댔던 긴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그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준호는 그의 팔을 끌어 안았다. 그가 닿은 그녀의 위치는 짜릿하고도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그의 손목은 단단히 서영을 감싸며 선명한 확신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준호의 마음은 다시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했다. 그가 가져온 모든 것들은 여전히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내 그의 감정은 짜낸 자신과의 대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거야.” 준호는 다시 한번 굳건하게 대답했다. 그와 서영이 서 있는 이 곳은 그들 앞에 놓인 일위치의 순간들이 압축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준호의 귀를 때렸다. 그것은 시간이 크나큰 변모를 일으키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이 차갑고 허전하리만치 스며들어서야 고개를 저으며 숨을 골렸다.
오래지 않아, 준호는 강철수가 홀로 앉아 있는 그림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의 모습은 부드럽게 멀어지고 있었으나, 미소는 미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준호, 네가 바랐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철수는 손가락으로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을 따라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어느새 그의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떠나는 시각이 성큼 다가왔다. 그가 남긴 깊은 흔적이 자신의 곳곳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준호는 자신이 발을 디딘 바닥을 응시했다. 그리고 또다시 앞으로 나갈 힘과 결단력을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속삭이는 어둠 속에서 마음속의 결단이 퍼져가는 순간, 그의 귓가를 스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음성이 속삭였다.
"준호, 지금이야말로 갈 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야. 네가 숨겨둔 진실이 마침내 드러나게 될 거야."
그는 그 말에 의해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 순간 그의 눈 사이로, 아주 희미한 불빛이 번쩍이며 다가왔다. 마침내 그와 마주하는 과거의 그림자와 여러 겹의 이정표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가 떠올린 것은, 두근거리며 가슴을 풀어내고 소리없는 호흡을 되뇌는 순간이었다. 극복해야 할 것이 아직도 많지만, 그는 새로운 여정을 향한 갈증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텅 빈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지만, 그가 남겨두고 떠나는 순간은 결코 텅 비지 않았다. 그들 손끝에 마련된 길 속에서, 그는 새로운 끈기를 다잡았다. 감춰진 진실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의 걸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저기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 불길한 웃음이 들리는 소리였다.
“준호, 네가 마음속에 꿈꾸던 세계에 닿게 될 시간이야.”
그 말 뒤로 펼쳐진 거리의 끝에 또 다른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 존재는 그의 근육을 긴장시켰고, 돌풍과도 같은 감정이 그의 가슴을 스쳤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을 채운 건 다가올 만남을 예고하는 짜릿한 기대감이었다.
새로운 시작의 시점은 이미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