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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처럼 쏟아지는 비의 냄새가 길거리에 흩뿌려졌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젖어 드는 신발의 끈적거림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가로등이 비치는 빗방울들이 황홀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눈을 내리던 것처럼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긴장감이 공중에 스며들었다.
누군가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그는 여러 번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폈지만, 그의 뒤를 잇는 것은 그저 어둠과 빗소리뿐이었다.
“어디에 있는 거야?”
준호는 중얼거리며 계속해 골목을 걸었다. 그의 손은 흠뻑 젖어든 머리카락의 맨 끝을 떼어내며 웅크렸다. 차가운 비가 그의 옷을 적시고, 그는 점점 손끝까지 언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 길의 끝에서 무엇을 만날지 확신할 수는 없더라도.
그리고 그 순간, 갑작스런 빛이 그를 덮쳤다. 한 남자가 그의 바로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강민재였다. 그의 눈빛은 말은 하지 않지만 준호를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드러난 그의 팔뚝에는 새로운 타투가 빗소리와 함께 강하게 뻗치고 있었다.
"자네, 내가 언제나 네 길을 막는다고 생각하지는 말게."
민재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투는 늘 무심한 듯했지만, 그 말 속에는 예리한 경고가 가득했다.
“민재,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네가 도와주고 싶다면서 이렇게 길을 막고 서 있는 이유는 뭔지 알 수 없어.” 준호의 목소리는 젖은 논밭을 밟은 발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그의 눈은 민재의 흔들리는 눈빛을 직시하고 있었다.
민재는 대답 대신 깊은 숨을 내쉬며, 그의 손가락으로 천천히 머리카락을 빗질하듯 훑어내렸다. 순간, 그의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가 준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재는 입을 열었다.
“결정은 이제 네 손에 달렸어. 이제 못 돌아가. 그리고 이 빗줄기가 지나가고 나면, 더 큰 비밀이 나와서 너를 비추게될 거야.” 그의 목소리는 짙은 안개 속에서 울리는 불협화음처럼 낮고 깊게 퍼져 나갔다.
그때, 갑자기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며 하나의 파동처럼 밀려들었다. 준호는 그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런 반면, 그의 시야에는 점점 더 많은 그림자가 뒤엉키고 있었다. 불안감이 그를 해부하기 직전까지 다다랐다.
“너의 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 하지만, 너만의 선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 그는 말을 던지듯 말했다. 그의 눈빛 속에는 먼지 속의 비밀을 감춘 듯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준호는 고개를 돌려 그를 뒤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는 길을 따라 달리며 자신만의 선택을 내려야 할 시간을 가졌다. 발목부터 어깨까지 퍼져나가는 싸늘한 위기감에 몸이 긴장으로 으스스리를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야에 익숙한 건물이 들어왔다. 그곳은 늘 의지가 되었던 고향 같은 곳이자, 그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던 안전한 피난처였다. 그는 문을 열며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꼈다.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릴 때, 그 안쪽에서 스며 나오던 따뜻함이 마치 어머니의 품속같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바닐라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그의 마음에는 처음 다가가는 듯한 편안함이 감돌았다. 그는 더 이상 잡히기 쉽지 않아 보이는 시대 위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들어섰다. 그의 눈에 들어온 순간, 시원한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준호야!”
그의 백이면 백 예상한 얼굴, 한서영이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말 그대로의 안심과 환희가 담겨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며, 그는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깨닫기 위해 여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영은 그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 닿은 순간, 그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끈이 휘몰아쳤다. 그의 피부에 닿은 따뜻함은 그저 온기 이상의 것이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잔잔한 열기였다.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은...”
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준호의 발밑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급작스러운 진동에 버텨내지 못한 건물이 발끝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영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를 붙잡았지만, 준호의 균형은 이미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엉켜들어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그들의 발 밑에 숨겨져 있던 세계가 균열을 내면서 함께 움찔거렸다.
갑자기 그 순간, 강철수의 목소리가 도시의 울림처럼 폭발적으로 다가왔다.
“이준호! 너의 길을 선택해!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준호는 깊고, 짜릿한 호흡을 내쉬며 정신을 차렸다. 다가오는 위험을 모든 감각으로 느끼며, 그는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가늠했다. 이 혼돈 속에서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눈앞은, 그 누군가의 모습으로 어렴풋이 가려져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다른 차원의 현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일이어야 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잠시 동안 닫혀 있던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쇠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의 손 안에 있었다. 준호는 숨을 깊게 들어마셨다. 다가오는 그 순간에 이제 단 하나의 목적을 안고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한 불안정한 순간에, 더 깊은 부조리의 소용돌이가 그의 마음속에서 자그마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곳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마침내 붉은 달빛 아래 새롭게 문을 연 그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손톱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거친 숨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큰 수수께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