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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6화: 또 다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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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6화: 또 다른 시작
소개팅의 법칙: 실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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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는 현관문을 잠그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은 조용했고, 창밖으로는 별이 총총했다. 그는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 끝에 앉아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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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웃음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돌았다. 그 웃음이 어쩌다 이렇게 오래 남는 건지, 준호는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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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수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커피를 쏟을 뻔했던 것, 말이 꼬였던 것. 얼굴이 슬쩍 달아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억들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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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나쁜 날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꺼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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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성재였다. 예상했다. 성재는 언제나 소개팅이 끝나면 반드시 연락했다. 준호는 피식 웃으며 화면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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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땠어? 이번엔 제대로 된 대화라도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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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의 메시지는 역시나 직접적이었다. 준호는 잠시 생각했다. 어땠냐고.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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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어. 그냥,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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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보내고 나서 준호는 멀뚱히 화면을 바라봤다. 그게 전부였다. 더 붙일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한 줄이 오늘을 전부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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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드디어? 기적이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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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피식 웃었다. 성재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구체적으로라니. 이런 감정이 단어로 설명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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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잘 됐어.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었거든. 그게 제일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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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로부터 답장이 오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준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없는 밤이었다. 별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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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와의 대화는 짧게 마무리되었다. 준호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차갑게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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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마지막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저도 재미있었어요.' 그 말이 맞다면, 오늘은 분명 실패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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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창문을 닫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내일 연락을 해야 할까. 말까. 손가락이 자꾸 스마트폰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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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메시지를 작성했다가 지웠다.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했고, 너무 늦으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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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메시지 앱을 닫고 눈을 감았다. 생각이 많은 밤이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생각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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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졌다. 별빛은 여전히 창문 밖에 있었다. 박준호는 소개팅의 법칙 중 하나를 그날 밤 조용히 배웠다. 실패가 아닌 하루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