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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붉은 달의 그림자, 얽힌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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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손에 든 고문서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낡고 바스락거리는 양피지 위에 새겨진 ‘레나’라는 단어는 내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듯했다.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었다. 카엘은 내가 느낀 미세한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이 고문서의 진짜 의미를 알고 나에게 건넨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또 다른 시험이었을까? 황궁의 깊은 어둠 속, 희미한 별빛만이 창문 너머로 반짝였지만, 내 마음속은 거대한 폭풍우에 휩싸인 듯 요동쳤다.

나는 고문서를 펼쳐 들었다. 고대어로 쓰인 난해한 문장들은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듯했고, 그 사이에서 내 이름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전 생에서 나는 제국의 정치와 권력 다툼 속에서 살아왔지, 이런 고대 마법이나 숨겨진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은 이 고문서 앞에서는 무력했다. 오히려 이 고문서가 내 미래, 아니 나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내가 아는 레나는 그저 황실의 평범한 황녀였다. 이전 생에서는 그저 제국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한 존재. 그러나 지금, 내 이름이 고대 마법 가문의 기록에 나타났다. 이것은 내가 회귀한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아니면 나의 가문, 혹은 나의 존재 자체가 이 모든 음모의 중심에 서 있다는 뜻일까?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나의 다짐이, 이 고문서 한 장 앞에서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릴리가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 손에 들린 고문서를 흘끗 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전하,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밤이 깊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살펴보셔도 괜찮을 텐데요.”

나는 고문서를 황급히 덮었다. 릴리에게 이 고문서의 비밀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괜찮아, 릴리. 중요한 기록이라서 잠시 더 확인해 볼 것이 있었을 뿐이야. 너는 먼저 쉬렴.”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릴리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다시 고문서를 펼쳐 들었다.

밤새도록 고문서를 살폈다. 단어 하나하나, 문양 하나하나를 뜯어보았다. 해독할 수는 없었지만, 그림처럼 그려진 이미지들은 섬뜩한 환영을 떠올리게 했다. 붉은 달 아래에서 피어나는 어둠의 그림자, 무릎 꿇은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한 여인의 형상. 놀랍게도 그 여인의 형상은 희미하게나마 나를 닮아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 당당한 어깨선. 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레프니아 가문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

이전 생에서 레프니아 가문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혹은 내가 모르는 사이 이미 역사 속에서 잊혔을 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엘은 레프니아 가문의 잔당들이 북부 반란의 배후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 건넨 고문서에는 내 이름과 나를 닮은 여인의 형상이 있었다. 모든 퍼즐 조각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지만, 그 조각들 사이에는 분명 내가 알지 못했던 거대한 연결고리가 숨겨져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스며들었지만, 내 마음속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나는 카엘을 의심했다. 그가 나를 이용하려는 것일까? 내가 레프니아 가문과 관련이 있다면, 그는 나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진정으로 나를 돕고자 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시종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황녀 전하, 카엘 드 로안 경께서 방문하셨습니다. 황태자 전하의 전갈을 가지고 오셨다고 합니다.”

나는 고문서를 서랍 깊숙이 숨기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카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방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어젯밤의 피로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날카로웠다. 그는 짙은 갈색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 차분한 색감조차도 그의 굳건함을 숨기지 못했다.

“황녀 전하, 좋은 아침입니다.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내가 고문서를 살펴본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미세한 감정을 읽어냈다.

“카엘 경도 평안하셨는지요. 황태자 오라버니의 전갈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담담하게 물었다.

“북부에서 추가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벨라스 가문이 인근의 작은 영지들을 은밀하게 규합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들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황녀 전하와 제가 벨라스 가문에 대한 추가 조사를 신속히 진행해주기를 명하셨습니다.”

그는 보고서 한 장을 내밀었다. 보고서에는 벨라스 가문의 수상한 움직임들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빠른 진전이었다.

“벨라스 가문이 그렇게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니… 붉은 달이 뜨기 전에 모든 것을 파헤쳐야 한다는 경의 말씀이 맞았군요.”

나는 보고서를 읽으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붉은 달. 그 단어는 고문서의 문구와 겹쳐지며 내게 불길한 예감을 안겨주었다.

“황녀 전하의 통찰력이 없었다면, 벨라스 가문의 움직임을 이토록 빠르게 파악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특히 황녀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문양… 벨라스 가문의 영지에 있는 오래된 사원에 새겨진 문양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내 기억 속의 작은 단서가 현실과 연결되고 있었다. 내가 이전 생에서 놓쳤던 거대한 진실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사원에 새겨진 문양이라… 레프니아 가문과 관련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카엘의 눈빛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해독이 어느 정도 진척된 고대 상형문자 기록을 가지고 벨라스 가문을 직접 찾아갈 생각입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를 만나 직접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가 벨라스 가문을 직접 찾아간다니. 위험한 일이었다. 벨라스 가문이 정말 레프니아 가문과 연관이 있다면, 그들은 순순히 정보를 내어줄 리 없었다. 오히려 카엘을 붙잡거나 해치려 들 수도 있었다.

“위험한 일입니다, 카엘 경. 벨라스 가문이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텐데요.”

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카엘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황녀 전하께서 염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국의 평화를 위해 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황녀 전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진실이 아닐 때가 더 많으니까요.”

그의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진실이 아닐 때가 더 많다’는 말은 마치 그 자신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내가 아는 과거의 카엘은 잔혹한 반역자였지만, 지금의 그는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걸려는 충신처럼 보였다. 이 두 모습 사이의 괴리감이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그렇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경이 벨라스 가문에 가 있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나는 결국 그에게 물었다. 복수심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지만, 그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카엘은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녀 전하께서 어젯밤 제가 드렸던 그 고문서를 좀 더 면밀히 살펴봐 주십시오. 특히 ‘레나’라는 단어와 그 주변의 문장들을 중점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그 기록이 단순히 이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내가 그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기록에 대해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기록이 왜 저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나는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카엘은 나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나의 영혼을 꿰뚫어 보려는 듯했다.

“황녀 전하의 통찰력은 제가 이제껏 보아왔던 어떤 이들보다도 뛰어납니다. 저는 그 기록이 황녀 전하의 깊은 지혜와 연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황녀 전하의 이름이 그곳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내게 깊은 파문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가 회귀자임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어른스러운’ 언행과 이례적인 지혜를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는 나에게서 평범치 않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내가 숨기고 싶었던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는 짧게 인사를 하고 내 방을 나섰다. 그의 등 뒤에서는 벨라스 가문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는 혼자였다. 손에 든 고문서와 내 이름 ‘레나’.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고문서를 다시 꺼냈다. 고대 상형문자와 ‘레나’라는 이름, 그리고 나를 닮은 여인의 형상. 이 모든 것이 나를 향한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붉은 달이 뜨는 밤, 레프니아 가문이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예언. 그리고 그 예언의 중심에 내가 서 있다는 불길한 예감.

복수를 다짐했던 나의 칼날은 여전히 예리했지만, 그 칼날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나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카엘은 나를 배신한 자인가, 아니면 진실을 함께 파헤쳐야 할 동맹인가? 그의 눈빛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붉은 달이 뜨기 전, 나는 이 고문서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야만 했다. 내 이름에 얽힌 진실, 그리고 이 모든 음모의 시작점. 제국의 운명과 나의 운명이 걷잡을 수 없이 얽혀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