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14화. 14화: 포식자의 눈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휴대폰 액정 속의 나는, 완벽한 사냥감이었다. 나무 뒤에서 망원 렌즈로 잡아당긴 듯한 구도, 저택 후문으로 들어서는 찰나의 긴장감이 서린 옆모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어스름한 저녁의 그림자까지. 이것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었다. 명백한 경고이자, 내 모든 움직임이 거미줄 위의 파리처럼 낱낱이 관찰당하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심장이 발치까지 곤두박질치는 감각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바닥 안에서 땀으로 축축해진 열쇠의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누구지? 김태준 비서?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이 저택의 벽 너머에,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눈이 존재하는 것인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나는 허둥지둥 메시지를 삭제하고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방문이 잠겨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포식자는 이미 내 울타리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방 안을 둘러봤다. 아침에 열려 있던 서랍장. 누군가 내 방을 뒤졌다. 무엇을 찾기 위해서? 혹시… 이 열쇠의 존재를 아는 걸까? 박철민 형사조차 배신자일 수 있다는 끔찍한 가정이 뇌리를 스쳤다. 아니, 그럴 리 없어. 그의 눈빛은 진실했어. 그렇다면 김 비서가 내 뒤를 밟았거나, 혹은 내가 모르는 제3의 인물이….

더 이상 이 열쇠를 몸에 지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디에 숨겨야 하지? 보석함? 옷장 깊숙한 곳? 전부 너무 뻔했다. 김 비서 같은 자라면 그런 곳부터 뒤질 게 분명했다. 내 시선은 침대 옆 작은 협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에 머물렀다. ‘어린 왕자’. 내가 햇살 보육원에서 이곳으로 올 때 유일하게 챙겨 온, 내 25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이었다.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해진 표지, 몇 번이고 읽어 귀퉁이가 닳아버린 페이지들. 누구도 이 낡은 책에 값비싼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의 가장 두꺼운 뒷부분, 판권 페이지와 하드커버 사이의 미세한 틈을 칼로 벌렸다. 그리고 그 안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열쇠는 마치 제자리인 것처럼 책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책을 다시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된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이 저택에서 가장 가난한 동시에, 가장 위험한 비밀을 품은 사람이 되었다.

다음 날 저녁 식사 시간은 가시방석 그 자체였다. 거대한 샹들리에의 불빛은 화사했지만, 식탁 위를 흐르는 공기는 시베리아 벌판보다 차가웠다. 아버지는 와인잔을 기울이며 주말 보육원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하린이가 직접 가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면, 언론에서도 아주 좋게 볼 거야. 그룹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내용이 내 심장을 어떻게 옥죄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준서는 나이프가 접시를 긁는 소리를 내며 스테이크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그의 턱에 굳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한서 오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연신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버지, 그래도 하린이가 혼자 가는 건…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한서 오빠의 말에 김태준 비서가 아버지의 뒤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대답했다.

“도련님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제가 아가씨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모든 일정과 동선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뱀처럼 귓가를 스쳤다. ‘완벽한 동선’.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내가 그의 손아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미소 지으며 포크를 들었다. 입안에 넣은 아스파라거스는 지푸라기처럼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오빠. 김 비서님이랑 같이 가면 안전하겠죠. 그리고… 저도 오랜만에 제가 자란 곳에 가보고 싶어요. 원장 선생님도 뵙고 싶고요.”

내 말에 아버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김 비서의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려 애쓰는 순간, 준서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접시에 고정된 채였다.

“길 잃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어떤 곳은… 한번 발을 들이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곳도 있으니까.”

그것은 누구를 향한 경고였을까. 나일까, 아니면 김 비서일까. 식탁의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김 비서의 계획대로 끌려가 꼼짝없이 당할 게 뻔했다. 내게는 변수가 필요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할 변수. 그리고 그 변수가 되어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나는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발소리를 죽인 채 향한 곳은 저택 뒤편의 온실이었다.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는 유리 건물 안에는 언제나처럼 준서가 있었다. 그는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이름 모를 난초를 매만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가장 아꼈다는 그 식물이었다.

내가 들어서는 기척에 그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즉각적인 경계심과 적의가 떠올랐다.

“또 무슨 꿍꿍이야. 밤마다 염탐하는 게 취미인가?”

“얘기 좀 해.”

“당신과 할 얘기 없어. 내 경고, 아직도 못 알아들은 모양인데….”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젯밤 받았던 그 사진을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사진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의 동공이 공포로 흔들리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이게… 뭐야.”

“어젯밤에 받았어. 발신인 표시 제한. 내가 저택에 들어오는 걸 누군가 찍어서 보낸 거야.”

준서는 내 손에서 휴대폰을 거의 빼앗다시피 가져가 사진을 확대했다. 그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림자’가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젠장…! 시작된 건가….”

그는 낮게 욕설을 읊조리며 휴대폰을 내게 돌려주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나를 향한 적의가 없었다. 대신, 더 거대한 위협 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절망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어? 당신이 나를 재앙이라고 부르며 밀어내는 동안, 진짜 재앙은 우리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는 걸.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당신과 한서 오빠, 그리고 이 집안 전체의 문제라고.”

“……그래서 나더러 뭘 어쩌라고.”

그의 목소리는 힘없이 갈라져 나왔다.

“도와줘. 이번 주말, 보육원에 가는 날. 김 비서가 나를 한시도 떨어뜨려 놓지 않을 거야. 나는… 그 감시를 피해서 잠깐 빠져나가야 할 곳이 있어. 한 시간, 아니, 삼십 분이면 돼. 그 시간만 벌어줘.”

준서는 허, 하고 기가 막힌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미쳤군. 당신,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그 자의 눈을 피해서 어딜 가겠다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그건 그냥 자살행위야!”

“그러니까 네가 필요해! 네가 소란을 피우든, 사고를 치든, 무슨 짓을 해서든 김 비서의 시선을 돌려줘. 네가 어머니의 죽음을 자책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할 거 아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나까지 엄마처럼 죽는 꼴을 보고 싶어?”

내 외침이 습한 온실 공기를 갈랐다. 어머니의 죽음. 그 단어는 그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비수였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얗게 질린 손등 위로 파란 힘줄이 툭, 툭, 솟아올랐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바닥만 내려다봤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좋아. 당신 뜻대로 해 주지.”

그의 목소리는 체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짓을 하든, 어디에 가든, 나한테 전부 말해야 해. 그리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그땐 당신 혼자 죽는 게 아닐 거야. 당신이 열어젖힌 그 지옥에, 나도 기꺼이 같이 뛰어들어 줄 테니까.”

그의 말은 협박이었지만, 동시에 기묘한 연대감마저 느껴졌다. 우리는 증오로 얽혔지만, 이제 공동의 적 앞에서 하나의 운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주말 아침이 밝았다.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나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 가득 실린 차에 오르기 위해 현관으로 나섰다. 검은색 세단 옆에는 김태준 비서가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는 내 차 문을 열어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준비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뒤편으로, 2층 창가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준서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빛은 분명히 내게 약속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차에 올라타자 김 비서가 반대편에 앉아 문을 닫았다. 묵직한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거대한 금고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가 안전벨트를 매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백미러를 통해 내 눈과 마주쳤다.

“오랜만에 옛 추억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는 길이니, 감회가 새로우시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잿빛 눈동자는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부디… 잊어버린 물건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아가씨.”

그의 마지막 말이 얼음송곳처럼 등골을 파고들었다. 그는 알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자동차가 부드럽게 저택의 정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지옥으로 향하는 리무진에, 악마와 단둘이 올라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