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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어둠 속의 첫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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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이 깜빡거렸다."

한적한 골목길의 가로등은 불안한 병든 듯, 토하는 듯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소녀는 그 아래에서 멈춰 섰다. 발끝을 가볍게 움직이며 선명한 패턴을 그리던 검정 운동화가 조금씩 지면에 밀려났다. 그녀의 눈에 서린 무언가가 아득히 피어오르기 직전이었다.

찢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속삭였지만, 끝내 잡히지 않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어둠 속을 헤매던 그녀는, 문득 낡고 흠집 많은 갈색 종이봉투를 발견했다. 무심하게 발 밑에 내려앉은 그것은 모든 예상과 추측을 깨뜨리듯 그 자리에 있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이 일순간 멈췄다가 폭발할 듯이 뛰었다.

"누구지? 여기에 놓고 간 사람은..."

그녀의 속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무너질 듯 안타까웠다. 자전거의 바퀴 소리처럼 돌아가는 머리 속에서 먼 기억이 흐릿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신호는 쉽게 해독되지 않았다.

걸음을 다시 옮기며 봉투를 집어 들자, 무거운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자물쇠가 채워진 과거의 문이 이 땅 한가운데 열리려는 듯 아스라이 문지방을 건드는 감각이었다.

갑작스럽게, 한 손이 소녀의 팔을 낚아채듯 잡아끌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위험해."

늘 하던 교세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맞닥뜨린 시선 속에서 소녀는 곧바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방인이라기엔 너무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빈센트."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름에 빈센트는 한순간 알아채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억했군."

마치 시험에 통과한 학생을 칭찬하듯, 그의 목소리는 쏙 화나게도 담담했다.

"아니, 그냥 기억난 거 같아."

소녀는 자존심을 지키려 애쓰며 덧붙였다. 그러나 그녀의 속마음은 어지러워졌다. 빈센트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눈 안에 알 수 없는 빛을 띄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가 중요한 게, 너한테 숨겨져 있어. 그래? 이 봉투 안에 말이야."

그가 가리킨 봉투는 여전히 소녀의 손에 있었다. 호흡이 얕아지며, 심장이 다시 한 번 세차게 뛰었다.

봉투를 열어보라는 빈센트의 시선은 강렬했다. 마치 destined for this moment인 듯, 운명처럼 결정된 순간 잃어버린 조각들이 그에게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봉투의 입구를 열었다.

안에는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의 얼굴에 여전히 희뿌연 안개가 덮여 있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사진 위를 스치자, 가느다란 무지갯빛 이음선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뜻이 있을까?"

빈센트는 살며시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소녀는 그 신비로운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숨겨진 기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솜처럼 가벼운 그러면서도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몰라. 단서일지도 몰라. 아니면..."

소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하필, 이제야?

빈센트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여기저기서 다른 소리들이 물결치듯 다가왔다. 급하게 지나가던 자동차의 경적 소리, 뒤섞인 익숙한 냄새 그리고 칠흑 어둠 속에서 어떤 존재가 그들을 몰래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인물은 소녀의 기억에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차마 믿을 수 없는, 그러나 뼛속 깊숙이 새겨진 상처와 같은 존재. 그녀의 입술이 그 인물을 방해받듯 무참히 나지막이 불렀다.

그러나 그 인물의 정체는, 어두운 밤과 함께 최소한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녀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본 적 있어?"

빈센트는 곁에서 그 붉은 머리카락의 흔적을 따라가며 물었다. 진실은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방금 스쳐 지나간 불현듯한 이미지에 마음이 얹히는 것을 느꼈다.

"그럴 리 없는데..."

소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빈센트는 벌써 그 의미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추적해야겠군. 기억을 찾기 위해선 단서들이 필요해."

그는 천천히 말하면서, 여유롭게 두 사람이 걸어갈 방향을 제시했다. 먼 길이 될 것을 직감하면서도 두 사람의 발걸음은 어둠 속에서 그들만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둠 저편, 커다란 그림자가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인물은 짙은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지면서, 깊숙한 비밀을 품고 있었다.

다음 단서는 어느 길모퉁이에 숨겨져 있을까. 그녀의 손 안에서 미세하게 떨리던 폴라로이드 역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