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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싸늘함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지나가자, 경계 없는 도시의 모든 것이 더욱 어두워졌다. 소희는 민재와 함께 골목을 빠져나왔다. 불길한 예감이 발걸음을 바삐 재촉했다. 그녀의 손안에서 무게를 가진 폴라로이드 사진들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비밀을 감춘 그것은 무언가 말을 걸려는 듯 했다.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소희는 무심히 중얼거리며 민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녀 옆에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침착함이 담겨있었다.
“이곳도 안전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추가적인 단서를 더 찾아야 해.” 민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 속엔 불안보다는 확신이 더 가득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흐릿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코끝을 스친 알싸한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중국말인지 모호한 언어로 주고받는 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저기 봐, 거기에서...” 소희는 시선을 돌려 소리가 나던 방향을 가리켰다. 벽을 따라 희미하게 그늘진 실루엣들이 엷은 가로등 아래 출몰하고 있었다. 낯선 이들이었다.
민재는 그녀의 등 뒤로 살짝 밀며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거리를 좁히지 말자. 상황을 먼저 파악해.”
소희는 민재의 말을 따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목표는 잠시 은신할 안전한 공간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빈센트의 그 아련한 미소가 맴돌았다. 여전히 무엇인가 그녀에게 말할 듯한 눈빛이었지만, 이미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길을 따라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고요 속에서 들리는 숨죽인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소희는 주변의 좁은 틈새를 따라 불안하게 시선을 돌렸다.
“저곳에 무언가 있어.” 민재가 손짓했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은 조용한 골목 한켠에 놓여진 낡은 서류 가방이었다. 소희는 민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가까이 했다.
“누구의 것이지?” 소희는 손에 든 가방을 살았다. 손끝이 가방의 차가운 자물쇠에 닿자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 무언가가 과거의 기억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
민재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열어서 확인해봐야 안되겠어? 어차피 우릴 겨냥한 함정일지도 모르니.”
소희는 머뭇거리다 이내 자물쇠를 풀고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에는 다양한 서류와 한 글자가 적힌 봉투가 들어 있었다. 봉투 한 귀퉁이에 쓰여진 글자는 낯설지가 않았다.
“이건... 형사 이준의 이름?”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목소리에 긴장감이 잔뜩 실렸다.
“여기까지 그와 엮여 있다니. 흥미롭군.” 민재는 서류를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건들은 모두 그로부터 나오거나, 그로 인해 생긴 건지도 모르겠군.” 소희는 속삭이듯 말했다.
허스름한 골목길에서 그들은 순간적으로 자신들의 동선이 노출되었음을 깨달았다. 수상한 그림자가 급격히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그들을 응시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보셨다? 저기 저 인물, 다시 나타난 것 같아.” 소희는 민재의 옷자락을 당기며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보는 사람은 괴롭다고 선전할 정도의 일이니, 뭔가 일이 벌어진 모양이야. 잠시 숨자.” 민재는 신속하게 그녀를 다잡으며 그늘진 틈새로 숨어들었다.
그들의 숨소리에 가려진 작은 공간에서, 소희는 그 사람을 주시했다.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그는 신중하게 주변을 탐색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저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야, 그치?” 소희는 속삭였다. 민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가 여기 있는 걸까... 더군다나 이 시간에.”
물아일체가 된 듯 그들이 위치한 곳으로 시선이 돌자, 위협이 가까워졌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직감했다.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서 빛처럼 번지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 뒤에, 그 인물은 결국 그 자리를 떠나는 듯했지만, 이내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는 소희의 심장을 얼린 채 멈추게 했다.
“너희를 찾고 있었다.” 굵고 깊은 목소리는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 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
“빈센트...” 그녀는 입이 마르며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그는 그 어두운 허공을 향한 두려움이 담긴 눈빛에도 불구하고, 한걸음 한걸음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비밀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듯, 떨리는 공간 속에서 수면 위로 일어났다. 그가 다시 나타났으니, 지금까지의 퍼즐이 풀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혼돈이 시작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소리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미소는 아무런 진실도 없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오직 예고될 더욱 큰 폭풍을 암시하기 위하여.
소희의 가슴이 터질 듯 치솟았다. 그 모든 의문들이 손에 닿을 듯한, 촉박한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음 순간, 탁 트인 공간과 함께 비밀은 다시 어둠 속으로 가려졌다. 그들의 사라진 기억의 조각이 마지막 퍼즐을 기다리며 새로이 조합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은 확인되지 않는 가능성, 그리고 잃어버린 진실을 위한 여정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