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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기운이 번뜩이는 눈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었다. 그 시선이 피부를 태우는 듯, 진수의 가슴이 쿵쿵 울렸다. 카페의 따뜻한 커피 향이 순식간에 차가운 공기로 변했다.
아름의 손이 스케치북을 꽉 쥐었다. 그녀의 긴 생머리가 어깨를 스치며 살짝 떨렸다. 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리를 멈췄다. 창문 너머로 보였던 그 눈동자가 이미 사라졌지만, 여전히 등골이 얼어붙었다. 김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진수야, 이건 시작일 뿐이야. 그 그림을 제대로 마주봐야 해.”
아름이 진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은 맑았지만, 그 안에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절박함이 스멀거렸다. “오빠가 그 그림을 본 후부터 이상해졌어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도 안 받아요. 당신의 작품이 그를… 빨아들인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며 공기를 가르자, 카페의 오래된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진수는 손가락을 테이블에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게… 내 그림 탓이라고? 난 그냥 그린 거예요. 모델도 없이 상상으로.”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입안에 쓴 맛이 맴돌았다. 김선생이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상상? 네 안의 힘이 그걸 현실로 만든 거다. 그 여인의 얼굴, 그 눈빛… 네가 그린 게 영혼을 끌어당기고 있어.”
아름의 손이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 속에 그려진 진수의 오래된 그림이 드러났다. 검은 잉크가 번진 여인의 형상이, 캔버스에서 본 그 얼굴과 비슷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다들… 변화했어요. 오빠처럼.” 그녀의 말에 진수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채우며, 머릿속이 맑아졌다. “제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그림을 파괴하면 될까요?”
김선생의 손이 진수의 어깨를 짚었다. 그 터치가 무거운 돌처럼 느껴졌다. “파괴? 그건 더 큰 재앙을 부를 거야. 그 힘을 이해해야 해. 네 가문의 저주가 깨어나면, 그 그림은 네 영혼을 삼킬 수도 있어.” 노인의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마치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듯. 아름이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그런데도 그냥 두실 건가요? 제 오빠는 실종됐어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해요!”
대화가 오가며 카페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바깥 거리의 자동차 소리가 먼 듯 들렸고, 창문 유리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며 작은 물방울 소리를 냈다. 진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가봐요. 작업실로. 그 그림을 직접 보게 해줄게요. 어쩌면… 해결책이 있을지도.”
아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나섰다. 김선생이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카페를 나설 때, 문을 열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진수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작업실로 가는 길, 낡은 빌딩 계단을 오르며 진수는 여전히 창문 너머의 눈빛을 떠올렸다. 계단의 금속 난간이 차갑게 손을 스쳤다. 아름이 옆에서 속삭였다. “두려우세요? 당신 눈빛도… 그 그림처럼 불안해 보이네요.”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각 단어가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두려움? 그건 아니에요. 그냥… 책임감이 커서.” 그의 목소리가 커피 찌꺼기처럼 쓰라렸다.
작업실 문을 열자, 안의 공기가 썰렁했다. 캔버스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그 위의 여인 얼굴이 여전히 그를 노려보는 듯했다. 조명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며 그림자를 춤추게 했다. 아름이 캔버스 앞으로 다가가 멈췄다. “이게 그 그림이에요? 오빠가 말했던 바로 그….” 그녀의 손이 캔버스를 스치자, 공기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김선생이 문을 닫으며 경고했다. “조심해. 그 그림은 살아 있는 거야. 만지면 네 영혼이 끌려갈 수 있어.” 진수는 캔버스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붓이 아직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주웠다. “선생님, 그 능력… 어떻게 제어할 수 있죠?” 노인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제어? 그건 네 안의 힘을 받아들이는 거지. 하지만 그 전에, 이 그림이 누군가를 가두었는지 확인해봐.”
아름이 캔버스 가까이 다가서며 그림을 들여다봤다. “오빠의 얼굴이… 여기 보이는 것 같아요. 이 눈동자 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며, 방 안의 먼지가 춤을 추듯 흩어졌다. 진수가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스쳤다. 그 순간, 캔버스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속삭임처럼, “도와줘…”라는 목소리가. 진수의 귀가 쩌렁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물러섰다. “방금 그 소리… 들었어요?”
대화가 이어지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김선생이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네가 그린 게 아니야. 누군가의 영혼이 개입된 거다. 아마도 네 가문의 저주가 작동한 탓에.” 아름이 진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도 그 힘을 가졌단 말이에요? 그럼 오빠를 구할 수 있지 않아요?” 그녀의 눈빛이 촉촉해지며, 방 안의 온도가 더 떨어지는 듯했다. 진수는 대답했다.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도해볼게요.” 그의 손이 붓을 쥐며,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바로 그때, 작업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강민혁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키가 문을 가득 채우며, 코트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진수,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마치 칼날처럼. 아름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누구세요?” 민혁은 그녀를 훑어보며 대꾸했다. “그림의 주인공? 아니, 피해자인가.” 그의 말투는 여유로웠지만, 눈빛은 예리했다.
진수가 민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우연이 아니겠죠.” 민혁이 웃으며 다가오다 캔버스를 봤다. “우연? 그럴 리 없지. 네가 위험해질 때마다 나타나는 걸. 하지만 이 그림… 나도 본 적 있어. 예전에.” 그의 말이 공기를 얼렸다. 김선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너도 관련이 있나? 이 저주는 더 깊이 퍼진 모양이군.”
민혁이 캔버스에 손을 뻗었다. “이 여인의 얼굴, 나도 그렸던 적이 있어. 하지만… 실패했지.” 그 순간, 캔버스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모두의 숨결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아름이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이게 뭐예요? 그림이… 움직이고 있어요!”
진수의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그는 붓을 들고 캔버스를 향해 다가갔지만, 발이 멈췄다. 그림 속 여인이 미소를 짓는 듯했다. 그 속삭임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희를… 데려갈게.” 민혁이 진수를 잡아당기며 외쳤다. “멈춰! 이건 아직 시작이 아니야.”
그리고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정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진수, 그 그림을 넘겨줘. 내가 처리할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평소와 달랐다, 위협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