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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그림 속의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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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이 번쩍이며 작업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캔버스에서 흘러나온 그 빛이 벽을 타고 꿈틀거리는 순간, 진수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그의 손가락이 붓을 쥔 채로 경련하듯 떨렸고, 코끝에 스멀거리는 썩은 냄새가 구토를 유발했다. 정유진의 모습이 문간에 서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녀의 미소가 칼날처럼 예리하게 빛났다.

정유진은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며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쳤다.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나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진수, 그 그림을 넘겨줘.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위협이 공기를 얼렸다. 아름이 벽 쪽으로 물러서며 팔짱을 끼고 몸을 떨었고, 김선생은 안경을 고쳐 쓰며 문을 등지고 섰다. 민혁은 캔버스 앞에 서서 손을 뻗었던 손을 거두며, 그의 눈빛이 어두운 방 안에서 번뜩였다.

"처리? 그게 무슨 뜻이야?" 진수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입안에 금속 맛이 맴돌았다. 그는 붓을 꽉 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지만, 다리가 무거운 돌처럼 느껴졌다. 정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모르는 세상이 있지. 그 그림은 단순한 캔버스가 아니야. 영혼을 삼키는 문이야. 전시회에서 이걸 이용하면, 나의 계획이 완성되는데..."

그녀의 말에 민혁이 끼어들었다. "유진, 아직 때가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지만, 그 안에는 익숙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진수는 그 순간 민혁의 어깨가 살짝 떨리는 걸 봤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흔들며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었고, 방 안의 먼지가 춤을 추듯 공기를 가득 채웠. 아름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빠를 구해야 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작업실의 긴장된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자,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침묵했다. 김선생이 캔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그림은 네 가문의 저주가 발현된 거다, 진수. 하지만 유진이 말한 대로, 이건 더 큰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어." 그의 말투는 늘 그렇듯 느리고 신중했지만,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게 눈에 띄었다. 진수는 캔버스를 노려보며 속으로 외쳤다.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고, 손바닥에 맺힌 땀이 붓을 미끄럽게 만들었다.

정유진이 앞으로 나서며 웃었다. "강민혁, 너도 이걸 알고 있었지? 네가 진수를 보호한다고? 웃기지 마. 너의 목적은 나랑 다르지 않아." 그녀의 말에 민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주먹을 쥐며 대꾸했다. "내 목적은 보호야. 하지만 이 그림이 풀어놓을 힘을 이용할 수 있으면, 그게 나쁠 건 없지." 민혁의 목소리가 커지며, 그의 발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진수는 그제야 민혁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선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형... 형이?" 진수가 중얼거렸다. 그의 가슴이 조여들었고, 숨이 가빠왔다. 민혁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그림은 너 혼자 감당할 수 없어.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그 대가로... 이 힘을 공유하자." 민혁의 말투는 여전히 카리스마 넘쳤지만, 그 안에 숨겨진 야욕이 드러났다. 아름이 진수의 팔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믿지 마세요. 이 사람들이... 다 이용하려는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떨리며, 긴 생머리가 진수의 팔을 스쳤다.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며, 작업실의 창문이 진동했다. 그 소리가 긴장감을 더했다.

정유진이 캔버스에 손을 뻗었다. "이제 그만, 이 그림을 가져갈게." 그녀의 손가락이 캔버스를 스치자, 붉은 빛이 다시 번쩍이며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진수의 피부가 소름 돋았고, 코에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김선생이 소리쳤다. "멈춰! 그걸 만지면 영혼이 빨려 들어갈 거야!" 그의 경고가 공기를 가르며, 노인의 손이 공중에 멈췄다.

하지만 그 순간, 캔버스 속 여인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며 웃었다. 그 미소가 진수의 뇌리를 파고들었고, 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이게... 무슨..." 진수가 중얼거렸다. 그의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아름의 손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길이 따뜻했지만, 그 안에는 공포가 스며들어 있었다.

"진수 씨, 제발... 같이 나가요." 아름이 속삭였다. 그녀의 눈빛이 촉촉해지며, 입술이 살짝 떨렸다. 진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아름 씨, 제가... 보호할게요." 그의 목소리가 약간 거칠어졌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민혁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보호? 웃기지 마. 너는 이 힘을 다루지 못해. 내가 대신할게." 민혁의 말에 정유진이 웃었다. "맞아, 민혁. 너와 함께라면 이 그림의 비밀을 풀 수 있지."

작업실을 벗어나 복도로 나가며, 세 사람은 숨을 헐떡였다. 낡은 빌딩의 계단을 내려가며, 진수는 뒤를 돌아봤다. 창문 너머로 그림의 붉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빛이 길게 늘어지며,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김선생이 뒤따라오며 중얼거렸다. "이건 시작이야. 그 그림은 더 강해지고 있어." 그의 발소리가 계단을 울리며, 오래된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울의 거리로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며, 거리의 소음이 그들의 대화를 가렸다. 아름이 진수의 옆에 서서 말했다. "당신을 믿어요. 오빠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흐르며, 손이 그의 팔을 스쳤다. 진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느꼈다. 그의 심장이 빨리 뛰었고, 손가락이 그녀의 손을 찾아갔다. "나도... 노력할게요."

하지만 그 순간, 민혁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대꾸했다. "잠깐, 중요한 전화야." 그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그는 거리를 벗어나 어두운 골목으로 걸어갔다. 정유진이 그 뒤를 따랐고, 그녀의 미소가 다시 번뜩였다. "민혁, 그 사람과 거래한 거지?" 그녀의 물음에 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진수를 이용해 이 힘을 빼앗을 거야."

진수와 아름은 그 대화를 엿듣지 못했지만, 민혁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걸 봤다. 그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듯해 보였다. 김선생이 진수의 어깨를 잡으며 속삭였다. "믿지 마. 민혁이... 배신자야." 그의 말에 진수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손이 차갑게 식었다.

거리의 차 소리가 커지며, 그들은 서둘러 이동했다. 카페로 향하는 길, 낡은 간판의 불빛이 그들을 비췄다. 하지만 진수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민혁의 배신, 그림의 비밀, 그리고 아름과의 연결. 그 모든 것이 얽히며, 그의 세계가 무너지는 듯했다.

바로 그때, 캔버스에서 나온 붉은 빛이 거리를 따라 퍼지기 시작했다. 그 빛이 사람들의 그림자를 삼키는 듯, 주위가 어두워졌다. 아름이 소리를 지르며 진수를 끌어당겼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그녀의 경고가 공기를 가르며, 진수의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오며, 속삭임이 들려왔다. "네 영혼을... 가져갈게." 그 목소리가 진수의 귓가를 스쳤고, 그는 몸을 떨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