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2화. 숨겨진 경고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탁. 폰 화면이 다시 어두워졌다. 지훈은 창가에 붙은 이마를 떼지 않은 채, 엄지로 메시지를 지우려다 멈췄다. ‘오늘 밤, 네 사무실에 누가 왔었지?’라는 문장은 차가운 유리처럼 그의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며, 셔츠 깃을 풀었다. 목덜미에 맺힌 미세한 땀이 에어컨 바람에 식었다.

지훈은 폰을 주머니에 넣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복도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는 손잡이를 움켜쥐었다가, 다시 놓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지훈 씨, 아직 안 가셨어요?”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영이었다. 그녀는 파일을 들고 서 있었다. 검은 치마가 다리를 따라 흘러내리고, 하이힐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지훈은 문을 열었다. 소영의 눈이 그의 얼굴을 훑었다.

“민우한테서 전화 왔어요. 계약서 확인됐냐고.”

“지금 확인 중이야.”

지훈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소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민서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민서가 여기 왔다 갔다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소영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지훈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마우스를 클릭하며 화면을 돌렸다. 커피 잔향이 여전히 공기 중에 남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파일 전달하고 갔을 뿐.”

“그런데 왜 얼굴이 그렇게 굳어 있어요?”

소영은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지훈은 손을 멈췄다. 그의 턱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영, 너도 늦게까지 왜 남아 있어.”

“민우 오빠가 걱정해서. 형이랑 민서가… 너무 가까워 보인다고.”

소영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끝에 날이 서 있었다.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 차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소영은 웃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또 다른 파일을 꺼냈다.

“이건 내일 미팅 자료야. 그런데… 지훈 씨, 진짜 아무 일 없던 거 맞죠?”

지훈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경 불빛이 그의 눈동자를 반짝이게 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여전히 그의 등을 타고 흘렀다.

소영이 떠난 후, 지훈은 다시 폰을 꺼냈다. 익명 번호로 답장을 보냈다. ‘누구냐.’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민서였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블라우스 단추가 하나 더 풀려 있었다.

“오빠가… 전화했어요. 형이랑 나랑 무슨 일 있냐고.”

민서의 목소리는 떨렸다. 지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그녀의 팔찌가 손가락에 걸렸다.

“민우가 왜 전화했지.”

“모르겠어요. 그냥… 형 사무실 불이 켜져 있는 걸 봤대요.”

민서는 한 발 더 다가왔다. 그들의 몸 사이가 좁아졌다. 지훈의 셔츠가 그녀의 블라우스와 스쳤다. 천의 마찰음이 작게 울렸다. 민서의 향수가 다시 코끔을 간질였다. 바닐라와 시트러스. 지훈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오늘 밤은… 그냥 가.”

그의 말은 낮았다. 민서는 그의 셔츠 깃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형, 나… 진짜로 형 보고 싶었어요.”

지훈은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았다. 민서의 머리가 그의 가슴에 닿았다. 심장 박동이 그녀의 귀에 울렸다. 그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손길은 천천히 내려갔다. 민서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지훈아.”

그녀가 이름을 불렀다. 지훈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가져갔다. 부드러운 접촉이 시작됐다. 그러나 폰이 다시 진동했다. 익명 번호였다.

‘민서, 맞지? 조심해.’

지훈은 민서를 떼어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무슨 문자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가.”

민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지훈의 손을 붙잡았다.

“오빠가 알면… 우리 끝장나요.”

지훈은 그녀를 문 쪽으로 밀었다. 그러나 민서는 돌아보았다.

“내일… 여기서 봐요?”

그녀가 떠난 후, 지훈은 폰을 내려다보았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일 아침, 민우가 너를 찾아갈 거야.’

지훈은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손을 댔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민서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우빈이었다. 지하의 형으로, 민우의 친구. 우빈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눈이 지훈을 노려보았다.

“형, 민서가 여기 있었지?”

우빈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지훈은 몸을 돌렸다.

“무슨 일로 왔어.”

“지하가… 아니, 민서가 형한테 끌리는 거 알아요. 내가 막을 거예요.”

우빈은 주먹을 쥐었다. 지훈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압력이 세지 않았다. 그러나 긴장이 공기를 채웠다.

“우빈, 너는 모르는 일이야.”

“알아요. 소영 누나가 말해줬어요. 형이랑 민서… 금지된 거라고.”

우빈은 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사진이 떠 있었다. 지훈과 민서가 가까이 붙어 있는 장면. 지훈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 사진… 누가 찍었지?”

지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빈은 웃었다.

“모르겠어요?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요. 내일 민우 오빠한테 보여줄 거예요.”

지훈은 우빈의 팔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그 사진, 지워.”

“안 돼요. 민서를 지킬 거예요.”

우빈은 문을 열고 나갔다. 지훈은 폰을 다시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 ‘내일, 모든 게 끝날 거야.’

지훈은 숨을 삼켰다. 그의 손이 탁자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창밖에서 움직였다.

민서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훈아, 지금… 무서워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경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누가… 우리를 보고 있어.”

민서의 마지막 말이 전화 너머로 울렸다. 지훈은 폰을 내려놓았다.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민우였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형,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민우는 파일을 던졌다. 사진이 바닥에 흩어졌다. 지훈과 민서의 장면이 드러났다. 민우의 눈이 지훈을 향했다.

“이게… 뭐야.”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민우의 어깨를 잡았다.

“민우, 들어.”

그러나 민우는 손을 뿌리쳤다.

“지금 당장 설명해. 아니면… 끝이야.”

지훈은 창가로 물러섰다. 그의 등 뒤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익명 번호에서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택해. 민서냐, 친구냐.’

지훈의 손이 폰을 움켜쥐었다. 화면이 그의 눈동자에 반사됐다. 민우가 한 걸음 다가왔다.

“형?”

지훈은 눈을 감았다. 민서의 향수가 코끝을 스쳤다. 그러나 현실은 차가웠다.

민우의 다음 말이 그의 귀를 때렸다.

“지하… 아니, 민서가 지금 병원에 있어. 사고 났대.”

지훈의 눈이 번쩍 떴다.

“무슨 소리야.”

민우는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씁쓸했다.

“네가 선택할 때까지, 민서는… 안전하지 않을 거야.”

지훈은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복도 끝에서 우빈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 또 다른 사진이 들려 있었다.

“형, 이제 시작이야.”

지훈은 멈춰 섰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민서의 이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번엔 지하, 아니 민서의 동생이 아니었다. 새로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민수 형, 오랜만이네요.”

그 목소리는 낮고 낯설었다. 지훈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 선 남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지켜보고 있었어요.”

지훈의 손이 다시 폰을 움켜쥐었다.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이제, 진짜 게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