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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사무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강지훈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을 멈췄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야경 불빛이 그의 턱선을 따라 흘렀고,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커피 잔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형, 여기 있었구나.”
그 목소리는 낮고도 선명했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책상 맞은편에 선 여자는 검은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풀어젖힌 채 서 있었다. 손에는 파일 하나를 들고 있었지만, 그 시선은 파일이 아니었다. 민서의 눈동자가 그의 손등을 훑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도드라지는 걸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왜 왔어. 민우는?”
“오빠는 출장 갔어. 대신 이 계약서 가져다 달라고 해서.”
민서는 책상 위로 파일을 밀어 넣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지훈의 손등을 스쳤다. 그 순간 지훈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사무실 안은 에어컨 바람 소리만 남았다.
지훈은 파일을 펼치지 않았다. 대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민우가 너한테 이런 심부름 시키는 건 처음이네. 네가 직접 올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지. 그런데 형 사무실이 이렇게 늦게까지 불 켜져 있을 줄은.”
민서는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블라우스 소매가 팔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얇은 팔찌가 불빛에 반사됐다. 지훈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마우스를 클릭하며 화면을 스크롤했다.
“돌아가. 내일 아침에 민우한테 전화할게.”
“그렇게 쫓아내?”
민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녀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지훈의 코끝에 달콤한 향수가 스며들었다. 바닐라와 시트러스가 섞인 냄새였다. 지훈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민서야.”
“응.”
“너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대답 대신 민서가 웃었다. 짧고 낮은 웃음이었다. 그녀는 지훈의 손등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지훈은 손을 빼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 그녀의 손목을 눌렀다. 압력이 세지 않았다. 그러나 민서는 숨을 삼켰다.
“장난 아니야. 그냥… 형이 보고 싶었어.”
지훈의 턱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 차이 때문에 민서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민우가 알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모를걸. 오빠는 바쁘니까.”
민서는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들의 몸 사이가 좁아졌다. 지훈의 셔츠 단추가 그녀의 블라우스와 스쳤다. 천의 마찰음이 작게 울렸다. 민서는 눈을 내리깔았다. 지훈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지훈아.”
그녀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지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호흡이 섞였다. 민서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 순간 지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민우’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지훈은 손을 떼지 않았다. 민서는 그의 셔츠 깃을 잡았다. 진동음이 세 번 울리고 멈췄다. 다시 울렸다. 이번엔 더 길게.
“받아.”
민서가 속삭였다. 지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턱선을 따라 미끄러졌다. 진동음이 계속됐다. 민서는 그의 셔츠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지훈이 마침내 다른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민우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형, 계약서 보냈어? 민서가 제대로 전달했는지 모르겠네.”
지훈은 민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보냈어. 지금… 확인 중이야.”
민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네. 참, 민서가 형 사무실에 간다고 하더라. 혹시 늦게까지 있으면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라고 전해줘.”
민서는 지훈의 셔츠를 놓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불안과 기대가 동시에 스쳤다. 지훈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대신 민우에게 말했다.
“알겠어. 그런데… 민서가 지금 여기 있어.”
전화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민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조금 낮아져 있었다.
“그래? 그럼 잘 부탁해. 내일 보자고 전해.”
전화가 끊겼다. 지훈은 폰을 내려놓았다. 민서는 그의 셔츠를 놓았다. 대신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지훈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오빠가… 알면 안 돼.”
민서가 작게 말했다.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경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반사됐다. 민서는 파일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내일 다시 올게.”
그녀가 문을 열었다. 복도 불빛이 사무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지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민서가 문을 닫기 직전, 그녀가 돌아보았다.
“형, 오늘은… 그냥 가는 거 맞지?”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서는 문을 닫았다. 사무실은 다시 어두워졌다. 지훈은 책상 위에 놓인 폰을 내려다보았다. 민우의 이름이 여전히 화면에 남아 있었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숨이 거칠어졌다.
복도에서 민서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이마를 댔다.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민서의 향수가 아직 코끝에 남아 있었다.
문득 폰이 다시 진동했다. 이번엔 문자였다. 발신자는 민우가 아니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익명’이었다.
‘오늘 밤, 네 사무실에 누가 왔었지?’
지훈의 손이 폰을 움켜쥐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다시 섰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경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