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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을 두드리는 비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민지의 떨리는 숨소리가 귀 옆에서 크게 들렸다. 우리는 어느새 작고 낯선 문 앞에 서 있었다. 고요한 듯 한 공간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것들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방금 전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거울과는 다른 강렬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소윤아, 이 문 뒤에 뭐가 있을까?"
민지가 흥분과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손은 나의 손을 꼭 쥔 채였다. 땀이 내가 흘린 것인지, 그녀가 흘린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손잡이를 돌렸다.
탁. 경첩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문이 열리자, 우리는 그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둑어둑한 빛 속에서 벽면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는 길다랗고,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검고 거대한 무언가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그림자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것은 작은 소리가 아니었다.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이 혼합되어, 이 세계의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헛기침을 하듯, 나는 잠시 귀를 의심하며 그 목소리를 들었다.
"너희는... 알 수 있을 거야..." 목소리는 흉흉하게 울렸다.
"뭘, 대체 뭘 알라는 거야!"
내 목소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내 또렷한 소리로 돌아왔다. 그것은 마치 나의 의문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했다.
"너희가 찾던 진실 말이다. 진정한 진실은 거울 속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야. 여기... 이곳에 모두 숨겨져 있지."
그때 민지가 내 손을 세게 잡아 당겼다. 그녀의 눈은 번뜩였다. "도준을 돕기 위해서라도, 우린 이 길을 가야겠지, 소윤아."
민지의 말은 거의 믿음에 가까웠다. 우리의 억양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마치 선언과도 같았다. 우리는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름이 돋고,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아 감각이 무뎌졌다. 무언가 스멀거리며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 감촉은 마치 목련나무 잎 사이사이를 감싸고 있는 실처럼 가느다란 느낌이었다. 오싹한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준비된 공포에 눌려 있던 그때, 뒤를 돌아보니 도준의 모습이 아스라이 입가에서 피어나는 희미한 미소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의 손짓은 우리에게 다가오라는 듯, 다음 문을 열라는 신호였다.
"여기를 지나면 알게 될 거야. 윤지호의 이야기를." 도준은 속삭였다.
민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가, "도준, 우리가 널 구할 수 있겠지?"라며 작게 물었다.
그것은 마치 반쯤 믿고도 반쯤 의심하는 물음 같았다. 그러나 도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지도 몰라. 하지만 난 믿어. 너희가 할 수 있을 거야."
그의 확신 가득한 말에 우리는 다시금 발걸음을 재개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어떤 모습으로 좌절하거나, 아니면 기뻐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도준을 보며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
길의 끝에는 빛이 섬광처럼 쏟아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것은 크나큰 거울이 아니었다. 작고 아늑한 방, 그리고 그 한쪽 벽에는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기록물들이 가득했다.
민지는 경이에 찬 눈빛으로 외쳤다. "여기는... 이 학교의 모든 비밀이..."
나도 경탄을 금치 못하며 손을 내밀어 문서를 훑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유독 한 장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보라색 노트, 그것은 윤지호가 남긴 마지막 일기였다. 마치 비밀을 풀어내기 바라는 듯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모든 게 이 안에 들어 있어." 나는 감칠맛 나는 목소리로 잠시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우리는 그 노트를 열었다. 그리고 민지와 나는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당연히 상상으로만 그리던 윤지호의 이야기가 진짜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사건의 시작부터 도준이 그 어두운 비밀에 빠지게 된 이유까지, 모든 것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우리를 그야말로 얼어붙게 만든 문장이 있었다.
"이 흔적을 따라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문 뒤에는 내가 있는 곳이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윤지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뜻밖의 단서로, 오히려 새로운 길을 암시하는 듯했다. 민지의 손에 들려 있는 노트에서는 흙냄새 같은 것이 났다. 문자를 두드리듯, 노트는 그 모든 진실을 껴안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금 우리의 뒤에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는 철렁하고 뜨는 심정으로 뒤로 돌아봤다. 거기엔 무언가가 서 있었다. 그것은 도준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도준과 같은 투명한 형체였지만, 분명히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바로 윤지호였다. 그의 손이 천천히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다른 차원의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려는 듯했다. 그의 눈빛은 우리를 꿰뚫어 보려는 듯 공격적이었다.
"너희가 찾던 걸 찾았지만, 이젠 너희가 그 진실 안에 묶일 차례야."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 마지막 순간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해야 할지 선택할 시간이 없었다.
민지는 비명을 지르며 내 손을 다시 잡아끌었지만, 나는 그제야 우리에게 물러서기엔 이제 너무 늦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을 다시 뒤로 되돌릴 수 없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끝이 아니야, 소윤아. 이게 진짜 끝이 아니야."
훈훈히 속삭이는 민지의 목소리, 그 속에서 나는 더욱 강한 결단력으로 무거운 공포를 이겨낼 도전을 다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새로운 빛이 우리 앞으로, 다시 한번 열렸고 소리 없는 경적처럼 문이 거세게 열렸다. 그 빛은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모든 어둠을 뚫어내려는 듯 거칠었다.
우리의 선택은, 이제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