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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새벽빛이 스며드는 순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쿵 뛰며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어젯밤의 꿈속에서 오준혁의 눈빛이 나를 집어삼킬 듯 다가왔고,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강아린, 도망치지 마.’ 그 한마디가 현실처럼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 꿈일 뿐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걸까? 그의 부탁, 그의 쓸쓸한 눈빛, 그리고 급히 나갔던 그 뒷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갔다. 서울의 아침은 여전히 차갑고 무심한 빛으로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유리창에 손을 대자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통해 온몸으로 퍼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거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이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손길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강아린, 정신 차려. 이건 계약일 뿐이야.’ 나는 스스로를 다잡으려 속으로 되뇌었지만, 그 말은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주방으로 내려가니 펜트하우스는 여전히 고요했다. 테이블 위에는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지만, 오준혁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젯밤 그가 급히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커피 잔을 손에 들고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부재가 오히려 그의 존재를 더 강렬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공기 속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그의 체취, 그가 앉았던 소파의 살짝 눌린 흔적. 모든 것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이 피어올랐다. ‘괜찮은 걸까?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시간이 흘러 오전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일정 관련 서류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그의 스케줄을 훑어보며, 오늘 오전에 예정된 회의가 취소되었다는 메시지를 발견했다. 누가, 왜 취소한 걸까? 그의 비서로서 최소한의 확인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그의 낮고 피로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아린, 무슨 일이야?"
그 목소리는 어제보다 더 거칠고 지쳐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을 멈추며 말을 이었다.
"오늘 오전 회의가 취소된 것 같아서 확인하려고요. 괜찮으신가요? 목소리가 좀… 피곤해 보여요."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가 전화 너머로도 선명하게 들렸다.
"괜찮아. 회의는 내가 취소했어. 오늘은 좀 늦게 들어갈 테니, 일정은 알아서 조정해.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그의 말투는 여전히 단호했지만, 어딘가 흔들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더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알겠어요. 그럼…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는 짧게 "그래"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피로와 긴장감. 대체 무슨 일이 그를 이렇게 몰아넣는 걸까? 나는 계속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건 계약이야. 그의 사생활에 끼어들지 마.’ 하지만 그 다짐은 점점 더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오후가 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펜트하우스 안을 서성이며 그의 흔적을 찾는 듯한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서재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망설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김태훈.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그 이름이 적힌 서류를 손끝으로 스치자, 종이의 거친 질감이 피부를 자극했다. 이건 단순한 비즈니스 서류가 아니었다. 날짜와 장소, 그리고 ‘협상 실패’라는 단어가 굵게 적혀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서류를 더 읽어보려 했지만,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온몸이 굳어졌다.
"강아린, 거기서 뭐 하는 거야?"
그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준혁이 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억눌린 격정이 춤추고 있었다. 셔츠는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구겨져 있었고, 그의 턱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떨리며 서류를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냥… 서재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어요. 서류 정리하려고…"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책상 위의 서류를 한 손으로 쓸어 담았다. 그의 손동작은 빠르고 단호했지만,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 서재에는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마. 알겠나? 이건 경고다."
그의 말투는 단호했지만, 목소리에는 피로가 깊이 배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시선이 나를 훑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눈빛은 나를 꿰뚫는 듯했지만, 어딘가 보호하려는 듯한 기색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게요. 정말… 그냥 문이 열려 있어서…"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류를 서랍에 넣으며 고개를 돌렸다.
"됐어. 나가. 그리고 오늘 밤,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준비해. 7시까지 드레스 입고 대기하고 있어."
그의 명령은 단호했고,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를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차가운 말투, 그 눈빛, 그리고 서류에 적혀 있던 김태훈이라는 이름. 모든 것이 나를 점점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대체 그 서류는 뭐였을까? 왜 그는 그렇게 날카롭게 반응한 걸까?
시간이 흘러 저녁 7시가 가까워졌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준비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번 드레스는 깊은 에메랄드빛으로, 어깨선이 드러나는 디자인이었고,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실루엣이 몸매를 강조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다. 드레스를 입은 순간, 그의 시선에 갇힐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건 계약이야. 그의 눈빛에 흔들리지 마.’ 하지만 그 다짐은 이미 허약하게 느껴졌다.
거실로 나가자, 오준혁은 이미 블랙 수트를 입고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여전히 날렵하고 위험해 보였다. 셔츠의 첫 단추가 살짝 풀린 모습이 그의 차가운 매력을 더 부각시켰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내 드레스를 훑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 눈빛은 한순간 뜨겁게 타오르다가 다시 평소의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손끝으로 드레스 자락을 살짝 쥐며 긴장을 감추려 애썼다.
"준비됐나? 가자."
그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지만, 어딘가 낮고 깊은 울림이 담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의 체취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나와 그 사이의 거리는 겨우 몇 발자국. 하지만 그 짧은 거리마저도 숨이 막힐 만큼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오늘 밤은 그냥 그의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 끝내자. 더 이상 흔들리지 말자.’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차는 강남 한복판의 고급 클럽으로 향하고 있었다. 클럽에 도착하자, 우리는 곧장 VIP 룸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은 낮은 조명 아래, 묵직한 베이스 소리가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고위층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공기 속에는 시가 연기와 고급 향수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이곳은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었다. 권력과 돈이 얽힌, 더 은밀하고 위험한 자리였다.
"오늘은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거야.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마. 알겠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에 붙어 섰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얹히는 순간,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내 피부를 통해 심장까지 전달되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그의 옆에서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의 소개에 따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그의 손길에 집중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작은 접촉에도 내 몸이 반응하는 걸까?
자리가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더 긴장감 속에 빠져들었다. 그의 손길, 그의 시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태훈이 테이블 한쪽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를 짓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 대표, 오늘도 강아린 씨와 함께 오셨군. 참 보기 좋은 조합이야."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준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김 대표, 불필요한 말은 삼가주시길.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러 온 겁니다."
그의 말투는 단호하고 냉정했다. 김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훑고 있었다. 나는 불쾌한 기분을 감추며 오준혁의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살짝 더 강하게 끌어당기는 순간, 나는 그의 긴장감을 느꼈다. 그의 손끝이 내 드레스 천을 통해 피부를 누르는 힘이 점점 세졌다.
"강아린 씨, 잠시 나와 이야기 나눌 시간 있으신가요? 오 대표가 너무 꽉 잡고 계시는 것 같아서 말이야."
김태훈의 목소리가 다시 공간을 울렸다. 그의 말투는 여유롭고 느긋했지만, 그 안에는 집요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오준혁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태훈, 경고한다. 강아린 씨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마. 내 말 잊지 말고."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김태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떠나며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어딘가 불길하고 집착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오준혁의 옆에서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자리가 끝날 무렵,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펜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의 침묵은 더 무거웠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의 존재를 외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체취, 그의 숨결이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손에 쥔 클러치를 만지작거리며 긴장을 풀어보려 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그 침묵을 깨뜨렸다.
"오늘 힘들었지? 잘 버텨줘서 고맙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강렬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그냥 옆에 있었을 뿐이에요."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충분해. 네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어."
그 말에 내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건 계약일 뿐인데, 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이렇게 흔드는 걸까? 나는 손을 꼭 쥐며 대답했다.
"그냥… 계약에 따른 일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계약이지. 하지만 강아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통제되지 않아.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걸, 점점 더 느끼고 있어."
그의 말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날렵한 턱선, 그리고 깊은 눈빛. 나는 왜 이렇게 그에게 끌리는 걸까? 이건 계약일 뿐인데, 왜 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펜트하우스에 도착한 후, 나는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멈추게 했다.
"강아린, 잠깐. 오늘 밤, 한 잔 하면서 얘기하지 않겠나?"
그 말에 내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한 잔 하면서 얘기하자니.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방에서 있었던 대화, 그의 손길, 그리고 나를 흔들리게 만든 그 눈빛. 나는 문 앞에서 망설였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문을 열면, 정말로 계약의 경계를 넘게 되는 걸까? 아니, 이미 나는 그 경계를 넘어버린 걸까?
"늦었어요.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 볼게요."
나는 겨우 그 말을 내뱉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강아린, 도망치지 마. 오늘 밤, 정말 중요한 얘기야. 들어와."
그 말에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조여왔다. 중요한 얘기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강렬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을 떨며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여전히 낮은 조명 아래,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이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위스키 잔이 들려 있었고, 셔츠의 첫 단추가 풀린 모습이 어쩐지 더 위험해 보였다.
"앉아. 긴장하지 말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숨을 삼켰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아린, 김태훈에 대해 조금 더 말해줄게. 그는 내 과거의 동업자였다. 하지만… 우리가 나눴던 신뢰는 오래전에 깨졌다. 그가 너를 언급하는 건, 나를 자극하려는 의도야. 그러니 그의 말에 흔들리지 마. 알겠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더 많은 질문이 피어올랐다. 신뢰가 깨졌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나를 통해 그를 자극하려는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제가 그 자극의 도구가 되는 게 싫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깊고 복잡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나는 숨을 죽였다. 그의 손이 내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냥 내 옆에 있어.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이건 위험하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길이 내 턱을 스치며 내려갈 때, 나는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이만 들어가 볼게요. 정말 피곤해서요."
나는 겨우 그 말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그 힘은 강하지 않았지만,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아린, 도망치지 마. 나도, 너도, 이 경계를 넘고 싶어 하는 거 알잖아. 그리고 오늘 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조여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니. 그 말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강렬했다. 나는 손목을 잡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 따뜻한 온기에 몸이 굳어졌다. 이건 계약일 뿐인데, 왜 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그 순간, 갑작스럽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손을 놓고 전화를 받았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다. 지금 바로 갈게."
그는 전화를 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었지만, 어딘가 초조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짧게 말했다.
"강아린, 미안하다. 급한 일이 생겼어. 오늘 밤은 여기서 끝내자. 하지만 이 대화, 끝난 게 아니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지만, 심장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 그의 손길, 그의 눈빛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또다시 급히 나간 그의 모습. 대체 무슨 일이 그를 계속 쫓는 걸까? 김태훈과 관련된 일일까, 아니면 더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나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낯선 번호. 나는 망설이며 전화를 받았다. 저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강아린 씨, 오준혁과 너무 가까이 있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알게 되면… 후회할지도 몰라요."
그 목소리는 김태훈의 것이었다. 나는 숨을 삼키며 전화를 끊었다. 대체 무슨 진실을 말하는 걸까? 오준혁이 숨기고 있는 게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경고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또 어떤 어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