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15화. 신뢰의 균열

이 에피소드는 오디오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비 내리는 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수현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그의 머릿속을 칭칭 감았다. 배신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연주의 작품 철회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애써도 걸어가던 학교 복도는 점점 더 길게 느껴졌다.

"잠깐!" 교실 문을 막아선 민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사건이 일어났대, 수현."

수현은 심장이 뛰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휘청했다. 미처 입을 열지 못한 채 민재와 눈을 맞췄다.

"듣고 있어." 수현은 차분한 척 했지만 속은 불안감으로 뒤엉켰다. 그때 입으로 턱을 긁적이는 민재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떻게 된 일이야? 한비가 마치, 우리 계획을 배신할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수현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 민재의 불안이 자신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한비뿐만이 아닌 서로 간의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수현이 침묵을 깨고자 입을 열었다.

"라니...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 우리, 우선 연주와 만나 얘기부터 해보자."

민재와 수현은 급히 동아리실로 향했다. 동아리실 문을 열었을 때, 연주는 의자에 앉아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액자 하나를 돌리며 멍하니 그들을 맞이했다.

"너흰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배어 있었다. 연주는 일부러 작게 숨을 쉬며 감정을 내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어떤 얘길 들었는지, 솔직히 말해줘." 수현은 그녀의 앞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연주의 손에 있던 액자가 덜컹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사실 좀 이상하긴 해. 한비가 학교 측에 뭔가 얘기를 했대. 어떤 선배에게서 들었거든." 민재는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 수현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연주의 눈은 여전히 그들을 향했지만 마음은 멀리에 떨어져 있었다.

그 순간, 문이 다시 열리고 한비가 들어왔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크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즉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리자 움찔 거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들어. 얘기 좀 해볼까해. 연주, 너의 작품이 중요한 건 맞아. 그래서 방법을 찾고 싶어."

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했으나 연주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비의 결심은 분명해 보였다.

연주는 손바닥을 펴서 그에 응답하고,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눈가의 긴장을 풀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뭘까?"

한비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내가 방침을 학교랑 다시 논의해 볼게. 그동안 너희는 준비 다 하고 있어."

대화는 흐르지 않았고, 그들의 결합은 완전히 불완전해졌다. 누군가의 실루엣이 창밖을 지나가던 그 순간, 모두는 그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끝없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한 가지 알았으면 좋겠어. 우리, 아직까지 이 모든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순간 한비의 눈들이 살짝 떨리는 듯 했다.

긴장감이 가득했던 순간이 지나가고, 그들의 시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쓸쓸히 내리던 빗소리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방울방울로 화려하게 바뀌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거세지며 강한 역전의 몰아침 속으로 그들을 홀리고 있었다.

교실에서 나오면서 민재는 속삭였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확인이 필요해. 소문에만 너무 의지하지 말자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그들은 외면할 수 없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 길은 더 멀리, 더 깊은 갈등의 심장부로 그들을 이끄는 발걸음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다가올 결심의 순간을 향한 준비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잡한 감정의 미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