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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돌바닥 위에 몸이 닿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칼날이 심장을 꿰뚫는 느낌. 피가 목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리며, 눈앞이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반역자의 차가운 미소였다. 그 눈빛, 잊을 수 없다. 나를 배신하고 제국의 심장을 찢어버린 그자의 얼굴.
‘레나 아르카이제. 네가 황녀라 해서 운명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분노와 무력감이 뒤섞인 채로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제국은 무너졌고, 나는 죽었다. 그런데… 왜 눈이 떠지는 걸까?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금빛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천장. 이곳은… 내 침실? 황궁의 동쪽 별궁,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방이었다. 몸을 일으키려 손을 뻗자, 손이 작아져 있었다. 거울로 달려가 얼굴을 확인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거울 속의 나는… 14살의 레나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목소리마저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꿈일 리 없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거울의 감촉, 창문 너머로 들리는 새소리,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나는 정말로 과거로 돌아온 걸까? 죽음 직전의 그 순간에서, 다시 기회를 얻은 걸까?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일어나셨습니까? 아침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
릴리였다. 나를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 온 시녀.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뜨겁게 저렸다. 릴리는 그때도,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내 곁을 지켰다. 그리고 결국 반역자들에게 끌려가….
“릴리.”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를 끌어안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나는 황녀다. 레나 아르카이제. 이번 생에서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어.
“네, 전하. 무슨 일이신지요?”
릴리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나는 차분히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날짜가 며칠이지?”
“네? 아, 오늘은 4월 7일입니다. 전하의 생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4월 7일. 14살의 봄.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전이다. 반역자가 황궁에 발을 들이기 전, 내가 그를 믿고 손을 내밀기 전. 제국이 아직 내 손안에 있을 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내가 직접 운명을 바꿀 것이다.
“릴리, 오늘 일정은?”
“오전에 황태자 전하와의 차 모임이 있습니다. 오후에는 황비 마마께서 전하를 찾으시니 서궁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황태자 오라버니. 그리고 황비 마마. 두 사람의 이름이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오라버니는 나를 늘 따뜻하게 대해줬지만, 결국 반역자들의 손에 의해 독살당했다. 황비 마마는… 그녀의 미소 뒤에 숨겨진 비밀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눈을 감지 않겠다.
“알겠어. 준비해.”
릴리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나는 다시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린 얼굴, 맑은 눈동자. 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10년의 고통과 배신을 겪은 내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순진한 황녀가 아니다. 이번 생에서는 냉정하게, 철저하게 움직일 것이다.
창문 너머로 황궁의 정원이 보였다. 햇살이 반짝이는 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안다. 이곳이 얼마나 많은 음모와 피로 얼룩진 곳인지. 반역자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다. 카엘 드 로안. 나를 죽인 그 남자. 이번에는 네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아니, 죽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네가 믿었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겠다.
“기다려, 카엘.”
내 입술 사이로 낮게 중얼거린 이름이 공기 중에 스며들었다. 복수는 시작되었다. 이번 생, 나는 절대 지지 않는다. 제국을 지키고,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심지어 내 손을 더럽히는 한이 있더라도.
문이 다시 열리며 릴리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차 모임에 입을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심장이 다시 한 번 뜨겁게 뛰었다. 이건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