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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에서 흔들리는 대지가 심각한 깨달음으로 지우의 전신을 조였다. 나무들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울려 퍼지던 바람이 이제는 끝 모를 소리가 되어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숨을 고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우리 이대로 멈춰 있어도 되는 걸까?" 미연의 목소리가 지우의 혼란스런 흐름을 끊었다. 그녀의 두려움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주변의 긴밀함 속에 확연히 묻어나왔다.
수현이 고개를 저으며 무기력한 눈빛을 마주쳤다. "제자리에 머무를 시간이 아니야. 태준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질겁하길 기다릴 수만은 없어."
손을 얼핏 쥐었다가 다시 푸는 순간, 지우의 내면에는 흐르는 물결처럼 걸쭉한 불안함이 스며들었다. 맞춰봐야 할 퍼즐의 조각들이 여전히 삐뚤어져 어수선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태준의 실루엣이 빛 속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자, 그녀의 목소리는 의도하지 않은 예리함으로 튀어나왔다. "도대체, 네가 무엇을 그렇게 원하길래 우리를 이곳까지 몰아넣는 거야?"
그것은 의문이자, 도발이자, 지친 호소이기도 했다. 태준의 눈빛은 여전히 감정을 읽기에는 너무 멀고 어렵기만 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태준이 그들의 반응을 시험하듯 물었다.
도현이 손에 쥔 나뭇가지로 땅을 긁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강건한 태도 속에는 이미 알고 있는 진리가 녹아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리 복잡하게 만드는 건지 모를 일이지," 수현은 마치 그 복잡성을 무시하고 싶다는 투로 고백했다. 고개를 흔들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지우는 걸음을 멈췄고, 수치스럽게 떨리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집으로 고정했다. 더 이상 숨 쉴 수 없는 기운이 그 주변을 감쌌다. 복잡한 현실, 막막한 미래, 그리고 감춰진 과거. 그 모든 것이 한데 얽혀 그녀를 애먹고 있었다.
바람이 차가운 이슬로 변해 공중에서 흙으로 가라앉았다. 미연은 주위의 균열이 점점 커지며 산화하는 모래를 흐트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젠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길을 잃은 것 같아."
그러나 미연의 말을 끊듯, 갑자기 균열 사이에서 뜨거운 빛이 터져 나와 그들 앞을 비추기 시작했다. 빛 속에서 나타난 것은 그들이 알고 싶은 진실인가, 아니면 실망스러운 허상인가? 그 우려가 차갑게 그녀들의 등골을 파고들었다.
"봅시다. 이제는 마주할 때가 됐어요," 태준은 이렇게 말하며, 이미 그들의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 또다시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지우는 그 말을 되새기며 자신의 가슴에 속삭이듯 귓속말을 건넸다. 이젠 그 어떤 결론이든 온전히 자신에게 달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봤다. 이 모든 감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끝나야만 보기 시작한다는 룰이었다.
"네, 우리에겐 더 이상 선택지가 없어요," 수현이 분노에 찬 손끝을 파르르 떨며 지우와 함께 걸음을 맞췄다.
그 순간 태준은 허공에 검을 벨 듯 손을 휘저으며 적막을 깨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무엇이 진정한지 확인해보자."
늘어지는 생명의 속삭임이 태준의 말과 함께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심근처럼 퍼져갔다. 그들 사이에 남겨진 어둠의 마지막 잔재가 점점히 손끝에서 어른거렸다.
지우는 그 순간에도, 지워져가는 빛 속에서 여전히 그녀를 노려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서 있었다. 그 시선은 이미 세상의 끝마저 넘을 듯한 기세로 계속 그녀를 잠식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다짐하듯 굳건한 시선을 던졌다.
멀리서 신중하게 감기는 기운이 그들에게 무작정 뛰어들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선사했다. 가슴속에서 쿵쾅거리는 어떤 불안감이 그녀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이 멈추어질 틈도 없이, 태준도 다시금 그들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우리의 시도는 분명하며, 한 가지 진실이 존재한다."
그의 말이 그들을 다시 덮쳤다. 그리고 이내 고요함 속에서 그들의 기대감을 도약시켰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시작되는 순간,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지우는 순간의 책임과 무게감을 완전히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연약하지만 강인한 손끝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그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 지켜볼 무게를 모두 테두리에 담고 있었다.
지우는 다가온 바람의 결을 가늠하며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의 경계가 일순간 빙그르르 도는 듯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더욱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다가올 길은 마치 복잡한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신중했지만 다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한 걸음에 모든 것이 변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녀는 놓치지 않고 그것에 착안하며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지우의 시선엔 이미 흔들림이 사라졌다.
한 번 머물렀던 그 자리에 모든 것들을 담고, 그들은 그들만의 신화를 이야기처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그들 앞에 놓였다 해도, 그들은 이 순간의 끝에서 모든 것을 걸고야 말 것이었다.
그 희망은 이윽고 무겁고 진중한 결심으로 너울거리며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한바탕 휘몰아치는 바람이 그들을 휘감자, 지우와 친구들을 무작정 덮치는 결말은 이내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그 순간의 끝도, 결단의 시작도,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운명은 이제 저기 바람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