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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불안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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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로 무언가가 떨어지듯, 회랑으로 이어지던 복도가 삐걱였다. 발밑에 놓인 돌들이 갑자기 생명을 얻은 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멈칫하며 발을 헛디딜 뻔했다. 불안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세아 공녀,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황제 제안의 목소리가 어딘가 조여오는 것마냥 긴급하게 들려왔다.

그의 말에 나는 급하게 몸을 추스르고 그의 뒤를 따랐다. 야속하게도 복도의 끝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처럼 멀기만 했다. 어두운 회랑을 통과하며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디선가 불길한 냄새가 진동했다. 벽과 천장에서 먼지가 되새김질하듯 흩어지고 있었다.

"명령하신 대로 모든 출구를 봉쇄했습니다, 폐하." 복도의 끝에서 경비병이 단호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그의 뺨에 선 입빛이 전투의 긴장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주변에 군데군데 비치던 횃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황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모두 비상 대기 중이지만, 한 치의 방심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정체를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길 바랍니다."

황제의 결단이 법도와 원칙을 뛰어넘어 다가오는 위험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났다.

"폐하…"

그 순간, 갑자기 발밑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멀리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섬뜩하게 차마 날카로운 소리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며 황제의 옷자락을 굳게 쥐었다.

황제는 그런 나를 감싼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끈질기게 울리던 경보는 갈 길을 잃고 서서히 멈춰갔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제각기 얽혀있던 소리들이 그치고, 기묘한 정적이 공간을 메웠다.

"과연…" 제안의 고요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표정에는 완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공녀님, 위험할 수 있으니 뒤에서 따르는 것을 명령합니다."

그의 신뢰 어린 명령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선택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주변 상황은 조금만 실수해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도 쉼 없이 드리워지는 수수께끼의 그림자들이 나를 짓눌렀다. 황제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던 중에도 내 마음은 불안정한 땅 위를 걷는 듯했다.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그 위험한 경계 위를.

"잔해 속에서 라에르 공작의 움직임을 주시해라. 모든 정체성을 노출시키지 않은 자들까지 주의를 늦추지마라."

황제의 목소리가 분명하고도 달랐다. 나의 가슴은 무거운 덩어리를 품은 것처럼 착잡했다. 그의 명령에 깃든 의미, 우리는 무엇과 싸우려 하는지.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 나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생각했다.

그때였다. 멀리서 들려온 시끄러운 움직임으로 간단한 의문이 변화를 맞이했다. 마음속에서 바위처럼 꿈틀거리던 의심이 조용히 해체되어 가는 듯했다. 황제의 부름에 군대가 나무처럼 뻗어나가고, 한편으로 난생 처음 마주하는 도전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공녀님." 곁에 있던 칼루가 손을 뻗어 말을 걸었다. 그의 외관은 여전히 정직하고 우직했지만, 무엇인가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걱정 마십시오. 함께라면 무엇이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칼루의 다부진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눙치며 보여주는 걱정에 실질적인 안도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복잡한 경로와 음모가 우리 주위를 휘몰아치는 걸 정확히 감지할 수 있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미지의 시간들, 각종 혼란과 명확하지 않은 적들이 우스갯소리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터무니 없이 보일지라도 착실히 얽힌 이 막장 속에서 그려내야 할 역전의 구도가 떠나지 않았다.

실내에서는 아직도 은밀한 속삭임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적할 수 없는 음모와 마주하며 우리의 이야기가 이제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할지 궁금증이 제발로 일어섰다.

그때, 불편한 감각이 다시금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 손이 문득 주먹을 쥐었다. 진실과 거짓, 그 경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탐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뒤돌아서려는 순간, 귀를 찌르는 파열음이 어둠을 가르며 폭발했다. 모든 것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황제는 재빨리 나를 감싸며 외쳤다.

"지금이다! 모두 뒤로 물러서라!"

혼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놓인 또 다른 무대를 마주해야 했다. 창밖으로 보일 듯 말 듯한 빛줄기를 쫓으며, 어딘가서 지쳐가는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 모를 의심이, 그 불안한 결심이 이제 막 피어나는 찰나였다.

결국, 모든 것의 끝에 대한 갈증으로 가슴이 옥죄어 오는 가운데, 내 마음속의 불씨는 결코 꺼져가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때가 바로,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