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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의 눈물은, 뜨거웠다.
그것이 내 뺨을 타고 흐른 것인지, 그의 뺨을 타고 흐른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졌다. 폐허가 된 수도원의 찬 공기,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내 심장이 공포로 미친 듯이 울리는 소리까지도. 오직 내 쇄골 아래에서 피어나는 저주스러운 붉은 빛과, 그 빛을 담은 채 절망으로 부서져 내리는 그의 잿빛 눈동자만이 존재했다.
이전 생에서 그의 칼이 내 심장을 꿰뚫었을 때조차, 나는 그의 눈에서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그의 눈은 차가운 강철이었고, 무감한 심연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나를 향한, 지독한 미안함과 모든 것이 끝장나버렸다는 끔찍한 체념이었다. 그 감정의 무게가 너무나도 생생해서, 나는 차라리 그가 나를 증오하고 원망하기를 바랐다.
“…….”
나는 그를 뿌리치듯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물과 내 몸의 낙인이 만들어내는 이 기괴한 공감대를 견딜 수가 없었다. 젖은 드레스 자락에서 흙탕물이 떨어졌다. 뼛속까지 스며든 한기가 그제야 온몸을 장악하며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우리는 적지 한가운데의 폐허에 고립되었다. 나의 충성스러운 기사는 죽었고, 그는 죽기 직전이며, 내 몸에는 추격자들을 불러 모으는 족쇄가 채워졌다. 최악이었다. 내 두 번째 삶에서 맞이한 가장 최악의 상황.
나는 이를 악물었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공포에 질식하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벽체와 썩은 나무 기둥들 사이로, 다행히 비바람을 막아줄 만한 작은 공간이 보였다. 나는 다시 카엘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그는 저항할 기력조차 없는 듯, 인형처럼 내게 몸을 맡겼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정신 차려. 아직은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둘 생각 없으니까.”
내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잔인할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그의 무게를 감당하며 그를 벽 안쪽으로 끌었다. 바닥에 그를 되는대로 눕히자, 억눌린 신음이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나는 내 드레스의 가장 아래쪽 단을 망설임 없이 찢어냈다. 그리고 그의 피 흘리는 어깨와 옆구리의 상처를 서투르지만 단단하게 동여맸다. 그의 뜨거운 피부가 내 손끝에 닿을 때마다, 쇄골 아래의 낙인이 화답하듯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소용… 없소….”
카엘이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 쇄골의 붉은 문양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낙인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야. 그것은 ‘열쇠’이기도 하니까.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레나’라는 그릇을 여는 열쇠.”
“열쇠?”
“그들은 언제나 ‘레나’를 원했소. 하지만 강제로 그릇을 취하면 영혼이 깨져버리지. 그래서 그들은 낙인을 이용하는 거요. 낙인을 찍고, 그 주인이 서서히 죽어가며 영혼이 약해지는 순간을 기다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릇을 차지하는 것. 그게 그들의 방식이야.”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황비가 내게 해독제를 건넨 진짜 이유. 그것은 나를 시험하는 것을 넘어, 나를 붉은 달에게 바치는 제물로 삼기 위함이었다. 카엘이 죽고 내가 그 죄책감과 책임감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약해지길 기다렸다가, 적절한 때에 이 낙인을 이용해 나를 ‘레나’로 각성시키려 했던 것이다. 혹은, 내가 카엘을 구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이렇게 직접 낙인을 옮겨 받게 만들거나. 어느 쪽이든 그녀에겐 손해 볼 것이 없는 도박이었다.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내 복수는 시작부터 거대한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걸 가지고 있었지? 붉은 달의 일원이 아니라면.”
내 질문에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아주 오래전의 상처를 헤집는 듯한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그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훔친 것이오.”
“훔쳤다고?”
“붉은 달은 오래전부터 제국 황실의 혈통에 ‘레나’의 자질을 가진 영혼이 태어나기를 기다려왔소. 그러다 마침내, 당신이 태어난 거지. 그들은 당신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낙인을 찍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 나는… 그것을 막아야만 했소. 그래서 그들의 의식 직전에 내가 먼저 낙인을 가로챈 것이다. 내가 그들의 ‘거짓 레나’가 되어, 그들의 시선을 나에게 붙잡아 두는 동안, 당신이 무사히 황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심장이 바닥 없는 곳으로 추락했다. 이전 생의 모든 기억이, 그를 향한 모든 증오가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가 나를 지키기 위해, 수년간 붉은 달의 낙인을 품고 그들의 표적이 되어 살아왔다고? 그렇다면 그가 일으킨 반역은? 나를 죽인 그 칼은?
“거짓말… 하지 마. 그렇다면 왜… 왜 날 죽인 거지? 내 가족들을 전부 죽이고 제국을 배신한 이유가 대체 뭐야!”
내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는 고통스럽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변명이 아닌,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만이 가득했다.
“그것만이… 당신을 이 지옥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당신이 죽음으로써, ‘레나’라는 그릇 자체가 사라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어리석은 최선이었소.”
그의 고백은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후벼 팠다. 복수심으로 단단하게 무장했던 내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달려온 것인가. 내 모든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었던 그는, 실은 가장 기만적인 방식으로 나를 지키려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밤의 장막이 걷히고 폐허의 틈새로 잿빛 새벽이 스며들었다. 밤새 그의 곁을 지키는 동안, 열에 들떠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그의 입에서 나는 몇 개의 이름을 더 들을 수 있었다. 레프니아, 정원의 저주, 그리고… 나의 어머니, 선황후의 이름까지도. 모든 것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곳에서부터 얽혀 있었다.
카엘은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겨우 의식을 차렸다. 나는 밤새 근처 개울에서 떠 온 물로 그의 입술을 적셔주고, 상처를 다시 살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빛에는 희미하게나마 총기가 돌아와 있었다.
“……물이군.”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없이 물주머니를 그의 입에 대어주었다. 그는 몇 모금 힘겹게 물을 마시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절망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인 자의 고요한 눈빛이었다.
“이제 당신 몸에 새겨진 낙인은… 내 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강할 거요. 그들은 당신이 진짜 ‘레나’라는 것을 확신했을 테니. 이제부터 당신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오.”
“목소리?”
“속삭임, 혹은 환상. 낙인은 영혼을 잇는 통로이기도 하니까. 그들이 당신의 정신을 잠식하려 들 때마다….”
그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마치 그 끔찍한 가능성을 입에 담는 것조차 꺼리는 듯했다.
“우선 여길 벗어나야 하오. 벨라스 놈들은 곧 대대적인 수색을 시작할 테지. 황궁으로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야. 황비는 이미 당신 목에 걸 사냥개들을 풀어놓았을 테니.”
“그럼 어디로 가지? 이 북부 땅은 전부 벨라스의 영향권 아래야.”
“한 군데, 그들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곳이 있소. ‘침묵의 현자의 탑’.”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탑은 북부 산맥의 가장 깊은 곳, 제국과 북방 이민족의 경계에 서 있소. 탑주는 제국에도, 북부의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고대의 대마법사. 그는 세상의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만, 붉은 달과는 오래된 악연이 있지. 그곳이라면… 당신 몸의 낙인을 제어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의 제안은 유일한 희망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심이 싹텄다. 나는 그의 모든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고백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나를 죽인 남자였다. 그가 나를 또 다른 함정으로 이끄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지?”
내 날 선 물음에,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너무나도 지쳐 보여서, 오히려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믿지 않아도 좋소. 하지만 당신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을 텐데. 황녀 전하.”
그의 말이 맞았다. 나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황궁은 적의 소굴이 되었고, 에드윈 백작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나는 지금 내 원수의 손을 잡고, 그가 제시하는 미지의 길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선택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는 카엘을 부축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댄 채, 위태로운 걸음으로 폐허를 나섰다. 잿빛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북부의 황량한 대지가 우리를 맞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카엘은 별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방향을 잡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 없는 숲길을 따라 걷던 중, 내 쇄골 아래의 낙인이 갑자기 불에 덴 듯 뜨거워졌다. 나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하!”
카엘이 놀라 나를 붙들었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끔찍한 감각, 붉은 문양이 제멋대로 빛을 발하며 맥동했다. 고통보다 더한 것은, 머릿속을 직접 파고드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소리였고, 형태 없는 이미지였다. 수많은 원망과 탐욕, 광기가 뒤섞인 혼돈의 소용돌이가 내 의식을 집어삼키려 했다.
‘…찾았다….’
그때, 그 모든 혼돈을 뚫고 하나의 분명한 의식이 내 뇌리에 날카롭게 박혀들었다. 그것은 남자의 목소리도, 여자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오만하고 차가운 속삭임.
‘드디어… 나의 레나를….’
그 속삭임은 내 영혼에 직접 새겨지는 낙인과도 같았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붉은 달이, 마침내 나를 ‘발견’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