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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15화: 붉은 달의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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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으로 물든 달빛.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비밀 통로의 틈새로 스며드는 저주스러운 빛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돌이 긁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공기 중에 섞인 곰팡내에 이질적인 철 비린내가 섞여들기 시작했다. 카엘의 경고는 단순한 예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시작된 재앙의 서곡이었다.

“젠장… 벌써 시작됐군. 낙인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오. 그건 길잡이이기도 하니까.”

그의 절망적인 속삭임은 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내가 그를 구하기 위해 행한 선택이, 이제는 추격자들에게 내 위치를 알리는 등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붉은 빛이 일렁이며 그를 지독히도 나약해 보이게 만들었다. 이전 생에서 내 심장을 꿰뚫던 그 압도적인 반역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전하!”

그림자 기사가 내 앞을 막아서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의 등은 산처럼 듬직했지만, 저 기이한 붉은 빛 앞에서 그의 강철 검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다리가 떨렸지만, 공포에 잠식당할 시간은 없었다.

“길은?”

나는 카엘을 향해 짧게 물었다. 그는 벽에 기댄 채,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증오 어린 눈으로 노려보다가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있소. 하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그는 말을 잇다 말고 격렬하게 기침을 터뜨렸다. 그의 입가로 다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해독제가 독을 중화시켰을지는 몰라도,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이대로는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할 터였다.

나는 그의 팔 아래로 내 어깨를 밀어 넣었다.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그의 체중에 휘청거렸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텼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저항하려는 듯 그의 몸이 잠시 굳었지만, 나는 그의 귓가에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움직여. 여기서 당신과 함께 죽어줄 생각은 없으니까. 내 복수가 끝날 때까진, 당신은 내 옆에서 살아남아야 해.”

내 말은 그에게 모욕이었을까, 혹은 예상치 못한 자극이었을까. 그의 회색 눈동자가 복잡한 빛으로 일렁였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내 어깨에 체중의 일부를 실었다.

“저쪽… 왼쪽 통로, 세 번째 갈림길에서 아래로.”

그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다시 어둠 속으로 발을 옮겼다. 그림자 기사가 우리의 뒤를 경계하며 따랐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돌 긁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붉은 빛이 우리의 그림자를 기괴하게 늘어뜨리며 쫓아왔다. 마치 지옥의 사냥개가 우리의 냄새를 맡고 뒤쫓는 듯한 섬뜩한 추격이었다.

좁고 축축한 통로는 끝이 없었다. 차가운 벽에서 스며 나오는 물기가 옷을 적셨고, 발밑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버석거리며 밟혔다. 내 어깨에 기댄 카엘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불규칙해졌다. 그의 체온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거의 다… 왔소….”

그가 속삭였다. 그의 말대로, 통로의 끝에서 희미한 물소리와 함께 퀴퀴한 하수구 냄새가 풍겨왔다. 철창으로 막힌 출구 너머로, 지하 수로의 검은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그림자 기사가 지체 없이 철창을 비틀어 뜯어냈다.

“전하, 먼저!”

나는 카엘을 부축한 채 몸을 낮춰 밖으로 빠져나왔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물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우리가 수로에 발을 디딘 순간, 등 뒤의 비밀 통로에서 마침내 기괴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붉은 빛을 내뿜는 안개 덩어리 같기도 했고, 수십 개의 눈알이 뭉쳐진 끔찍한 괴물 같기도 했다.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그것이 우리를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젠장, 붉은 달의 감시자…! 쳐다보지 마시오!”

카엘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림자 기사는 우리를 앞서 보내며 괴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강철 검이 붉은 안개를 가르자,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안개가 흩어졌지만 이내 다시 뭉쳐 들었다.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가십시오, 전하!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안 돼!”

내 외침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수로의 천장에 매달린 낡은 쇠사슬을 검으로 내리쳤다. 육중한 쇳덩이가 무너져 내리며 통로의 입구를 막아버렸다. 굉음과 함께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마지막 순간, 돌무더기 너머로 보이던 기사의 강철 같은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충심이, 내 목숨의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슬퍼할 시간도, 분노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카엘의 팔을 더욱 단단히 붙들고 어둠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검고 탁한 물결은 허리까지 차올랐고, 물살은 생각보다 거셌다.

“이 수로는… 성 밖의 낡은 수도원으로 이어져 있소. 그곳이라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거야.”

카엘이 간헐적으로 길을 알려주었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의 무게가 온전히 내게 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가 정신을 잃으면, 나 혼자서는 이 거친 물살을 이겨낼 수 없었다.

“정신 차려, 카엘 드 로안!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끝이야! 당신 가문은 반역의 오명을 쓸 테고, 나는 당신이 왜 그랬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겠지!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야?”

나는 일부러 그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희미하게 떠졌다. 그의 잿빛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당신은… 정말이지….”

그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거센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흘러갔을까. 시야 저편으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가 보였다. 희망이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마침내 차가운 바깥 공기가 폐부를 찔렀을 때, 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우리는 수도원의 폐허 뒤편, 잡초가 무성한 개울가로 빠져나온 참이었다. 나는 카엘의 몸을 풀밭 위로 간신히 끌어올리고는, 그 옆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젖은 옷은 납처럼 무거웠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창백한 달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달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옆에 쓰러진 카엘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기침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숨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카엘?”

나는 그의 뺨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대로 두면 저체온증과 과다출혈로 죽을 터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폐허가 된 수도원의 일부는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거의 기다시피 그를 끌고 무너진 벽 안쪽으로 옮겼다. 비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려 했지만, 온몸이 젖은 상태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젖은 망토를 벗어 최대한 물기를 짜낸 뒤 그와 나의 몸을 함께 덮는 것뿐이었다. 그의 몸에 내 체온이라도 나누어 주어야 했다.

차가운 돌바닥에 그를 눕히고, 나 역시 그의 곁에 몸을 붙이고 누웠다. 망토 아래, 그의 가슴에 귀를 대었다. 약하지만,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안도하는 거지? 그는 내 원수인데. 복수의 대상인데. 혼란스러운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의 숨결이 규칙적으로 변해갈 무렵, 나는 내 몸의 이상을 감지했다. 왼쪽 쇄골 아래, 심장이 뛰는 바로 그 위쪽 피부가 불에 데인 듯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쳐서 생긴 상처려니 했다.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섬세한 바늘 수십 개가 동시에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으로 변해갔다.

나는 망토 밖으로 손을 빼내 젖은 드레스의 목 부분을 조심스럽게 잡아 내렸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내 하얀 쇄골 아래, 바로 그 자리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붉은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붉은 반점이 아니었다. 고대의 상형문자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양이, 마치 피부 아래 혈관이 직접 빛을 발하는 것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고 일그러진 붉은 달의 형상. 낙인이었다.

그것은 살아있었다. 내 심장이 뛸 때마다 미세하게 맥동하며, 차가운 독기 같은 것을 내 온몸으로 퍼뜨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양을 가리려 했지만, 빛은 내 손가락을 투과해 새어 나왔다. 이것을 지울 수도, 숨길 수도 없었다. 이것은 이제 내 일부였다. 붉은 달의 족쇄, 그들의 길잡이. 나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고 본질적인 방식으로 그들에게 붙잡혀 버린 것이다.

내 절망적인 신음을 들은 것일까. 곁에 누워있던 카엘이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의 초점 없는 시선이 내 얼굴을 지나, 빛나고 있는 내 쇄골에 닿았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경악과 끔찍한 고통으로 물들었다. 그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달싹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차가운 뺨을 적셨다.

나는 내 몸에 새겨진 저주와, 내 원수의 눈물을 동시에 마주하며 얼어붙었다. 이것이 내 두 번째 선택의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