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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축이 흔들렸다. 발밑의 대지가 꿈틀대며 균형을 저버린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온몸의 털이 날카롭게 솟아났고, 등줄기를 타고 싸늘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벌써 몇 번이나 같은 경험을 반복한 듯한 느낌인데도, 여전히 이 불안한 떨림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저기 저것 좀 봐!" 카일이 허둥지둥하며 몸을 다듬고 있었다. 그의 눈은 무언가를 향해 벌레처럼 커져 가며 빛났다.
우리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성벽,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길하게 고동치는 것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대며 하늘을 향해 늘어나고 있었다.
신시아는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살짝 틀어쥐었다. "저게 뭐지... 마치 다른 차원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잖아."
심장이 요동쳤다. 마치 무언가가 우리를 비웃고 있는 듯한 기분에 머릿속이 아찔했다. 그중에서도 눈을 끄는 것은 유난히 붉은 빛이었다. 불길한 기운이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부엉표 표효를 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레온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우리가 맞서 싸우게 될 존재들인가 보군."
불길하게 흔들리는 그것들은 비명처럼 공기를 찢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하중에 못 이긴 것처럼 주위의 공기마저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순간, 아리아가 다른 감각을 일깨우며 주위를 살폈다.
"느껴져요? 이 이상한 떨림." 그녀는 공포 섞인 그 원인을 찾아냈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기가 이내 무너졌다. 발밑에서 솟구쳤던 파장이 우리를 한 순간 덮쳤고, 귓가에는 잠자코 있던 피리 소리가 다시금 스스로를 낮추어 환상처럼 감싸왔다. 그 소리는 마치 전사들 사이에선 절말로로 불리던 그 노래 같았다.
"이 소리... 다시 돌아왔다니 믿을 수 없어." 신시아가 고개를 흔들며 불길하게 중얼거렸다.
고대의 성벽을 따라 드리워진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고, 우리는 이내 그들로부터 오는 강력한 마력에 묶여버렸다. 그리고 그 박동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점점 사라져 가는 듯한 어여쁜 혼란을 맞이했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야 해." 레온이 단호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표정 곳곳에 불안한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저게 무슨 전조인지 모르겠어. 빨리 움직여."
나는 투덜거리는 카일의 고삐를 여미며 그와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의 모든 발걸음은 이 어둠 속의 길을, 파란 실타래처럼 엮어 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공기가 변하더니, 새로운 불협화음이 귀를 감았다. 우리의 존재를 맞이하는 것은 잘못 튀어나온, 완고하게 거친 음조였다.
"무엇이든 준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리아의 말은 애매한 의문부호를 날리며 바람에 흩어졌다.
그때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발소리가 돌연 그치며 멈춘 줄 알았다. 그러나 느닷없이 우리를 마주쳤다. 이번엔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호전적으로 공기를 가르며 내리쳤다.
"누군가 날 여기까지 끌어들였군."
놀랐다. 목소리는 어둠에 갇힌 누군가의 몽롱한 속삭임이었고, 공기를 태양처럼 들어올리는 뜨거운 숨결이었다.
레온이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성적인 판단을 잊으면 안 돼." 그의 목소리에 깃든 확신은 역경을 거머쥘 용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누구든지 우리에게 덫을 놓으려던 자일 거야."
나는 그 말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걷던 신시아의 뒷모습이 아스라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뼛속까지 스며든 마법의 힘이 어쩐지 거칠게 끓어오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공기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 작은 불길이 일렁이며, 휴지를 불태울 듯 몸을 축이었다. 나는 그 밝음을 향해 손을 뻗었고, 순간적인 감각의 상실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저항이었다. 그 존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차원의 틈에서 무성한 속삭임을 띄우며 피리 소리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끊임없는 이름과 그것의 의미가 비단 해석되었다.
"다시는 놓치지 마." 목소리는 우리를 훈령처럼 다가왔고, 우리는 마주칠 순간까지 순간포착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고하지 않은 덫이었다.
"다른 길이 있을까?" 카일이 빠르게 질문을 던지며 주위를 살폈다.
대답하기도 전에, 강한 빛이 어둠을 가르고 내부 공간을 드러냈다. 그것은 이전에 보지 못한 순간의 파노라마였다. 발밑에서 떠오른 악의가 우리를 눈에 띄게 요동치고 있었다.
"여기로 모여!" 레온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이 안에서 우리를 돕는 자와 해치는 자를 구분해야 해."
우리는 거대한 돌조각 뒤에 몸을 숨겼다. 날카로운 반짝임이 공허한 공간 속에서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내 우리의 끝을 맞을 순간이 당겨지고 있었다.
"출구가 있어?" 아리아가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신시아는 고개를 추스르며 말했다.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알아냈어. 그치만..."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멀리서 낮고 거친 탄성이 날아왔다. 숨죽이던 순간,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 모습은 예상 밖의 존재였고, 우리 또한 준비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거친 파열음이 공간을 뒤덮으며 다시금 그 빛나는 악의가 우리를 휘감아 들였다. 우리 눈 앞으로 내리덮이는 어둠은 마치 결단을 요구하는 심판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새빨간 불안감이 우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피리 소리가 세상을 가르듯 사라지고 싹이 튼 의문의 중심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 순간에 재판관처럼 서 있는 그 존재가 과연 무엇을 결정지을 것인지.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지는 오로지 다음 장에 맡겨진 불일치의 퍼즐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결국 우리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 여유롭지 않은 공간 속에서도 열연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라 여겨졌다.
무질서한 공간 속에서 외돌던 피리의 선율이 막바지 대화로 맴돌며 비밀을 감췄다.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자유롭고, 더욱 혼란했던 우리를 이끈 새로운 출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질문은 이후로 미루어졌다.
아침 햇살이 길을 밝히기 직전, 우리는 그 중심에서 어둠 속의 실타래로 얽힌 우리의 선택을 다시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선택에 발걸음을 맞췄다. 어둠에 둘러싸인 길 앞에 또 다른 진실이 준비되어 있다.
다음 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시금 마주해야 할 불가사의한 의문, 그리고 그 의문 속으로의 진정한 탐험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