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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11화: 그림자 속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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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문틈으로 스며든 차가운 바람이 소라의 목덜미를 스치며, 그녀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굳었다. 민재가 펼쳐놓은 종이 위의 서명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가운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리듬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천천히 다가오는 듯 규칙적이었고, 구두굽이 타일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카페 안의 공기를 갈랐다.

연주가 소라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따뜻한 손바닥의 열기가 차가운 반지 잔재를 녹이는 듯했으나,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민재, 그 종이 치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연주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끝부분에 숨긴 날이 소라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곱슬머리가 소라의 어깨를 스치며, 빗물에 젖은 가닥 하나가 목덜미를 간질였다.

민재는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연기가 그의 입술 사이로 천천히 새어 나왔다. “때가 아니라고? 은서가 곧 문을 열고 들어올 텐데. 소라, 너는 아직도 세희가 숨긴 그 서명을 모르는 거야? 그 여자가 네 형제를 은서에게 넘긴 순간부터 모든 게 시작됐어.”

소라는 종이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종이 가장자리를 파고들며 미세한 통증이 전해졌다. “세희가… 왜 그런 걸 했는지, 아직 설명이 부족해.”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미세하게 떨렸다. 창밖으로 스치는 가로등 불빛이 테이블 위를 스치며, 종이의 잉크가 번들거렸다.

연주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두 사람의 무릎이 다시 닿았다. 따뜻한 접촉이 전류처럼 퍼지며 소라의 허벅지가 저려왔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민재가 왜 갑자기 그 종이를 꺼냈는지부터 물어야지. 은서가 오기 전에.”

민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냥 전달자일 뿐이야. 은서가 세희의 서명을 직접 보여달라고 했거든. 소라, 너의 과거는 이미 다 팔려나간 상태야. 형제가 은서에게 넘긴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어. 너를 보호하려던 세희마저 그 대가로 움직였지.”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종소리가 울리기 직전, 문이 살짝 열리며 은서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녀의 긴 검은 머리가 빗물에 반짝였고,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카페의 따뜻한 조명 아래서 더욱 차갑게 빛났다. “늦었네. 다들 모여서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있었구나.”

은서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향기가 희미한 꽃내음과 함께 금속 냄새를 풍겼다. 소라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으나, 연주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은서, 여기서 할 말은 없어. 소라는 이미 충분히 흔들렸으니까.” 연주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그녀의 손가락이 소라의 옆구리를 살짝 누르며 안정감을 주려 했다.

은서가 미소 지었다.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으나, 눈은 웃지 않았다. “연주, 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몰랐어. 하지만 소라, 너는 세희가 왜 그런 서명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 여자가 네 과거를 팔아넘긴 순간, 민재가 중재자 역할을 했거든.”

민재가 담배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재가 작은 원을 그리며 떨어졌다. “은서, 너무 앞서가지 마. 소라는 아직 선택할 권리가 있어.” 그의 말투는 장난기가 사라지고, 낮은 톤으로 경고하듯 흘러나왔다.

소라의 시선이 은서와 민재 사이를 오갔다. 그녀의 손이 연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피부가 맞닿는 부분에서 미열이 올라왔다. “선택이라니… 지금까지 모든 게 이미 정해진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며, 가슴이 부풀었다가 내려앉았다.

은서가 주머니에서 또 다른 종이를 꺼냈다. 그것을 테이블 위에 펼치자, 세희의 서명 아래 새로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은’과 ‘연주’ 사이에 연결된 선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게 진짜 증거야. 연주, 너도 이 거래에 관여했지? 소라의 비밀을 이용해 네가 얻으려는 게 뭐야?”

연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곱슬머리가 흔들리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은서, 그건 네가 꾸민 함정일 뿐이야. 나는 소라를 이용한 적 없어. 단지 그녀의 상처를 보고 싶지 않았을 뿐.” 그녀의 손이 소라의 어깨를 감싸며, 따뜻한 체온이 스며들었다.

카페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창밖에서 빗방울이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리듬을 만들었다. 소라는 연주의 손을 놓지 않았다. “연주… 너도 알고 있었어? 세희와 은서의 거래를.”

연주의 눈동자가 소라를 깊게 바라보았다. “처음엔 몰랐어. 하지만 네가 내게 다가온 순간부터, 나는 네 과거를 보호하고 싶었어. 그게 사랑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집착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네 손을 놓고 싶지 않아.”

은서가 낮게 웃었다. “감동적이네. 하지만 소라, 네가 믿는 그 손길이 진짜인지 확인할 시간이야.” 그녀가 종이를 다시 접으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희가 곧 올 거야. 그녀가 직접 설명하게 두자.”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서, 이건 너무 위험해. 소라는 이제 막 연주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그의 손이 담배를 다시 집었으나, 불을 붙이지 않았다. 연기가 없는 담배 끝이 그의 입술을 스쳤다.

소라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연주의 팔을 붙잡고 몸을 떨었다. “세희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연주가 소라의 귀에 속삭였다. “지금은 나를 믿어. 우리는 여기서 나가야 해. 민재와 은서가 숨기는 게 더 많아.” 그녀의 손이 소라의 허리를 감싸며,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카페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문이 다시 열리며 세희가 나타났다. 그녀의 눈이 소라와 연주를 번갈아 보며 흔들렸다. “소라, 기다려. 내가 설명할게. 그 서명은… 내가 너를 지키려던 방법이었어.”

소라는 세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연주의 손을 놓지 않았다. “세희, 이제는 믿기 힘들어. 은서가 보여준 그 종이 때문에.” 그녀의 발이 뒤로 물러서며, 연주의 체온이 유일한 지지대처럼 느껴졌다.

세희가 한 걸음 다가왔다. “민재가 압박을 넣었어. 은서가 네 형제를 위협했고, 나는 그걸 막으려다 서명을 하게 됐어. 하지만 지은이 나타나면서 모든 게 꼬였지.” 그녀의 목소리가 거칠게 쏟아졌다.

은서가 팔짱을 꼈다. “세희, 이제 와서 변명하지 마. 소라, 너는 선택해야 해. 세희를 믿을 건지, 아니면 연주의 손을 잡고 이곳을 떠날 건지.”

소라의 가슴이 조여왔다. 그녀는 연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연주,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의 손가락이 연주의 손등을 문지르며, 미세한 전율이 올라왔다.

연주가 소라를 끌어당겼다. “지금은 도망쳐. 더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문밖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여러 개의 구두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새로운 인물들의 그림자가 카페 창문에 스치기 시작했다. 소라는 연주의 손을 붙잡고 숨을 멈췄다. 그 그림자 속에서 반짝이는 눈빛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