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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름을 부르면 가까워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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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름을 부르면 가까워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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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름을 부르면 가까워지는 것들

출근 러시아워라 그런지 지하철은 사람들 사이로 묘하게 들뜬 공기가 떠 있었다.
둘 사이에는 조용한 공백이 잠깐 머물렀지만, 그 침묵조차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현은…
이 침묵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낸 건 하린이었다.

“저… 어제 도서관에서 봤잖아요.”

“맞아요.”

재현은 너무 빨리 대답해버린 자신에게 놀라 작게 기침을 했다.

“아, 네. 어제… 그 여행 사진 책 보던 쪽에서.”

하린이 옆으로 몸을 살짝 돌리며 말했다.

“사진 찍으신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아… 네.”

재현은 괜히 카메라 가방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취미로 찍어요. 뭐… 대단한 건 아니고…”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요, 취미를 꾸준히 하는 사람… 전 되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멋있다고요?”

재현은 너무 직접적인 말에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걸 느꼈다.

하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네. 사진은 특히. 어떤 순간을 담을지… 그 사람이 선택하는 거잖아요.”

재현은 그 말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그의 취미를 이렇게 따뜻하게 바라봐 준 적이 거의 없었다.

“혹시…”

하린이 조심스레 묻는다.

“찍으신 사진… 나중에 볼 수 있을까요?”

재현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진짜요? 제 사진을요?”

“네.”

하린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어떤 걸 좋아해서 찍는지… 궁금한데요.”

“…보여드릴게요. 뭐 좀 어설픈 것도 많지만요.”

“저 그런 거 좋아한다니까요.”

하린이 장난스럽게 답했다.

“너무 완벽한 것보다… 좀 허술한 사람이 좋던데요. 저 허술해요. 꽤.”

재현도 따라 웃었다.

지하철은 출근 시간 특유의 덜컹거림을 두 사람 발끝에 공유하며 천천히 달렸다.

---

열차가 역에 가까워지자, 스피커에서 하린이 내릴 역이 울렸다.

하린이 가방 끈을 정리하며 말했다.

“아… 저 여기서 내려요.”

“아… 네.”

재현은 왜 이렇게 아쉬운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됐다.
근데 하린은 바로 일어서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재현 씨.”

“네?”

하린은 눈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혹시… 연락처 여쭤봐도 돼요?”

재현은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저요? 아… 네. 물론이죠. 드릴게요.”

“아뇨, 제가 드릴게요.”

하린이 휴대폰을 꺼내며 웃었다.

“혹시 먼저 연락하기 어려우시면 제가 해도 될까요?”

" 당연하죠"

둘은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건네받으며 번호를 입력했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휴대폰을 다시 받은 하린이 말했다.

“오늘… 정말 반가웠어요. 이렇게 또 우연히 보니까 더.”

문이 열리기 직전, 하린이 가볍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럼… 퇴근하고 연락할게요. 사진도 보고 싶어요.”

문이 닫히고, 하린이 저 멀리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자
재현은 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웃었다.

“뭐지… 왜 이렇게…”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

그리고 하루가 지나—
해가 지고, 도시가 어둑해질 무렵.

재현의 휴대폰이 가볍게 울렸다.

> ** : 퇴근했어요.
> 아침에… 덕분에 하루 시작이 좋았어요.**

재현은 문자를 보고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침의 우연이
저녁의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게 이렇게 좋을 줄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